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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창훈 Jul 07. 2020

'나답게 산다는것' 가슴으로 돌아보기 by 코칭 뮤지컬

코칭 뮤지컬 발가벗은 힘에 배우로 함께하며.

한 사람씩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40대 후반의 나이라면 이상과 현실의 차이도 적잖이 경험했고 '소원, 꿈'과 같은 단어는 과거의 키워드가 되었을 법도 한데.. 그런데도 무대에서 힘차게 대사를 쏟아내는 아마추어 동료 배우들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어허이,.. 지금 나 사회자 역할을 하는 중인데,..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다행히 내 대사에서는 감정을 추스리고 대사를 전달했다. 공연이 끝나고 보니 배우들은 각자의 이유로 여러 반응을 경험하고 있었다. 표정이 상기되었고, 웃으며 뿌듯해 하기도 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분명 배우들 각자의 마음속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마추어 배우의 한 사람으로서 경험한 '코칭 뮤지컬'의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재형 코치의 '발가벗은 힘'


치열한 직장생활과 임원생활을 거쳐 야생으로 나온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야생으로 나오기 전 스스로에게 중요한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하면서 많은 준비를 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냈고, 컬럼을 쓰는 중이었고, 여러 자격을 취득했지만, 그럼에도 야생에서의 적응은 두렵고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을 떠나 오로지 자기만의 '발가벗은 힘'으로 우뚝 설수 있었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한 이야기로 풀어낸 책을 썼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책을 읽고, 삶의 전환기에 필요한 질문과 현명한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류승원 코치의 '코칭 뮤지컬'


책 '발가벗은 힘'은 류승원 코치를 통해 코칭 뮤지컬로 탄생했다.  그리고 아마추어 배우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오디션에 초대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영광스럽게도 내가 첫 오디션 참가자였다.  독특한 것은 오디션에서 '발가벗은 힘'의 핵심 질문들을 받았다는 점이었다.  지금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그것에 장애가 되는 것이 있는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그런 질문들을 받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지원자들의 답변은 이후에 고스란히 우리 손에 쥐여진 대본에 담겨 있었다.  완벽하게 동일하지는 않지만 .. 배우들이 평소 생각하고 열망하던 것들이 대본에 들어 있었다. 대부분의 배우는 자신의 역할, 비중에 쉽사리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각자의 스토리를 전체 대본에 조화롭게 녹이려는 시도 자체가 놀라웠다.  그러한 대본 덕분에 배우들은 무대에서 더 많이 몰입하고 즐길 수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긍정 피드백 위에 개선점을 제시해 주신 전문가분들


아무리 아마추어라고 하지만 뮤지컬은 결코 장난이 아니다. 연기도, 노래도, 안무도 모두 조화롭게 잘해야 한다. 그런데 오디션 후에 모이게 된 이들은 대부분 뮤지컬 경험도 없는데다, 각자 자신의 직장이나 직업이 있는 바쁜 사람들이었다. 주말마다 모여 기본기에 대한 연습을 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어느 영역에서든 '부족'했다. 목소리는 달달달 떨리고, 대본은 인공지능이 읽는듯 하며, 춤은 뻣뻣하면서도 서로 맞지 않았다.  전문가의 눈에서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황희재 연출님, 박혜준 안무감독님, 김사랑 음악감독님 세분은 언제나 따뜻한 칭찬을 먼저 해주셨다. 그냥 위로가 아니라, 이전보다 무엇이 나아졌는지, 지금의 부족함 뒤에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먼저 봐주셨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은 스스로 느꼈다. '아~ 전보다는 비교가 안되게 좋아졌다.' (물론 그래도 기준을 높여서 보면 부족함은 끝이 없지만.)



하나씩 탄생하는 명품 곡들


배우들의 스토리가 녹아있는 대본이 먼저 완성되고, 그에 맞춘 작곡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 스케줄은 빡빡하고, 내용은 녹여내야 하고, 그에 맞는 곡의 분위기도 맞춰야 했을 것이다. 각각의 곡이 가지는 분위기도 심각함, 즐거움, 발랄함, 슬픔, 기쁨 등을 조화롭게 섞어 주어야 했을 것이다.  황주현, 김주현 작곡가는 그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 결론적으로 배우들은 하나하나의 노래를 불러가며 곡 속에 빠져들었다.  일단 가사와 내용이 좋고, 곡조가 그 분위기에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각 배우들은 자기의 곡이 아닌데도 즐겁게 흥얼거리곤 했다. 좋은 곡 때문에 서로의 배역을 부러워 하는 일도 생겼던 것 같다.  원곡의 멋과 아름다움을 목소리로 온전히 표현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음정 이탈이나 박자 이탈도 있었다. 하지만 곡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는 잘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이건 배우들만의 생각일지도?)



아주~ 어렵지는 않은데 보기에 좋은 안무


안무는 노래만큼이나 쉽지 않은 영역이다. 평소 일상 생활에서 늘 가까이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기본적으로 몸치 박치라며 스스로 손사래를 치는 이들도 많지만, 오디션에 '지원해서' 온 사람들이어서인지 적극적으로 배워나갔다.  의외의 복병은 체력이었다.  멋진 안무를 하기 전부터 기본 워킹과 동작을 하는데에만도 헉헉대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코로나 상황이 생겨 마스크를 쓰고 연습을 하게 되어 더 쉽지 않았다.  가장 기본이 되는 시선, 서는 자세, 눈동자 등에서 자잘한 실수들이 많다는 것을 배워나갔다.  최종 무대에 서면서 느낀 것은 전체 안무가 '엄청나게' 어려운 것은 아닌데, 최소한의 난이도로도 각, 선, 타이밍을 잘 맞추면 꽤 멋스럽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의 조명 감독님의 역할도 매우 크고 중요함을 절감했다.)


따뜻함과 차가움을 겸비한 배우 리더


이명진 코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리고 뮤지컬과 무대에 대한 뜨거운 열정도 있다. 하지만 매너, 안전, 원칙에 대해서는 차가움을 갖고 있기도 한 사람이다.  물론 그 차가움은 배우들을 지켜주는 따뜻함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리더십은 드러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 리더인 이명진 코치는 드러나지 않는 리더십을 잘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관찰하고, 관심을 갖고 경청한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이다.  많은 무대에 섰던 경험 덕분에 배우들이 많이 배우고 의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각 배우들은 의지하기 보다는 홀로서기를 하게 되었다.  좋은 리더십은 멤버들이 리더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닌, 리더가 없이도 자율적으로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리더십을 옆에서 볼 수 있어 감사했다.



서로가 부러웠던 배우, 민폐일까 두려웠던 배우, 결국 모두 끝까지 함께 즐긴 배우들. 


사람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잘 굴러가는 조직도 예외는 아니다.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조직을 경험해 본 모두가 느끼듯, 진짜 문제가 심각한 조직은 갈등을 적당히 포장한다. 당연히 이번 뮤지컬 배우들 간에도 몇가지 갈등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다 알지는 못하지만 ..)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배우들이 갈등을 줄이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연습 후반에는 서로를 위해 연기, 노래, 안무의 오류나 부족한 점을 서로 지적해 주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받아들이기 힘든 피드백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피드백하고 받아들이고 함께 논의했다. "정말 이렇게 좋은 사람들 만나기 쉽지 않네요" 라는 말이 자주 나온 이유가 아닐까.  배우들은 서로의 배역을 부러워하는 것 같다. 인생에서도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 부럽듯, 배역도 그랬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본인의 노래가, 안무가, 연기가, 연습이 너무 부족해서 민폐는 아닐까 많은 걱정을 했던 착한 배우님들도 많았다.  물론 그런 착한 배우님들 모두 열심히 노력해서 정말 멋진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었다.


"근데 이게 왜 '코칭 뮤지컬'이예요?"


처음에 배우로 지원한 분들은 '국내 최초의 코칭 뮤지컬'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공연이 임박했던 어느날, 몇 분이 질문을 하셨다 "근데 이게 왜 코칭 뮤지컬이예요?"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배우님들을 코칭해 드리는 시간도 있었고, 대본과 곡도 코칭적 메시지가 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있을 법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그 질문의 답은 대화가 아닌 무대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대에 올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기도 했고, 그간의 노력의 결과를 지인과 소중한 이애게 보이기도 했다.  무대에서 만큼은 온전히 몰입해서 나를, 동료 배우를, 연기한 캐릭터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과정에서 '아~ 이 캐릭터라면 이랬겠구나'하는 등의 정말 많은 생각과 느낌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 답게 산다는 것' , '내가 죽기전에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는 얼굴에 흘러내린 땀방울과 함께 그런 생각을 했다.  다른 배우들도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더 활력을 갖는다.


무대 리허설이 다가오는 시간부터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래, 죽음이 있었지.

우리는 죽음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꼭 우울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병상에 누워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불의의 사고로 떠나간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면 충분히 힘들고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무대에 서면서 죽음을 더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활력을 얻었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이 무대를 충분히 즐겨야지, 그리고 남은 인생동안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을 해야지,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지.  무대에서의 자잘한 실수들은 금세 잊혀진다.  그리고 그런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면 진작에 연습을 열심히 했었어야 한다.  이미 무대에 서있는 지금 틀릴 걱정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많은 배우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실수한 것을 관객은 모른다. 원래 그런가보다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을 보면 똑같이 않은가?  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남들이 뭐라할까 걱정했던 것들, 까보면 주위에서는 자기 바쁜 일로 신경 쓰지도 않는다.  남은 인생은 그냥 원하는 것 하면서 살자.  그 선택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장애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생각하면 그런 장애물 쯤은 충분히 건너뛰고 원하는 삶을 향해 갈 수 있지 않을까?


꿈은 그냥 꿈이고, 현실은 현실인 것일까?


이번 무대에 선 배우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  각자의 경험과 전문성이 있는 이들이 모여 한 팀을 만들었다.  이 배우들 중에는 꿈을 실현하며 살고 있는 이들도 있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도 있고, 코로나로 일상이 잠시 멈춰 머뭇하던 분도 있고, 인생의 어려움에 잠시 멘붕이 되었던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꿈을 이뤄가며 살고, 다른 어떤 이는 차가운 현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인생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는 같은 시간을 살지만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기도 하다.  꿈이 있다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은 차가운 겨울에 있다 해도 다시 봄에 꽃을 피울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20대였을 때 아마추어로 뮤지컬을 했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도, 미국과 멕시코에서도 공연을 하는 기회를 누렸다.  그 하나하나의 과정 속에서 누군가는 분명이 '내 생각을 해서' 조언해 주었다.  무슨 뮤지컬이냐고, 무슨 미국이냐고 ..  현실적인 이유는 차고 넘쳤다.  당시에는 학비에 보태기 위해 알바를 했었던 시절이니 무엇 하나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도 나는 뭔가 또 하나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 같은 기분이다.   물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함께 땀흘린 소중한 동료 배우들, 그리고 지도해 준 감독님들, 그리고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어준 분들의 도움 덕분이다.   

꿈은 이뤄졌다는 '결과' 보다는 가슴 뛰는 도전의 '과정'에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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