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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l 06. 2018

1. 자기만의 방과 82년생 김지영

1. 자기만의 방과 82년생 김지영 



여성의 삶과 그 고달픔을 담담하고 잔잔한 목소리로 전하는 작품이 새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게 작년 봄이었으니까, 그로부터 불과 1년 남짓 지났을 뿐인데 그 사이 참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 처음엔 소개 받은 대로 담담하고 잔잔하게 읽었다. 늘 섞여 지내지만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 감상은 ‘여자들은 이렇게 힘들게 사는구나’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작품이 이렇게 큰 파장을 몰고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이름은 김지영이다. 평범한 이름이 말하는 건 이 책이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도 마찬가지다. 울프도 가상의 주인공을 영국에서 가장 평범한 메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나를 메리 비턴이나 메리 시턴, 또는 메리 카마이클, 아니면 여러분이 좋을 대로 아무 이름으로나 불러도 상관없습니다. 이것은 전혀 중요치 않은 문제니까요.’ ‘82년생 김지영’처럼 울프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모든 여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1928년 가을 버지니아 울프는 영국의 여성 칼리지인 뉴넘과 거턴으로부터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요청받았다. 이미 ‘댈러웨이 부인’과 ‘등대로’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주요 작가 반열에 올라선 울프에게,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의를 준비하는 동안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주제가 사실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워, 심지어는 울프 자신이 결론도 내릴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은 여성과, 여성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의미할 수고 있고, 어쩌면 여러분은 그런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여성과, 여성이 쓴 픽션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요. 혹은 여성과, 여성에 관해 쓰인 픽션을 뜻할 수도 있겠지요. 또는 이 세가지가 뒤섞여 있으므로 이 세 관점을 통틀어 이 문제에 접근하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흥미롭게 보이는 이 마지막 방법으로 그 주제를 고찰하기 시작하자, 거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결코 결론에 도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시원하고 깔끔하고 힘있게 끌고 나가 극적으로 마무리 할 수도 있었을 이 작품이 뒤로 갈수록 점점 모호하고 진의를 알 수 없는 태도를 취하는 건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있고 결론도 있지만, 하려는 이야기를 통해서는 결코 본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알게 되겠지만 이러한 견해로는 여성의 진정한 본성과, 픽션의 진정한 본질이라는 크나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겨둘 수밖에 없습니다.’ 



작가의 선언처럼 일단 작품은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걸 설명하는데 집중한다. 하지만 울프를 괴롭히고 있는 결론(주제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고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과연 실현 가능할까 그 누구도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없는)에 대한 고민도 계속해서 글 주변을 맴돈다. 이 작품을 두 가지 시선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다. 첫 번째는 자기만의 방, 두 번째는 소실점 끝에 놓여 있는, 빤히 보이지만 결코 다가갈 수는 없을 것 같은 결론으로 말이다. 



이야기는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자신의 재능을 시험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며, 근거도 없이 차별 받는 여성들의 삶을 비춘다. 울프는 그 이유가 인류의 절반을 경쟁 대상에서 미리 탈락시켜 버리고자 하는 남성의 그릇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그것은 여성이 열등하기보다는 남성이 우월하기를 바라는 뿌리 깊은 욕망으로서, 남성을 예술의 전면뿐 아니라 도처에 서 있게 함으로써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도록 합니다.’ 그리고 울프는 말한다. ‘백 년이 지나면 이 가치들은 완전히 변하겠지요. 더욱이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82년생 김지영’이 ‘자기만의 방’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다.  울프의 강연은 1928년이었고, 지금은 2018년이다. 90년이 지났다. 그녀가 말한 백 년이 다 되어 가는데 ‘82년생 김지영’에는 그녀가 기대했던 것들이 들어있지 않다. 그 동안 겉으로 보이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가치가 달라졌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많은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과 수입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멋진 픽션들을 마음껏 써내고 있는 지금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뭘 어떻게 더 해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 여기저기 뿌려둔 실마리들을 끈기 있게 모아서 조합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이는 ‘자기만의 방’을 읽는 두 번째 방법이자 또한 ‘82년생 김지영’이 던진 화두에 대한 고민이 되어줄 것이다. 



어느 성에게든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인 투쟁이고, 그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울프는 말한다.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꺾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나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성이 남성처럼 글을 쓰거나 남성과 같은 생활을 하거나 또는 남성처럼 보인다면, 그것도 천만번 유감스러운 일이지요. 세계의 광대함과 다양함을 고려해 볼 때 두 가지 성으로도 너무나 불충분할진대, 하나의 성만 가지고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교육은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을 이끌어내고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 상태에서 우리는 너무나 유사합니다.’  



‘내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오 하고 나는 말할 겁니다. 그 말을 고귀하게 들리게끔 표현할 수 있다면 말이지요. 오로지 사물을 그 자체로 생각하십시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1928년 10월 26일, 아침에 런던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창 밖을 내다보던 울프의 눈에 에나멜가죽 구두를 신은 한 소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리고 밤색 외투를 입은 젊은이가 나타났고, 뒤를 이어 택시 한 대가 보였다. 울프의 창문 바로 아래 멈춰 선 택시는 소녀와 젊은이를 태우고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그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마’ 생각했다. 대립과 대결이 아닌 여성과 남성의 조화, 그리고 각각의 개인 안에 깃들어있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조화, 그리고 그런 수많은 경우의 수로 조합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루어진 사회에 대해.






https://youtu.be/hZke41CuP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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