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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Nov 01. 2018

호밀밭의 파수꾼

10. 호밀밭의 파수꾼 - 샐린저


열일곱의 홀든 콜필드에게는 매우 우울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기말 시험에서 한 과목을 제외한 나머지 전 과목을 낙제했기 때문이다. 더 비참한 소식은 이번 퇴학이 네 번째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방학은 수요일부터 시작이지만, 더 이상 학교에 볼 일이 없어진 그는 토요일인 오늘 먼저 떠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은 홀든이 집으로 돌아가는 2박 3일간의 이야기다. 


모든 게 엉망이다. 하키부 주장인 그는 다른 학교와의 시합을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지도에 정신 팔려 장비를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부원들의 원망 섞인 눈초리를 견디며 돌아온 기숙사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광경을 계속 보고 있으면 모든 불편의 원인은 홀든 자신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괜한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다가 얻어 맞기까지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두려운 것이다. 또 다시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것과 그런 부모님 얼굴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정들어버린 학교와 친구들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단순한 구성의 소설이다. 학교에서 퇴학 당한 고등학생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만약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더라도 최대한 늦추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런 나를 받아주고 보호해 줄 사람들을 원할 것이다. 멀지 않은 거리를 2박 3일이나 걸려 돌아가야 하는 홀든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 간단한 작품을 어렵다고들 한다. 나 역시 아주 오래 걸린 것 같다. 왜일까? 아마도 홀든의 침묵 때문일 것이다. 끝없이 수다를 떨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주인공 때문일 것이다. ‘이방인’의 뫼르소를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할 수도 있다. 뫼르소와 홀든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말이 아니라 무심코 이뤄지는 행동,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타인들의 태도를 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이런 식으로 쓰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우리가 홀든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가 너무 두려워서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생각들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을 짐작하고 나면 그제서야 홀든의 정신 나간 행동들이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한다. 아마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러면서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러게 왜 퇴학을 네 번이나 당해가지고..’ 이 부분에서 우리 과거에 존재했던, 이유 없는 반항과 방황의 시기가 문득 떠오른다면, 작가에게 매우 기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홀든은 왜 네 번이나 퇴학을 당했을까? 폭력적인 성향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주로 물건을 빼앗기거나 얻어 맞는 편인 것 같다. 아직까지 동정인 걸 보면 심각한 이성문제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단지 뭔가를, 아직까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처럼 속물처럼 살고 싶지 않은 걸까. 아직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면 그는 어떤 상태에 놓여있는 걸까.


홀든에게는 형과 두 명의 동생이 있다. 아니 있었다. 소설을 쓰던 형은 돈과 명예를 좇아 헐리우드로 떠나버렸다. 엘리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 아이였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 피비가 있다. 


모든 일이 시작된 건 아마도 엘리의 죽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엘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차고의 유리벽을 주먹으로 모두 때려부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홀든의 기억이 잠시 등장한다. 동생의 죽음에 그런 식으로 반응한 걸 보면 아마도 홀든은 본래 약간 불안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건 짐작할 수 있다. 어른들은 홀든에게 홀든 자신을 위해 엘리를 잊으라고 말했을 것이다. 남은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걸 모를 리 없지만, 차마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애가 죽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내가 그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니? 그래도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둘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집으로 향하는 홀든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에게도 어느새 그의 불안과 초조가 전염되어 오는 걸 느낄 수 있다. 까닭 없이 초조해지고 신경질이 나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는 어떤 기억이 슬며시 떠올라 머리 속 어딘가를 끊임없이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지금은 잊고 살지만, 마치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잊고 살지만, 우리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읽는 이를 한껏 불안하게 하는 작품이지만, 마지막에는 그런 감정을 모두 정화시켜줄 멋진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살아남은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 피비의 등장이다. 여행가방을 들고 오빠를 따라나서는, 파란 코트를 입고 회전목마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피비를 보면, 홀든처럼 너무 행복해서 큰소리를 마구 지르고 싶어질 것이다.


지금은 잊고 있지만 모두가 한때는 이런 꿈을 꾸었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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