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동아시아

산과 바다가 키운 네 형제

by 한창훈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공식은 단순합니다. 중국이 크고, 나머지는 그 옆에서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한반도, 일본, 베트남, 몽골. 전부 중국이라는 거대한 중력장 옆에서 자기 궤도를 지키려 애쓴 역사입니다. 이 역학의 출발점은 사상도 아니고 인물도 아닙니다. 땅의 크기와 모양입니다.


그림16.png


중국 — 땅이 두 개인 나라


중국 면적은 한반도의 약 44배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땅이 균일하지 않습니다. 크게 둘로 나뉩니다.

동쪽 절반: 사람이 사는 중국. 화북 평원(華北平原)과 양쯔강(長江, Yangtze) 이남의 저지대입니다. 중국 인구의 94%가 이 동쪽 절반에 삽니다. 두 개의 큰 강이 이 땅의 뼈대입니다.

황허강(黃河, Yellow River)이 북쪽을 흐릅니다. 이름 그대로 누런 흙탕물입니다. 황토를 실어 나르며 화북 평원을 만들었습니다. 중국 문명이 시작된 곳입니다. 대신 범람이 잦았습니다. '중국의 슬픔(China's Sorrow)'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입니다. 치수(治水)가 곧 정치였습니다. 강을 다스리는 자가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황허강 하나가 중앙집권의 필요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양쯔강이 남쪽을 흐릅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입니다. 황허강보다 온화하고 비옥합니다. 쌀이 여기서 자랍니다. 중국 경제의 중심은 역사가 진행될수록 북쪽(황허)에서 남쪽(양쯔)으로 내려왔습니다. 정치 수도는 베이징(북쪽)인데 경제 중심은 상하이(양쯔강 하구)인 구조가 이 이동의 결과입니다.


그림17.jpg 북쪽이 황허강, 남쪽이 양쯔강 (장강)

서쪽 절반: 사람이 안 사는 중국. 티베트 고원, 신장(위구르), 내몽골. 땅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인구의 6%만 삽니다. 이 서쪽 절반은 사실상 완충지대입니다. 티베트 고원이 인도를 막고,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이 중앙아시아를 막고, 내몽골 초원이 북방 유목민과의 경계를 이룹니다.

중국 역대 왕조의 핵심 전략은 하나였습니다. 동쪽의 비옥한 땅을 지키기 위해 서쪽의 황량한 땅을 통제하는 것. 현대 중국이 티베트와 신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 2천 년짜리 지정학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만리장성 — 선이 아니라 경계

만리장성(萬里長城, Great Wall)은 관광 명소이기 전에 세계관의 선언입니다. 이 벽의 남쪽은 농경입니다. 밀을 심고 쌀을 심고 정착합니다. 북쪽은 유목입니다. 말을 타고 양을 몰고 이동합니다.

장성의 위치가 그 경계선입니다. 연 강수량 400mm 등강수량선과 만리장성의 궤적이 거의 일치합니다. 비가 400mm 이상 오면 농사가 됩니다. 그 이하면 풀밖에 안 자랍니다. 자연이 이미 선을 그어놓은 곳에 인간이 벽돌을 쌓은 겁니다.

이 선 북쪽에서 흉노, 돌궐, 거란, 여진, 몽골이 차례로 내려왔습니다. 장성은 이들을 완전히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농경 세계와 유목 세계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각인시키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여기부터는 다른 세계입니다"라고 땅 위에 줄을 긋는 행위. 그 줄이 6,000km입니다.


한반도 — 대륙과 해양이 충돌하는 지점

한반도. 삼면이 바다입니다. 남해, 동해, 서해. 북쪽은 산악 지대이고, 그 너머에 만주(현재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가 있습니다. 대륙 세력(중국, 러시아)과 해양 세력(일본, 미국)이 만나는 정확한 교차점입니다.

이 위치가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시대에 따라 달랐습니다. 교역의 중개자가 될 수도 있고, 강대국 충돌의 전장이 될 수도 있는 자리입니다. 4편에서 다뤘던 중동의 논리가 여기도 적용됩니다. 교차로에 서 있으면 상인도 오지만 군대도 옵니다.

한반도의 지형도 중요합니다. 국토의 70%가 산지입니다. 평야는 서쪽과 남쪽 해안에 몰려 있습니다. 그래서 인구도 서쪽과 남쪽에 집중됩니다. 수도가 서울인 이유, 곡창지대가 호남인 이유, 항구가 부산인 이유. 전부 지형이 설명합니다.


일본 열도 — 바다가 만든 VIP석

일본은 한반도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습니다. 대한해협(현해탄, 일본에서는 쓰시마 해협(対馬海峡)이라 부릅니다)이 그 간격입니다. 200km.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입니다.

이 200km가 일본 역사의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가까우니까 문화가 건너왔습니다. 한자, 불교, 율령 제도가 한반도와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멀기도 합니다. 대규모 침략이 어렵습니다. 몽골이 두 번 시도했습니다. 두 번 다 실패했습니다. 1274년과 1281년. 두 번째 시도에서 태풍이 몽골 함대를 부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바람을 '가미카제(神風, 신풍)'라 불렀습니다. 신이 보낸 바람. 실제로는 태풍이 보낸 바람이었지만, 어쨌든 바다가 일본을 구했습니다.

3편에서 영국의 도버 해협(34km)을 다뤘습니다. 영국은 34km 덕분에 천 년간 본토 침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200km입니다. 더 넓은 해자(堀, moat)를 가진 셈입니다. 이 안전 거리 덕분에 일본은 외부 영향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쇄국(鎖國)도 가능했고, 개국도 자기들 타이밍에 할 수 있었습니다. 섬이라는 조건이 역사적 자율성을 보장했습니다.

대신 자원이 부족합니다. 국토의 73%가 산지이고, 경작 가능한 땅은 12%에 불과합니다. 화산 열도라 지진이 잦습니다. 불의 고리(Ring of Fire) 위에 앉아 있습니다. 안전하지만 가난한 섬. 이 조건이 근대에 일본을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자원을 구하러 대륙으로 나간 것이 제국주의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더 깊은 이야기입니다

타이완(Taiwan) — 130km의 긴장. 타이완은 중국 대륙에서 130km 떨어져 있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직선거리쯤 됩니다. 이 130km의 타이완 해협(Taiwan Strait)이 현대 동아시아 지정학의 가장 뜨거운 지점입니다. 대륙과의 최단 거리를 본다면 일본의 200km보다 가깝고, 영국의 34km보다 멉니다. 침공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로는 극도로 어려운 거리입니다. 해협을 건너는 상륙 작전은 군사적으로 가장 복잡한 작전 중 하나입니다. 이 130km가 좁혀질지, 유지될지가 21세기 동아시아의 가장 큰 변수입니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 보이지 않는 전선. 이 두 바다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은 2편에서 다뤘던 대륙붕의 연장선입니다. 바다 밑에 자원이 있고, 그 자원 위에 영유권 주장이 겹칩니다. 남중국해에는 중국이 인공섬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산호초를 콘크리트로 덮어 활주로를 깔았습니다. 모래 위에 세운 영토 주장. 현대판 만리장성을 바다 위에 쌓고 있는 셈입니다.

만주(Manchuria) — 역사의 회전문. 한반도 북쪽, 중국 동북부. 현재의 랴오닝·지린·헤이룽장 세 성(省)입니다. 동북삼성이라 하죠. 이 지역은 동아시아의 회전문이었습니다. 여진족이 여기서 일어나 금(金)나라를 세웠고, 다시 여기서 일어나 청(清)나라를 세웠습니다. 고구려의 영토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남하하고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곳이기도 합니다. 한반도·중국·러시아·일본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좁은 지역에 너무 많은 역사가 쌓여 있어서, 이 지역의 역사 해석은 국가마다 상당히 다릅니다.

그림18.png 우리 역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만주.

중국의 남북 경계 — 친링산맥과 화이허강. 중국을 진짜로 가르는 선은 만리장성이 아닙니다. 친링산맥(秦嶺, Qinling Mountains)과 화이허강(淮河, Huai River)을 잇는 선입니다. 이 선 북쪽은 밀을 먹고 만두를 빚습니다. 남쪽은 쌀을 먹고 국수를 삶습니다. 북쪽은 춥고 건조합니다. 남쪽은 덥고 습합니다. 이 선이 중국 내부의 문화적·경제적 남북 격차를 만들었습니다. 같은 나라 안에 두 세계가 있는 겁니다. 한국의 영호남 차이가 있지만, 이건 대륙 스케일의 분리입니다.

조공 체제(朝貢體制, Tributary System) — 지형이 만든 질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는 유럽과 달랐습니다. 유럽은 3편에서 봤듯이 비슷한 크기의 나라들이 경쟁했습니다. 동아시아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크고, 나머지가 작습니다. 지형이 만든 크기 차이가 외교 질서를 결정했습니다. 조공 체제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예물을 보내고, 큰 나라는 그 대가로 안전과 무역을 보장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불평등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실용적인 거래였습니다. 한반도, 일본, 베트남, 류큐(현재 오키나와)가 이 시스템 안에 있었습니다. 반발하기도 했고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동아시아의 핵심 원리는 이겁니다.

중국은 크기로 질서를 만들었고, 나머지는 바다와 산으로 독립을 지켰습니다. 한반도는 산과 바다 사이에서 버텼고, 일본은 바다 건너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였고, 몽골은 스텝 위에서 한 번 터졌다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땅의 크기가 질서를 만들고, 땅의 모양이 그 질서에 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전 07화6편. 남아시아(인도 아대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