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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Nov 21. 2018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13. 위대한 개츠비 – 스콧 피츠제럴드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는 인간과 짐승,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내의 이미지가, ‘해변의 카프카’는 말 그대로 부조리의 바닷가에 서있는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은 저마다 작은 세계에 고립된 채 살아가는 우리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다르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평가처럼 ‘내가 대놓고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그 인물’ 개츠비에게서 위대함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아리송한 제목에 대해서도 저마다 다양한 해석들을 내놓았는데, 크게 별 의미 없다는 주장과 또는 역설이다 라는 의견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읽히는 건 좋은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걸 전제로, 적어도 제목에 작가의 그런 의도가 담겨 있다는 걸 전제로 읽어 봤다. 


작품 배경은 1922년 뉴욕, 백 년 전 미국 이야기다. 1차 대전으로 산업기반이 무너진 유럽으로 인해 미국은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드디어 미국이 세계사에 강대국으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돈이 넘쳐나고 주식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증권회사로 몰려들었다. 작가의 분신이자 예일 대학 출신의 화자 닉 캐러웨이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한국의 상황과도 유사한데, 1927년 미국이 그리고 1997년 한국이 각각 대공황과 IMF로 무너져 버린 것 까지도 닮은 꼴이다. 


지금으로써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 미국은 서구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나라였다. 금주법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당시 경제력을 기반으로 분출하는 젊은이들의 욕구는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부딪혀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을 대표하는 인물이 어쩌면 제이 개츠비인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있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개츠비의 저택에서는 매일 밤 성대한 파티가 열린다. 초대를 받았거나 받지 않았어도 괜찮다. 누구나 그 곳에서 무한정 제공되는 술과 음악, 그리고 밤새도록 계속되는 파티를 즐기면 된다. 금주법 시대에 가능한 일인가 궁금해지지만, 바로 그 점이 개츠비라는 인물의 배경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암흑가 거물쯤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술이나 향락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의 목적은 한가지다. 바로 만 건너편에 사는 데이지가 언젠가 자신의 파티에 참석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다시 돌아와 달라 청하고 싶은 것이다. 


데이지는 톰 뷰캐넌의 아내가 되었다. 뷰캐넌은 돈 많은 속물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무엇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나 몰라라 하는 식이다. 사랑하지도 않는 유부녀를 꾀어 장난감 가지가 놀 듯 하는 것에 대해 어떤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커지면, 다른 도시로 또는 다른 나라로 피해 버리면 그만이다. 데이지도 별다를 것 없는 것 같다. 오직 자극을 원할 뿐 그에 대한 책임은 관심 밖이다. 


닉 캐러웨이의 눈에 이 모든 상황은 한 편의 혐오스러운 촌극에 지나지 않았다. 너절한 톰 뷰캐넌과 영혼 없는 데이지 그리고 어린아이 수준의 상상력으로 꾸며낸 개츠비의 과거사 같은 것들 말이다. 개츠비의 파티에 참석해 개츠비가 제공한 술을 마시고, 비로소 긴장을 풀고 개츠비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처럼. 


개츠비가 자라난 환경은 보잘것없었다. 여느 아이들이 꿀 법한 꿈을 꾸고, 그릴법한 공상의 그림을 그리며 자라났다. 하지만 제임스 개츠라는 이름의 평범한 소년의 삶은 열 일곱 살 때 우연히 광산 부자인 댄 코디의 요트에 올라타면서 달라졌다. 댄 코디와 요트에서 보낸 오 년 동안 제임스 개츠가 제이 개츠비로 변화한 것이다. 제이 개츠비가 10대 소년이라면 누구나 꿈꿀법한 이상적인 남자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제이 개츠비의 삶이 처음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힌 건 스물 다섯, 데이지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였다. 대단한 가문의 데이지는 가난뱅이 젊은이가 감히 넘볼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츠비의 선택은 역시 스물 다섯 젊은이가 할 만한 것이었다. 부자가 되어 황금모자를 쓰면 그녀가 돌아오리라는 것. 아마도 그 순간은 제이 개츠비라는 대단한 인물의 삶이 드디어 구체화되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던 베이커와 헤어지는 자리에서 닉 캐러웨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서른이에요.” 내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나이는 오 년 전에 지났어요.”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리고 반쯤은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그리고 막심한 후회를 하며, 나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개츠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잘 드러나는 장면인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꿈을 꾼다.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날고 지구를 구하는 시기가 지나면, 그 꿈은 조금 더 구체화되어 위대한 발견이나 대단한 성취, 그리고 다시 없을 진실한 사랑 같은 것들로 바뀌게 된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닉 캐러웨이의 말처럼 스물 다섯쯤 되면 조금씩 사라져가기 마련이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조던 베이커의 거짓말 하는 버릇 등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닉의 태도는 개츠비가 사랑에 빠질 때 데이지의 성격이나 나쁜 습관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데이지에게 빠져버린 것과는 많이 다른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개츠비의 시선은 고정되어 버렸고, 이후 그의 삶은 어떻게든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그 결심에 얼마간의 자기기만과 그로 인한 우쭐한 감정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개츠비에게 그 순간은 너무 중요해서 그런 모든 자기 판단 기준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년 시절에 꿈꾸었던 완전하고 위대한 개츠비를 완성하는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신념에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개츠비의 모습을.


“다들 썩었어.” 내 외침이 잔디밭을 건너갔다. “너는 그 빌어먹을 인간들 다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인간이야.”


https://youtu.be/zzGOr1dII7I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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