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협함과 포용력으로 결정되는 문화지능.
좋은 회사 덕에, '어쩌다 어른'을 통해 잘 알려진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을 한 달에 걸쳐 4번이나 들을 기회가 있었다. :)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배웠지만 그 중 일부를 압축한 요약본이자 소감문으로 이 글을 남겨본다.
‘냉전’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Bernard M. Baruch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If all you have is a hammer, everything looks like a nail.”
Bernard M. Baruch
말 그대로 '당신이 가진 것이 망치 밖에 없다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이는 망치로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도 망치질을 할 만한 구석이 보이면 망치로 치고 싶어 하는. 망치 말고 다른 도구나 해결책은 생각하지 못하는, 일종의 '편협함'을 의미한다.
사실 나만해도 이 격언을 들었을 때, '뭐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가볍게 여기기에는 편협함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것들이었다.
'대'가 '소'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교수님은 문화지능이 아주 높은 지인 분을 예시로 들어주셨는데, 이 분은 아들이 결혼을 하면서 며느리를 맞이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문화지능이 보통인 대부분의 시아버지들은 이렇게 질문을 한다.
"며느리가 우리 집에 잘 적응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이 분은 교수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셨다고 한다.
"경일아, 우리 집안이 이 며느리를 위해 뭘 바꿔야 할까?
문화지능이 무엇인지 느낌이 빡 왔다. 이 얼마나 전국의 모든 며느리들이 감동받을 질문인가. 문화지능이란 이처럼 소수를 다수에 끼워 맞추거나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다름을 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다.
이 문화지능은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과 단체에도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해 볼 수 있는데, 문화지능이 높은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내가 소수가 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 조직 안에서는 안전하겠구나'하는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이 문화지능은 정말 중요하다.
문화지능은 기본적으로 "참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가 문화가 낮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면서 압박감을 주는 조직, 거기에 문화지능이 떨어지는. 이 세 가지 삼위일체를 이루는 조직일수록 최악의 조직이라고 한다..!
3대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의 공통점 중의 하나는 바로 문화지능이 낮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아주 편협하다. 자신의 생각'만' 진심으로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머뭇거림이나 고민이 없다. 함께 조직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에 대한 포용력이나 인정 또한 있을 수 없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와 진짜 어떻게 이런 거짓말을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냐'라는 말이 나오는 생각도 그들에게는 거짓말이 아니다. 왜냐? '진심으로' 그 개소리(Bull Shit)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빌런들을 대할 때 기억하면 좋은 한 가지는, '얼마나 저 사람이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인지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점! 저 사람이 진심으로 하는 저 소리가, '제대로 된 말'인지가 더 중요하다. 진심으로는 개소리도 진지하게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
인간은 기본적으로 피드백에 반응하는 동물이다. 무슨 말이냐. 삽질도 Score를 매기고, 랭킹을 매기게만 해놓으면 밤새도록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고생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점수를 달성했는지, 몇 등이나 하고 있는지 등의,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힘든 일도 계속할 수 있게 해 준다. 왜일까.
사람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도권이 뺏겼다'라고 인지한다. 그래서 주도권을 쥐면 자아가 편해진다. 즉, '내가 이 고생을 하면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예측 가능할 수 있도록 피드백을 계속 줌으로써 주도권을 쥐어주면, 자아는 편해지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
이렇듯, 구체적이고 좋은 피드백은 힘든 일도 힘든 줄 모르고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준다. 그렇기에 조직과 단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다.
누군가에게는 예측가능한 추가 수당이 좋은 피드백이 될 수도 있고, 일의 결과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물어봐주면 스스로 신나서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Self Feedback의 개념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더 다양하고 더 좋은 칭찬을 찾고 방법을 찾아가면, 재미없는 회사와 일도 게임처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이 중요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망치만 들고 있다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나르시시스트와 같은 빌런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망치에 부합하는 행동에만 칭찬한다. 조직과 단체에게는 칭찬과 피드백을 주는 방법이 편협하지는 않은지 잘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하겠다.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나니, 교수님이 전체 강연에 걸쳐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언젠가 들었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았다. 이찬수 목사님은 '경화'라는 단어의 뜻을 알려주시면서 생각의 경화에 대해 경고하셨는데, 이 내용이 강의의 핵심 키워드였던 것 같다.
경화의 뜻은 "단단해져 굳어짐"이다. 현대인의 질병인 성인병 중 고지혈증과 함께 동맥경화라는 단어로 익숙한 단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동맥경화'라고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그에 반해, 생각의 경화. 즉, 편협해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은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등한시하는 것 같다.
사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사람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따돌림을 만들고, 선민사상 및 우월주의를 조장했던 역사가 버젓이 있다.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따지면 동맥경화 같은 건강의 문제보다, 사람의 마음을 죽이는 생각의 경화가 단언컨대 더 위험하다.
개인의 편협함도 무서운 것이지만, 조직이 그 편협한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자연스럽게 대가 소를 희생시키고 있는 낮은 문화지능을 가진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망치만 있는 건 아닌데, 공구통을 뒤져보지도 않은 채 망치만 쥐고 있지는 않은지. 망치질 없이 뽑기만 하면 되는 걸 망치로만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또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망치를 들고 있지 않다고, 3대 빌런들처럼 화부터 내고 있지는 않는지. 나의 문화지능을 자주 되돌아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