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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Aug 09. 2018

율리시스 완독기

3. 율리시스 – 제임스 조이스

 

대학 교수들을 괴롭혀서 그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살겠다 선언한 작가가 있었다. 최초의 여인 판도라에게 굳이 부탁하지도 않은 선물 상자를 주며 절대 열지 말라고 말한 신의 의도가 빤히 보이듯, 가장 유명한 신화 주인공을 소설 제목으로 정하면서 제임스 조이스도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제우스의 그 방식을 따라 해보자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북카페 오픈 초기 한가한 시기가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소설 세 권을 연달아 읽고, 하루키 소설과 에세이를 다 읽고, 프루스트를 읽어도 시간이 남아돌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한 권의 책에 눈길이 갔다. 주위의 부추김도 얼마간 있었다. 어떤 분이 절판된 판본을 구해 보내주셨다!  한참을 경애의 마음으로 바라보다가 시작이나 해보자, 전부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렇다고 글자만 읽지도 말고 정독만 해보자, 일단 완독을 할 수 있으면 다음 기회가 있을 것이다, 3천개가 넘는 주석은 가급적 넘어가고, 하루 백 페이지는 읽어 보자. 그렇게 시작했다.


주말 빼고 3주 걸렸으니 계획했던 대로 하루 백 페이지 정도 본 것 같다. 적게는 하루 다섯 시간에서 많게는 여덟 시간 정도 읽었다. 눈과 특히 허리가 아팠고 자주 뇌가 끈적해지는 느낌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2015년의 일이다. 총 18장 중에서 두세 장 정도는 읽을 만 했고 나머지는 흔한 말로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였다. 처음부터 소설로만 읽자 결심했는데 줄거리 파악조차 못했으니 소설로도 읽지 못해 답답했다. 그래도 몇몇 문장이 머리에 남았는데 예를 들면,


우연의 만남, 토론, 댄스, 소동, 오늘은 여기 그리고 내일은 저기, 하는 식으로 떠돌아다니는 노수부, 밤의 배회자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오늘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축소판 카메오를 형성하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1094쪽>


알려진 대로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한다. 구성은 감도 못 잡았지만, 하루 동안의 일을 이렇게 길고 어렵게 쓴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스치듯 지나간 문장이 기억에 남았다. ‘저마다의 사연은 복잡한 것이다. 함부로 판단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말이었다. 쉽게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사연에 관한 것이라면.


1년쯤 지나니 슬슬 욕심이 생겨 다시 펼쳤더니 전에는 안보이던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려운 작품이 보인다는 사실에 신나는 마음보다는 먹먹한 기분이 앞섰다. 그리고 또 1년 후, 잡지에 리뷰 연재를 하던 중이었는데, 율리시스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또 한번, 그렇게 세 번을 보고 나서야 인생책이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율리시스 주인공은 스티븐과 블룸, 몰리 세 명이다. 스티븐은 조이스의 다른 작품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인공이었던 그 스티븐이고, 블룸과 몰리는 부부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소년으로 등장했던 스티븐은 어느새 스물 셋 청년으로 성장했다. 조이스의 분신이기도 한 스티븐은 국립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부터 아일랜드 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로 기대 받고 있지만, 소년 시절 시작된 방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심각해진 상황이다. 종교 갈등이 아일랜드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모든 종교를 멀리 하겠다 결심한 스티븐이 임종 때 무릎 꿇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한 것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설 첫머리 친구로부터 어머니 살해자라는 끔찍한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 조이스의 방황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된 1904년 이후 10년이나 더 계속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주변의 끔찍한 비난과 그보다 더한 내적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스티븐이 블룸과 몰리의 이상한 부부관계를 통해 사람에게는 남에게 설명할 수 없고, 심지어 자기 자신이 납득할 수도 없는, 그래서 자신의 생각 속에서도 부정하고 싶은 그런 상황이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한다.


블룸은 38세의 평범한 신문사 광고 영업 사원이다. 지인의 장례식 참석 준비를 위해 바쁜 아침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분주하게 자신과 아내의 식사를 준비하는 블룸은 알고 있다. 오후 4시 아내의 새 애인 보일런이 자신의 집을 방문한다는 걸. 그 사실은 하루 종일 블룸의 의식을 지배한다. 공교롭게도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세 작가, 프루스트와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는 모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다. 소설이 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내러티브를 구현한다면, 의식의 흐름 기법은 생각의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생각이라는 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맥락 없이 건너뛰게 마련이라, 처음에는 당황스럽지만 이 작품처럼 주인공들의 의식이 더 중요한 경우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 주인공 자신에게도 감추고 싶어하는 생각의 밑바닥을 눈치채는 순간 작품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내를 위한 블룸의 식사 준비는 정성스럽다. 식사 준비뿐 아니라 종일 블룸의 생각은 보일런에 대한 비난과 이에 반하는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이런 경우 독자는 당연히 블룸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지만, 작가는 친절하게도 주인공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차근차근 증명한다. 심지어 그는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독자 눈에는 아침부터 온종일 술만 마시는 아일랜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잔에 채워진 위스키를 옆자리 사람의 빈 잔에 몰래 따르는 블룸의 모습이 낯설기까지 할 정도다.


블룸의 아내 몰리는 유명한 소프라노 가수다. 영화 배우 마릴린 먼로가 이 작품을 읽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유명한데, 마치 작가가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마릴린 먼로를 묘사한 것처럼 먼로와 몰리의 이미지는 꼭 닮았다. 소설은 몰리의 엄청나게 긴 독백으로 마무리되는데, 마치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먼로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공교롭게도 사진 속에서 먼로가 보고 있는 장면이 작품 마지막 부분이기도 한데, 먼로가 ‘세일즈맨의 죽음’의 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그녀가 율리시스를 읽은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몰리는 군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작가는 뜨거운 아프리카 바람이 불어오는 지브롤터 해협 근처에서 나고 자란 정열적인 여인상을 그리고 싶었나 보다. 자신의 재능과 매력으로 한껏 삶을 즐기는, 조이스의 표현대로 더블린 최고의 인기 가수인 그녀지만 독백에서 나타나는 블룸에 대한 그녀의 사랑 또한 남편의 그것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는 것 같다. 그녀의 표현대로 ‘왜 나를? 왜냐하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나 딴판이었으니까요.’ <672쪽>


스티븐과 블룸은 신문사에서 스친다. 블룸은 상점의 광고 조율을 위해, 스티븐은 본래 환영받는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신문사는 정보가 모이는 곳이다. 들락날락 하는 블룸을 보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린다. 몰리의 새 애인 보일런에 대해, 그리고 그녀가 지금껏 만나온 애인들에 대해, 그리고 몰리가 왜 하필 블룸과 결혼 생활을 계속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런 상황을 뻔히 아는 블룸은 몰리의 행동을 왜 모른 척 하는지에 대해.


임시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스티븐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마치고 오늘은 마지막 월급을 받는 날이다. 여동생들은 집에 있는 스티븐의 책을 팔아 겨우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직 스티븐은 방황에서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혐오스러운 돈을 어서 빨리 술로 바꿔버리고 싶은 생각뿐이다. 오후 우연히 술자리에서 스티븐을 만난 블룸은 그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그를 끝까지 챙긴다. 시간이 늦어 갈 곳 없는 스티븐을 집으로 데려온 블룸은 아마도 – 소설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 아내가 깰까 조심하며 조용히 서로의 사연을 주고 받았나 보다. 그리고 아직 보일런과의 정사 흔적이 남아있는 침대 구석에 잠들어 있는 블룸을 보며 몰리의 긴 독백이 시작된다.


조이스가 세익스피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젊은 스티븐의 대사는 거의 전부라 할 정도로 세익스피어 작품을 인용한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의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화 속 메타포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발푸르기스의 밤 장면 등을 보고 있으면 말문이 막힌다. 학자들이 고생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 너무 아파서 자신의 기억에서도 지워버리고 싶은 블룸과 몰리의 숨겨진 사연을 눈치채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내 기억에서 지워버린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잠깐이지만 나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상하다, 아프면서도 약간은 정화되는 느낌이 찾아오고, 한동안 나 자신에게 충실해진다.






https://youtu.be/AapZDCv40g4




신촌과 홍대사이 땡땡거리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과 피터캣의 서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인스타그램 @petercat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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