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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창훈 Jun 15. 2020

후기 - 대통령의 통역사,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영어도, 통역도, 센스도 뛰어난 그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데 다른 사람의 말을 옮기다보니 정작 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더라구요." 

통역사의 세계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듣자마자, 아~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가는 길을 선택하다 보니 통역을 하게 되었고, 돈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통역을 할때 가장 반짝이는 눈빛을 보여주는 변주경 통역사를 친구이자 게스트로 모시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자신의 말을 하는 기회는 많지 않아 쑥스럽다면서도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여운이 있어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내가 이해한 대로 편집해서 소감을 정리해 본다.  많은 분들이, 그리고 나도 궁금했던 테마를 중심으로 한번 들여다 보면 이렇다. 


통역, 아무나 할 수 있는건가?


  내가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 바는 이랬다. 언어적 능력을 타고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리고 어릴적부터 부모님 덕분에 해외에서 공부를 하게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의 실력적인 격차는 당연히 있다. 심지어 영어라는 언어뿐만 아니라 배경 문화에 대한 감각과 이해의 수준도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타고나지 않았다고, 환경이 좋지 않다고, 이미 성인이 되었다고 영어를 못하거나 통역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변주경 통역사는 개인적 사연으로 통역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좋아한 나머지 '미친여자'처럼 통역 훈련에만 집중한 시간들이 있었다.  어느정도로 미쳤을까?  버스 안에서도 공부했던 것을 복기하며 창밖을 보며 계속 중얼중얼 거렸다고 한다. (내가 봤더라도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ㅎㅎ)  


   이미 좋은 조건을 타고난 사람, 재능이 있는 사람과 격차가 당연히 있을 수 있고 , 죽어라고 노력해도 안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영어를 못하고 통역을 못할 이유는 없다. 언어는 언어대로 푹 빠져서 (제대로 된 방법으로) 훈련하면 되는 것이고, 자신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공부를 해나가면서 지속적으로 확장해 가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통역 일을 하게되면 일과 공부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통역을 제대로 하려면 해당 분야를 집중해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


    영어 공부법의 고수들이 워낙 많고, 각자 자기만의 방식을 말하기 때문에 실제로 나에게 무엇이 맞는 방법인지 모르겠다고 느낄때가 많다.  나의 귀에 가장 명확하게 들어온 것, 그리고 크게 공감한 것은 'Passive - Active' (Input - Output) 이었다.  맨날 듣고, 맨날 읽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말하고, 쓰는 것이다. 이것은 언어 이외의 영역에도 당연히 적용되는 것이다. 평생 책을 열심히 읽다가 끝난다는 것은 글쎄 ..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책은 생각의 자극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극을 받아서 실천을 하거나, 나의 것으로 소화해서 다시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 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언어 훈련의 기본은 '열심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열심히'라는 것은 정말 사랑하고 즐거워해야만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역시 어느정도 영어를 잘 활용하게 된 배경에는 호기심과 재미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관종끼가 있었다는 것이 외국어 훈련에 작지 않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우리가 보통 특효 처방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전문 통역사의 답변은 기본에 해당되는 부분이 많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실망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안도했다.  역시 내 관점이 단지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받은 느낌이 들어서. 


마음이 시키는 선택


    살다보면 마음이 시키는 선택과 현실 맞춤형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20, 30대의 나이는 선택의 기회가 많은 시기임과 동시에 그로 인해 피곤하고 갈등되는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돈 잘버는 일을 접고 돈이 안되는 일을, 그냥 좋을 것 같아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의 선택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꿔버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어느쪽을 선택해도 장단점은 있다. 그래서 선택이 어렵다.  그 선택은 결국 내가 평소 어떤 가치에 우선순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수반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린다.

 

    나 역시 20,30대에 많은 선택을 했다. 특히 현실계에서 입사, 퇴사, 재입사, 퇴사, 독립이라는 일련의 선택들을 하면서 많은 갈등을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게다가 40대 후반이 된 지금에도 그때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에 대한 답을 쉽게 내지는 못한다. (음.. 퇴사는 옳은 것이었다는 생각을 종종하기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40대에는 더 이상 20,30대 때와 같은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선택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다.  그래서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한다. 그래서 난 젊을 때보다 지금이 좋다고. 


대통령과 함께한 시간


    대통령과 함께한 경험을 가진 이들 중 대중적으로 아주 많이 알려진 인물들이 여럿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통역사가 해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변주경 통역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 통역을 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가장 와닿았던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 민족을 정말 본인의 분신인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 부분이었다. 국민이, 나라가 아프면 본인이 똑같이 아파했다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어떻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독재와 싸울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종종 대통령이 함께하는 사람들을 종종 모아놓고 인문학적 이야기와 강의를 자주 해주었다고 했다.  그건 또 어떤 느낌일까? 정말 깊이 몰입하게 되는 시간이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시야가 넓어지고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은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는 큰 선물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감동과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 이야기를 듣는 감동은 분명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의외의 발견, 통역은 망칠때가 더 많다?


    내가 직업을 통역사로 바꿀일은 1%도 안될거라 생각하지만, 통역사의 삶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좁은 통역 부스 안에서 초집중을 하면서 일하는 노고, 사전에 엄청나게 준비하는 수고 등은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치열한 현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빠르게 하는 연사를 만나면 정말 많이 긴장하고 힘들어 한다는 말을 들으니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 분야를 전문 용어로 빠르게 말하는 연사를 만나면 그 연사가 밉겠다는 질문이 있었는데, 정말 분명하게 연사를 정말로 좋아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답했다. 아~ 이거야말로 가장 쉽지 않은 핵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역은 통역사의 기준으로 망쳤다고 생각할 때가 많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전에 자료를 아예 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현장에서 모든  상황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연자가 말을 빠르게 하는 경우도 있고, 분명히 잘못된 정보임을 아는데도 연자가 말한대로 그대로 말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 그럼에도 온전히 몰입하고 연자와 하나가 되어 작두타는 느낌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 그런 경험이 있기에 쉽지 않은 일도 즐겁게 지속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마치며


나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쉬운 일은 없지만, 내가 잘하거나 잘 맞는 일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통 20,30대에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참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과정을 기꺼이(?) 겪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0대가 되고 이제 50대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내가 잘 살고 있는걸까?'에 대한 확신이 없다.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잘살자고 몰아부치지 않는다. 다만 가끔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잡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으로 '괜찮아. 잘하고 있어' 라고 말할 수는 있다.  변주경 통역사의 이야기들은 그런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보게 해주었다.


'오늘은 르그랑'은 랜선 티타임 입니다.

주위에 계신 멋진 분들을 모시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며 함께 배우는 공간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링크의 밴드를 통해 가입하시면 됩니다.

https://band.us/band/801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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