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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Jul 19. 2018

2. 영원회귀하는 차라투스트라

2. 영원 회귀하는 차라투스트라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시다. 아마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시일 것이다. 여기에는 부조리한 일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고 시정하려고 지나치게 시도한 감이 있었다는 것, 그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한 줄 한 줄마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에게 반대하고 싶을 때라도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에게는 감상과 망상에 지쳐서, 의혹과 부정의 씁쓸한 맛을 즐길 때가 있지만, 그럴 때에 니체는 우리에게 한 모금의 청량제 역할을 한다. - 듀란트, <철학 이야기> 중에서 



니체의 인기는 여전하다. SNS에는 오늘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비롯해 니체의 잠언을 소개하는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새로운 작품 때문인지 다시 니체로 붐비는 피드를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왜 니체일까. 칸트도 쇼펜하우어도 헤겔도 하이데거도 아닌 언제나 니체인 이유는 왜일까. 다시 책을 펼치며, 이번에는 차라투스트라가 홀로 영원회귀하는 이유를 알아보자 생각했다, 그게 안되면 추측이라도. 



내 경우는 헤르만 헤세 덕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된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따위의 질문과 ‘공부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대답이 오가던 청소년 시절이었다. 어른들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실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던 그 무렵 주로 헤세의 작품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내게 공감해주는 유일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스승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스승에게도 존경하는 또 다른 스승이 있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스무 살이 되어 고른 첫 작품이 차라투스트라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무지 이해 안되어 다시 보고, 슬슬 재미가 붙어 보고 또 보고 했던 학창 시절이 지나고, 잡지 원고를 위해, 또는 인터뷰나 지금처럼 리뷰를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끔 꺼내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그리 겁먹지 않고 생각날 때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니체는 이 작품을 마흔 살 무렵인 1883~85년까지 3년에 걸쳐 썼다. 이미 스물 다섯 살에 스위스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될 만큼 일찍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던 그였지만, 이성 문제만큼은 그렇지 못했는지, 유명한 루 살로메와 또 다른 여인에게 연이어 거절당한 후 홀로 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알프스 산악 지대를 여행하던 니체가 이 작품의 착상을 떠올리던 순간을 기록한 시가 있다. 



나는 앉아서 기다렸노라,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을 기다리면서. 

선악의 저편에 때로는 광명을, 

때로는 그늘을 즐기면서, 

지난날은 오직 호수와 한낮과 끝없는 시간뿐. 

그때 돌연히, 벗이여, 하나는 둘이 되어 

차라투스트라 내 곁을 지나가도다. 



차라투스트라라는 이름을 들으면 먼저 세 단어가 떠오른다. ‘초인’, ‘신은 죽었다’, ‘영원회귀’가 그것이다. 전에는 주로 ‘초인’ 관점으로 접근했다면, 최근에는 ‘영원 회귀’를 중심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먼저 ‘초인’과 ‘신은 죽었다’를 이해하고 나면 시선은 자연스럽게 ‘영원회귀’로 향한다. 그 개념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책을 펼친다면, 맥락 없는 전개 때문에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생의 대변자이자 고뇌의 대변자이며 둥근 고리의 대변자이기도 한 나 차라투스트라가 너를, 너의 더없이 깊은 심연의 사상을 부르고 있으니! – 책세상판, 357쪽 


니체의 철학은 생철학이라 한다. 생철학은 천국이나 이데아 같은 죽음 이후의 불확실한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태어나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문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종교나 이상 세계 같은 것에 의지하지 말고 인간을, 오직 인간만의 삶으로 한정해 바라보자는 뜻이다. 



형제들이여, 간청하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에 대한 희망을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 책세상판, 18쪽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너의 영혼은 너의 신체보다 더 빨리 죽어갈 것이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 책세상판, 28쪽


 

오직 인간의 삶을 바라볼 준비가 되었다면, 작품 대부분이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초인’도 마찬가지다. 간혹 초인의 개념을 거창하게 해석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그보다는 고통이나 두려움, 시련 혹은 죽음까지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른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을 뜻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앞으로는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너희의 명예가 되기를! 너희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의지와 발길, 그것이 너희에게 새로운 명예가 되기를! – 책세상판, 335쪽 


진리를 향해 ‘살아남기 위한 의지’라는 말을 쏘아댄 자가 있었지만 그 진리를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같은 의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으니!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은 의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찌 새삼스럽게 존재하기를 의욕할 수 있겠는가! 

생명이 있는 곳, 거기에만 의지가 있다. 그러나 나 가르치노라. 그것은 생명에 대한 의지가 아니라 힘에의 의지라는 것을! – 책세상판, 196쪽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과학적 발견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유한한 공간 속에서의 무한한 시간.’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반해 시간은 무한하여, 그 무한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되풀이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렵다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로 대체해도 될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나고 죽지만 인간은 영원하다’ 라고 말했다.  



영원회귀는 모든 인간에게는 시작과 끝이 있어, 각자의 삶에는 고유의 목적이 있고 모든 인간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태어나서 죽음까지 직선이라고만 생각했던 삶이 원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원히 되풀이되고, 같은 하루가 반복될 뿐 이라는 생각은 어쩌면 절망적이다. 하지만 만약 이 책을 읽으며 영원회귀를 깨닫고 절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이 작품을 제대로 읽은 것이 된다. 그 다음에는 니체가 제시하는 해결책을 검토하고 각자 판단의 시간을 가지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가고, 모든 것은 되돌아온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돌고 돈다. 모든 것은 죽고, 모든 것은 다시 소생한다. 존재의 해는 영원히 흐른다. 

모든 것은 꺾이고, 모든 것은 다시 이어진다. 똑같은 존재의 집이 영원히 지어진다. 모든 것은 헤어지고, 모든 것은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눈다. 존재의 바퀴는 영원히 자신에게 신실하다. 

매순간 존재는 시작된다. 모든 여기를 중심으로 저기라는 공이 굴러간다. 중심은 어디에나 있다. 영원이라는 오솔길은 굽어있다. – 책세상판, 359쪽 


고통 또한 즐거움이며, 저주 또한 축복이며 밤 또한 태양이다. – 책세상판, 530쪽 



니체의 작품은,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지나치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논리도 맥락도 없이 험한 얘기를 속사포처럼 남발한다. 그런데도 발표된 지 130년이 넘은 작품에 대한 관심은 끝이 없다. 자격증을 주거나 취업이나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보장하건대 읽고 또 읽어도 초인이 된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작품을 반복해서 읽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두렵기 때문인 것 같다.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매일 아침을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거야’ 믿으며 시작하고, 순간 순간 결과를 알 수 없는 선택을 하며,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그럴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 사는 동안 계속해서 찾아올 시련이나 두려움을 조금 더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믿고 의지하면서 말이다. 





https://youtu.be/dHlMFFavG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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