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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창훈 Jan 30. 2022

여행의 가르침, 내가 이러고 있다는걸 모르면 꼰대된다.

여행의 즐거움 이면에 있는 갈등 경험과 깨달음

2022년 1월, 코로나 시국임에도 ‘스마트워크 TRIP’을 1개월간 다녀왔습니다. 목적지는 프랑스였구요. 와인으로 유명한 보르도, 그리고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스마트워크 TRIP은 한국에서 하던 일을 해외에서도 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고 개선점을 찾는 여정인데요. 여정을 예약할 때만해도 코로나가 종료될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한달도 채 안되어 신종변이 ‘오미크론’이 나오고 분위기가 급반전했습니다. 걱정도 없지 않았지만 다행히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귀국 후 자가격리중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여정은 스마트워크 디렉터, 전문 통역사, 광고 전문가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현지에서는 각자 자기가 하던 일을 하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해 보거나,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했는데요. 여행이다보니 함께 생활하면서 밥도 해먹고 일상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일상을 함께한다는 것,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코워킹(Co-working)과 더불어 증가하게 될 코리빙 (Co-living)에 관련한 소중한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정에 함께한 분들의 관점과는 다를 개인적 관점이 잔뜩 포함되어 있습니다.^^)



불편한 것을 드러내자는 약속


여정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약속을 했습니다. ‘불편한 것이 있으면 표현합시다’. 한국 사람에게 이것만큼 어려운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불편한 것을 참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고 느끼는 한국인이 많으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자가 이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관해, 관계에 관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즉각적으로 표현한 것도, 참고 참다가 약간 폭발하듯 표현한 것도 있었지요. 그래도 우리는 그것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이야기 했습니다. 살짝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서로가 납득이 갈 때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러고 있는거 계속 몰랐으면 그냥 ‘꼰대’인거구나” 그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역시 갈등과 해결


에피소드1 - 관점차이, 그리고 오해


프랑스에서 머문 곳은 보르도의 베흐쥬학 (Bergerak), 파리 근교 두곳이었습니다. 베흐쥬학은 분위기 있게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기 위한 곳이었고, 파리 근교는 말그대로 일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둘다 에어비앤비로 예약을 했구요. 파리 공항에서 보르도행 기차를 타고, 보르도에서 렌터카를 빌린 후 1시간여를 달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2층으로 되어있는 꽤 널찍한 집, 무엇보다 홈바가 잘 되어 있는 집이었습니다. 홈바는 카페 느낌이 나게 배치되어 있었고 넓은 공간의 주방과 붙어 있어서 요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정말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갈등의 시작일 줄 생각도 못했는데요. 일행중 한분은 ‘스마트워크’하러왔지 ‘먹으러 왔느냐’하는 생각을 한 것인데요. 함께 일하고 미래를 논의하는데 주로 시간을 쓸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는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고 하고 그런 와중에 일 얘기도 할 수 있지 않느냐였습니다. 사실 둘다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비중에 대한 생각의 차이였던 것이죠. 또 하나는 ‘간섭’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한분이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생활 공간의 잡다한 것을 정리했는데, 그러다보니 강요는 아니었지만 부탁 형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다른 분은 어차피 빌린 공간이니 퇴실할 때만 정리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구요. 한쪽에서는 그냥 말을 한것인데, 다른 쪽에서는 잔소리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그런 갈등을 느끼던 차에 소소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장보러 가는 길에, 파리로 이동하는 길에, 파리에서 잠깐 식사할 곳을 정하는 과정중에, ... 서로가 분위기를 맞추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묘한 긴장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파리 숙소에 가서 그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위에서 말한 상황을 서로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그 이면에 있는 상대의 ‘선한(?) 의도’를 알게된 것이죠.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각자는 ‘자기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저건 아니지’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대화가 끝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로의 의도를 파악하고 나니 조율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에피소드2 - 직업병, 그리고 역린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우리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서로가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을 주제를 갖고 대화를 나누기로 했지요. 많은 키워드가 있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직업병, 역린’ 두가지였습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갖고 있었기에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보너스로 일에서의 직업 뿐 아니라 가정에서의 역할에서 나오는 특성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라는 역할을 십수년 하다보니 생긴 습관, 반대로 가족의 써포트를 받고 일에만 집중하다보니 생겨나는 습관 등도 있더군요. 저는 코치, 강사라는 직업으로 생긴 직업병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함께한 세분이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 제가 ‘인식, 자각’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말을 듣는 중에 세분이 자기들끼리 빵터지는 순간이 여러번 있었는데 절반은 이 상황이었습니다. "피터 또 저 얘기한다" 였지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니 역시나 그 말을 많이 쓰고 있더군요. 다만 제가 한분을 꽤 긴 시간 코칭을 해드렸는데, 코칭을 경험하고 나서 제가 왜 ‘자각’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지 이해했다고 하시더군요. 기분도 좋고 안심도 되더군요. 또하나는 제가 말을 할 때 ‘제3자화’해서 말을 하더라는 피드백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요. 설명을 들어보니 정말 큰 자각 (여기서도 쓰네요^^) 이 되었습니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 저는 저 자신의 이야기 보다는 유명한 누군가의 말이나 책에서 본 에피소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일상 대화에서도 강의를 듣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었죠. 다행히 그 이야기의 호흡이 길지는 않아서 괜찮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친밀감을 느끼는데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책에서 읽은 것, 누군가의 말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보니 일상적인 대화 상황에서도 그런 식의 말을 많이 했던 것이죠. 결국 저와 대화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의 진짜 이야기가 아닌 ‘제가 말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저는 대화의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하나 역린이었는데요. 다른 사람은 괜찮은데 유독 나만 안 괜찮은 그 무언가를 ‘역린’이라고 하잖아요? (용의 비늘의 결에 반대되는 뱡향을 건드려 용을 화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역린은 역시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시 당하는 지점에 있더군요. 일을 중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요리하고 먹는데 시간을 쓰는 것이 불편할 수 있고, ‘착한 사람’이기를 원하는데 ‘너 나빠’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필요 이상으로 실망하는 것입니다. 당장 현실에서의 돈, 금전적 여유가 중요한 사람에게 그게 인생에서 뭐 대수냐 하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는 등 많은 관점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상식은 상식이 아닐 수 있다!


일상에서는 ‘나의 상식’을 받아주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나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나를 잘 알고 있거나, 그렇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행동에 대해 이상하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습니다. 혹은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니가 그렇지’ 하면서 받아줍니다. 그러니 불편함은 있어도 큰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내방식은 ‘상식 수준’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 상식이라는 것은 신혼생활을 해보면 와장창 깨져버립니다. 그리고 고통스런(?) 조율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상식을 만들기까지 몇년을 소비하지요. 조직에서의 일도 똑같습니다. 서로 다른 ‘상식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성과 창출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때로는 상하관계로, 또는 수평관계로 만납니다. 상하관계라면 차라리 나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참고 맞춰주면 적어도 표면적인 평화는 유지되니까요. 오히려 문제는 수평적 문화를 추구하는 스타트업에서 생겨날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적어도 관계에서만큼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환상인 이유 중 하나겠지요? 자기 방식이 ‘상식’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귀가 열립니다. 귀가 열려야 다른 방식이 보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조율도 할 수 있고, 더 좋은 방법들을 찾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50대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계속 신경쓰는 것이 ‘닫힌 사고’입니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축적되면 그 주관된 경험들이 나의 사고를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ZOOM이 대표적 사례인데요. 코로나 초기에 ZOOM을 활용해서 워크샵을 많이 했던 덕분에 무료 공개 워크샵을 열어서 많은 분들에게 사용법을 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주위에서 ‘ZOOM 전문가’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스스로는 ‘아니예요, 저도 아직 잘 몰라요’라고 하면서도 나름의 자부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ZOOM은 물론이고 다른 온라인 도구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지요. 문제는 그런 태도가 과해져서 새로운 도구, 새로운 기능을 배우는데 소홀했던 것입니다. 다른 분들의 훌륭한 활용법에 귀를 닫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부끄럽지만 그랬습니다. 여행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밥해먹는 방식, 적절한 온도, 청소 주기 등 많은 부분에서 상식이 충돌했습니다. 그 작은 충돌에서도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관찰하는 것은 의미있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충분한 여유시간, 최소한의 신뢰


여러 종류의 갈등과 해결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여정이 끝나갈 즈음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이 여행이 1,2주만에 끝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서로 그냥 좋게 좋게 분위기 만들고 맞춰주다가 끝내지는 않았을까?”

저도 크게 공감했습니다. 4주라는 시간적 여유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런거죠. 갈등을 참고 간다면 앞으로 많은 시간동안 참아야 한다. 그리고 갈등을 나눈다면 충분히 대화할 시간이 있다. 이것은 생각보다 큰 변수가 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조직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업무적 성과를 내는 것에만 쫓기다 보면 이런 중요한 관계에 관한 생각을 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조직의 리더는 바쁜 업무과 성과에서 가끔 벗어나 전체를 조망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실무를 겸해가며 리더 역할도 해야하는 지금의 팀장, 리더분들을 생각하면 쉽지 않은 일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조직 구조 차원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도 많습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분들은 서로에게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안전망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누군가의 행동이 있더라도 이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하는 것이죠.


 “뭔가 이유가 있을거야. 일부러 저런 것은 아니겠지”  

또한 내 입장에서의 불편함을 말할 때 적어도 상대방이 들어주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신뢰도 필요했습니다.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이해나 공감은 해줄 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불편함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편함을 말하는 자체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니까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고, 내가 나쁜 사람으로 각인될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여정에 함께한 분들과는 그런 최소한의 신뢰가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치며


여행 사진을 보면 대부분 좋았던 ‘순간’만 담겨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SNS와도 같지요. 그 안에서 겪었던 갈등, 힘들고 짜증나는 일들은 구태여 사진이나 기록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여행에서 얻는 경험 중 즐거움이 절반이라면, 갈등과 해결의 경험은 또하나의 절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두가지 경험 모두 일행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좋은 숙소를 찾아서 예약하는 것, 현지에서 티켓 구매하는 것, 프랑스어로 이것저것 문의하는 것, 프랑스에 사는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이 모든 과정이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또 서로를 신뢰하고 용기있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준 고마운 일행들이 있어 두번째 절반도 잘 채워졌습니다.

이번 여행의 가르침은, 내가 이러고 있는 것을 모르는 순간부터 꼰대가 된다였습니다. 누구나 꼰대가 되고 싶지 않지만 정체된 삶을 살고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열린 마음으로 듣고 기꺼이 돌아보고 바꿔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또한 코로나 시국에 여행을 허락(!)해준 가족에게도 감사하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한 일행들에게도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하는 여행은 정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 또한 했습니다. 이번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 변화 때문에 그렇게 되었지만 보수적인 태도는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현지에서 양성 판정이 나오거나 하면 변수가 너무 많아지게 되니까요. (하와이 현지에서 귀국 전 양성 판정 받은 분이 비싼 숙소 때문에 렌터카에서 며칠을 버텼다는 말이 이해되기도 하더군요.)


이상 프랑스 리모트워크 트립을 통한 생각 정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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