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가 만든 별세계
(대륙이 찢어지기 전) 인도는 원래 아프리카 옆에 있었습니다. 약 1억 4천만 년 전에 떨어져 나왔습니다. 북쪽으로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약 5천만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했습니다. 두 대륙이 부딪힌 충격으로 땅이 솟아올랐습니다. 그게 히말라야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맥은 거대한 교통사고의 흔적입니다.
대륙이라 부르기엔 작고, 반도라 부르기엔 큽니다. 그래서 아대륙(亞大陸, Subcontinent)이라는 절충안이 생겼습니다. 현재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스리랑카, 몰디브를 합친 지역입니다. 면적은 한반도의 약 20배. 인구는 세계의 약 4분의 1. 20억 명 가까운 사람이 이 땅 위에 삽니다.
남아시아는 북쪽은 산이 막고, 나머지 삼면은 바다가 감쌉니다. 들어가기 어렵고, 나오기도 어렵습니다. 이 고립이 남아시아를 별세계로 만들었습니다. 중국 문명과도 다르고, 중동 문명과도 다르고, 유럽 문명과도 다른, 독자적인 우주가 히말라야 남쪽에서 자랐습니다.
남아시아를 이해하려면 세 개의 벽과 하나의 문을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벽: 히말라야 산맥(Himalayas). 길이 2,400km, 최고봉 에베레스트 8,849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14개 중 10개가 여기 있습니다. 이 산맥 하나가 남아시아와 동아시아를 완전히 갈라놓았습니다. 인도와 중국은 이웃인데, 역사적으로 직접 부딪힌 적이 거의 없습니다. 싸우고 싶어도 군대를 끌고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8,000m짜리 장벽 앞에서 전차는 무용지물입니다. 서울로 치면 북한산 높이를 20배로 늘려서 동서로 서울 전체를 가로막은 겁니다. 그 너머가 어떤 세상인지 궁금해도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히말라야는 아직 성장 중입니다. 매년 약 5mm씩 높아지고 있습니다. 인도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계속 솟아오르는 겁니다. 에베레스트는 아직 사춘기입니다.
두 번째 벽: 힌두쿠시 산맥(Hindu Kush). 서쪽 벽입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5편에서 다뤘던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의 산맥이 여기서 남아시아의 서쪽 문을 잠그고 있습니다.
세 번째 벽: 바다. 서쪽의 아라비아해(Arabian Sea), 남쪽의 인도양(Indian Ocean), 동쪽의 벵골만(Bay of Bengal). 삼면이 바다입니다. 바다는 연결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대규모 침략을 막는 자연 방벽이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문: 카이베르 고개(Khyber Pass). 영어로는 카이버 고개. 여기를 지나 인도로 들어가면 교과서에서 배운 '간다라'가 나옵니다. 네, 간다라 미술의 그 간다라 말이죠. 이 문이 핵심입니다. 파키스탄 북서부, 힌두쿠시 산맥을 관통하는 길입니다. 길이 약 53km, 가장 좁은 곳의 폭 15m. 한 차선 반 정도입니다. 이 좁은 통로가 중앙아시아에서 인도 아대륙으로 들어오는 사실상 유일한 육로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이 문 앞에서 반복됐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쿠샨 제국이 이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열일곱 번이나 이 문을 넘었습니다. 무굴 제국의 바부르도 이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영국도 세 차례 전쟁을 치르며 이 문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인도 역사의 침략자 명단은 카이버 고개 통행 기록과 거의 일치합니다. 2편에서 다뤘던 원리가 여기도 적용됩니다. 좁은 것이 넓은 것보다 비쌉니다.
세 개의 벽과 하나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다시 세 개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인도-갠지스 평원(Indo-Gangetic Plain). 갠지스 강은 유명하죠. 그런데 갠지스는 영어식, 강가(Ganga)가 현지식 표현입니다. 네, 가끔 보이는 인도 식당 프랜차이즈 강가가 갠지스인 것이죠. 인도-갠지스 평원은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물이 만든 거대한 충적 평야입니다. 인더스강(Indus River)은 서쪽(현재 파키스탄)으로, 갠지스강(Ganges)은 동쪽(현재 인도 북부·방글라데시)으로 흐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 하나입니다.
이 평원에 남아시아 인구의 대부분이 몰려 삽니다. 비옥한 땅, 풍부한 물, 온화한 기후. 사람이 모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문명도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인더스 문명(하라파·모헨조다로)이 인더스강 유역에서 피어났고, 마우리아 제국·무굴 제국이 갠지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서울로 치면 한강 이남 평야 지대입니다. 땅이 평평하고 물이 풍부한 곳에 사람과 돈과 권력이 모인다는 건, 서울이나 인도나 다르지 않습니다.
데칸 고원(Deccan Plateau). 인도 남부를 차지하는 삼각형 모양의 고원입니다. 서쪽에 서가츠 산맥(Western Ghats), 동쪽에 동가츠 산맥(Eastern Ghats)이 테두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높이가 적당해서(평균 600m) 기후가 쾌적합니다. 그리고 높이가 적당하기 때문에 북쪽 평원의 제국들이 남쪽까지 지배력을 뻗치기 어려웠습니다.
인도 역사에서 '북인도는 정복당하고, 남인도는 버텼다'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데칸 고원이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 무굴 제국조차 남인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고원은 높이가 만든 방어력입니다. 6,000m짜리 히말라야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600m의 고도차도 군대의 행군을 충분히 지치게 만듭니다. (군대에서 행군해 본 분들은 압니다. 저의 경우는 땡칠이 고개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근무한 분들도 비슷한 이름의 고개를 기억하시더군요.)
타르 사막(Thar Desert). 인도와 파키스탄 서쪽 국경에 걸쳐 있는 사막입니다. 면적이 한반도와 비슷합니다. 이 사막이 인더스강 유역과 인도 내륙 사이의 자연 장벽 역할을 합니다. 사막을 건너 군대를 끌고 오기는 어렵습니다. 카이버 고개와 함께, 인도의 서쪽 방어를 구성하는 두 번째 요소입니다.
몬순(Monsoon) — 비가 곧 운명. 남아시아의 역사를 히말라야만으로 설명하면 절반이 빠집니다. 나머지 절반은 몬순입니다. 여름에 인도양의 습한 바람이 대륙으로 밀려옵니다. 히말라야에 부딪혀 비를 쏟아냅니다. 이 비가 갠지스 평원을 적시고, 농사를 가능하게 합니다.
몬순이 제때 오면 풍년입니다. 늦으면 가뭄입니다. 너무 많이 오면 홍수입니다. 인도 농업의 운명이 매년 6월에 결정됩니다. 몬순이 도착하는 날짜를 예측하는 건 현대에도 국가적 관심사입니다. 수천 년간 이 땅의 축제, 종교, 달력이 몬순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의 장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습니다. 다만 규모가 다릅니다. 인도 동북부 체라푼지(Cherrapunji)는 연 강수량이 11,000mm를 넘습니다. 서울 연 강수량(약 1,400mm)의 약 여덟 배입니다.
스리랑카(Sri Lanka) — 인도양의 보석. 인도 남쪽 끝에서 30km 떨어진 섬입니다. 한반도의 약 3분의 1 크기. 과거에는 실론(Ceylon)이라 불렸습니다. 실론 티(Ceylon Tea)의 그 실론입니다. 지리적 위치가 절묘합니다. 인도양 무역의 중간 기착지입니다. 아라비아해에서 벵골만으로, 중동에서 동남아로 가는 배가 여기를 지나갔습니다. 향신료가 이 섬을 세계 무역의 노드(node)로 만들었습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이 섬을 탐냈습니다.
몰디브(Maldives) — 가라앉는 나라. 인도 남서쪽 인도양에 흩어진 1,190개의 산호섬입니다. 평균 해발 1.5m.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해수면이 1m만 올라가면 국토 대부분이 사라집니다. 기후변화가 이 나라에는 존재의 위협입니다. 국제회의에서 몰디브 대통령이 수중 각료회의를 열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존적 공포의 표현이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미스터리. 인더스 문명은 이집트·메소포타미아와 동시대(기원전 3300~1300년경)에 번성했습니다. 도시 계획이 놀랍도록 정교했습니다. 하수 시스템, 표준화된 벽돌, 격자형 도로. 현대 도시 계획가가 보아도 감탄할 수준입니다. 그런데 문자가 아직 해독되지 않았습니다. 인더스 문자는 현존하는 미해독 문자 중 가장 유명합니다. 이 문자가 풀리는 날, 고대사의 빈 페이지가 채워질 겁니다. 수천 년 전의 도시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 건데, 아직 읽을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분리독립의 지리학. 1947년 영국이 물러나면서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됐습니다. 종교가 기준이었습니다. 힌두교 다수 지역은 인도, 이슬람 다수 지역은 파키스탄. 그런데 이슬람 다수 지역이 인도의 서쪽과 동쪽에 각각 있었습니다.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 둘 사이에 인도 영토가 끼어 있었습니다. 같은 나라인데 사이에 다른 나라가 있는 구조입니다. 서울에서 부산이 우리 나라인데, 가운데 대전~대구 구간이 다른 나라라고 상상하면 됩니다. 이 비현실적 구조는 결국 1971년 깨졌습니다. 동파키스탄이 독립해서 방글라데시가 됐습니다. 지리를 거스른 국경은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남아시아는 산이 만든 섬입니다.
히말라야가 북쪽을 막고, 바다가 나머지를 감싸고, 카이버 고개만이 유일한 출입구였습니다. 이 구조가 인도 문명의 성격을 결정했습니다. 외부의 영향이 천천히, 좁은 문 하나를 통해서만 들어왔기 때문에, 인도는 받아들이되 자기 방식으로 소화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슬람이 들어와도 인도식 이슬람이 됐고, 영국이 들어와도 인도식 민주주의가 됐습니다. 벽이 만든 시간, 그 시간이 만든 독자성. 그것이 남아시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