어렵게 꺼내 놓아야 하는 말

영화 〈캐롤〉 "01:44:35"

by 이건희

“잘하고 있단 얘기 애비한테 들었어요.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같이 살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거절하겠죠? 와줄래요?”


오랜만에 테레즈를 만난 캐롤은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낸다. 칭찬도 구애도 과감하게 전한다.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떠났다가 돌아온 자신에게 잔뜩 화가 나 있는 테레즈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함이다.


“그럼… 이게 다예요.”


테레즈의 냉담한 반응에 캐롤은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고 털어놓는다. 맞은편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캐롤. 이윽고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의 입에서 다른 어떤 말로도 가릴 수 없는 애절한 말 한마디가 뒤늦게 튀어나온다.


“사랑해요.”


겨우 용기를 내서 건네는 고백이다. 한껏 끌어 모은 캐롤의 진심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다. 사랑한다는 말을 이토록 뜸 들여 건네는 사람을 나는 도통 보지 못했다. 이 대사는 내 사랑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정말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는 과연 그동안 나의 연인을 유심히 관찰했던가. 그의 사소한 떨림까지도 놓치지 않고 반응했던가. 위로와 응원보다 이기심과 질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지는 않았나. 진심을 전할 때 눈을 마주치려는 노력도 언젠가부터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 같다.


가장 부끄러운 것은 사랑한다는 말을 가볍게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에는 리처드나 하지처럼 형편없는 얼굴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상대를 끼워 맞추기 위해 그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고 많은 말 중에서도 특히 사랑한다는 말이라면 캐롤과 같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해야만 했다.


누구나 사랑을 통해 다치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몰랐던 것을 배운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더 나은 사랑을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는다. 〈캐롤〉은 사랑이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사랑의 지침서다. 배운 대로, 오늘은 조금 달라진 마음으로 당신을 만나 다른 행동으로 당신을 대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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