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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캣 Nov 30. 2018

이방인 - 알베르 카뮈

14.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지금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라고 한다.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이방인’이다. 우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전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대부분이 망설임 없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첫 작품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번역 논란이나 제목 논란 등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점잖은 문학 출판계에서 간혹 험한 말들이 오가는 걸 보면 역시 인기가 좋구나, 생각하게 된다.


수 십 년 동안 이어져온 일이다. 특히 이 작품은 여러 필독서 중에서도 해가 갈수록 인기가 더 높아지는 유일한 작품인 것 같다. 왜일까? 가벼운 분량, 쉽고 시크한 문장, 멋진 제목, 잘생긴 작가.. 여러 이유들이 떠오르지만, 아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작품 속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녹아있어서, 그것이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해가 갈수록 더 구체화되고 있다.


얇지만 결코 쉬운 작품은 아니다.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서너 장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간단한 구성이지만, 그 단순한 구성에 비해 주인공 뫼르소의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만약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 있다면, 이 작품의 열쇠는 주인공이 왜 그렇게 행동했고, 그 행동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는데 있을 것이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작은 무역회사에 다니는 뫼르소에게 어머니의 부음을 알리는 전보가 도착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사장에게 휴가를 요청하는 자리에서 불필요한 변명까지 한다.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 라고. 그리고 유명한 줄거리가 이어진다. 양로원에 도착해 어머니의 시신을 확인하려 하지 않고, 어머니의 마지막 근황을 궁금해하지 않으며, 밤샘하는 동안 시신 곁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졸기도 한다. 장례식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도 않는 그를 어머니의 양로원 동료들은 마치 심판하듯 지켜본다.


피곤한 장례식에서 돌아온 뫼르소는 휴식을 위해 바닷가를 찾았다가 옛 동료 마리를 만난다. 여기까지 꾹 참고 읽었다 해도, 연인이 된 마리에게 하는 뫼르소의 행동은 어이가 없다.


‘저녁에 마리가 찾아와서,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마리가 원한다면,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던 것처럼,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나하고 결혼을 해요?” 하고 마리는 말했다. 나는, 그런 건 아무 중요성도 없는 것이지만 정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좋다고 설명을 했다. 게다가 결혼을 요구한 것은 그녀 쪽이고, 나는 그저 승낙을 했을 뿐이다. 그러자 마리는 결혼이란 건 중대한 일이라고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아니야.”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잠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자기와 같은 관계로 맺어진 다른 여자로부터 같은 청혼이 있었어도 승낙을 했을 것인가, 다만 그것만이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다. 모래와 바다에 수직으로 쏟아지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햇빛 아래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는 동안에도 뫼르소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죄를 뉘우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며 신을 부정한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도 지겹도록 고집을 꺾지 않는 그를 지켜보는 마음은 답답하고 또 안타깝다. 마지막 기도를 위해 찾아온 사제의 멱살을 붙잡고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절규하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그리고 결론을 뻔히 알고 난 뒤에도 우리는 다시 이 책을 펼치게 되는 것일까.


카뮈는 뫼르소를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생활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 표현이나 감정 등을 꾸며내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뫼르소의 행동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가 없다고 해서 생활이 바뀌지도 않을 거고, 결혼 생활 내내 진정한 사랑이 함께 하지도 않을 테니. 그렇지만, 그래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주관이나 고집이 과연 단두대에 목이 걸릴 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문학은 해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했다. 이 작품에서 카뮈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먼저 떠오르는 건, ‘너는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가?’다. 오래된 연인에게 습관적으로 사랑한다 말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별일 아니라 생각하면서도 진심으로 뉘우치는 척 하며 한편으로는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이제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다거나, 당신들은 당연하게 그런 실수를 반복하면서 왜 항상 내 실수만 물고 늘어지는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느냐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것, 조금도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그에게 딱 부러지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은 결국 별로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또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


프로이트는 꿈을 소망 성취로 해석했다. 성적인 의미를 가지는 꿈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소 할 수 없는 것들은 의식의 경계심이 느슨해진 꿈속에서 실현된다. 소설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실현되지 못한 어떤 가능성을 실현시켜 보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주인공 라스콜니코프가 살인의 경험을 대신 해주는 것처럼.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도 마찬가지다. 가식을 배제하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삶을 대신 살아준 것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 욕망의 가능성을 뫼르소에게 투영시켜 실현해보고, 그 과정과 결과를 바라보고, 그리고 판단하는 것이다. 


왜 해가 갈수록 ‘이방인’의 인기가 높아지는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했으니 그 이야기로 마무리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뫼르소의 꿈은 크지 않았다. 승진이나 성공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작은 집도 크게 느낄 만큼 소박한 삶이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쉬는 삶. 단지 그걸 원했을 뿐이다. 한가지 다른 게 있다면 솔직함 정도다. 물론 카뮈는 이 솔직함을 반항의 관점에서 접근했을 것이다. 그가 평생 말했던 독립적인 인간을 위한 반항 말이다. 하지만 이 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이 소설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를 자극한다. 이를테면 힘들게 혼자 살아가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비극적 무관심 같은 것들. 



https://youtu.be/8n6XghoEVU4





홍대와 신촌사이 경의선 책거리 근처에서 북카페 피터캣을 운영중입니다. 피터캣은 문학, 인문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북카페 운영기와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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