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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렐라 Apr 13. 2020

‘네’일까, ‘아니오’일까.

내가?


골라야했다. 의문이 들지만 그래도 네, 또는 아니오 로 시작하는 답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했다. 누가봐도 너무나 당연히 ‘네’ 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진지한 얼굴을 하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으니 일단 고민은 해야했다. ‘네’ 라는 대답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입만 열면 바로 소리로 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고심하는 티는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봤다. 문제를 낸 문제자도, 그 옆에 쭈그러져 앉아있는 사람도, 나와 같은 문제를 받은 또 하나의 도전자도 모두 내 대답을 고대하는 듯 내 눈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에 땀이 스물스물 차올랐다. 공포물을 보는 것도 아닌데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느낌이 들었다. 공기가 숨이 막혔다. 이제 막 봄이되어 공기가 선선한데도 내가 들이쉬려는 공기만 사막의 온도로 데워져 후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려는 대답에 분명한 확신이 있었는데, 이 찰나의 사이에 ‘혹시나 내 답이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일생일대의 순간도 아니고, 내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 답이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아보였다. 헷갈렸다. 네? 아니오? 네? 아니오? 무엇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다.


네.


일순 정적이 감돌았다. 문제자의 눈이 빨개지는 걸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문제자 옆 사람은 얼굴이 흙색이 되었다. 하긴, 한참 전 부터 흙색이기는 했다. 내 옆의 도전자는 울먹거렸다. 아, 내가 틀린 답을 내놓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꽤나 공들여 선택한 답이었는데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 있는 공기가 방 안에 흘렀다. 묘했다. 이게 정답이 아니라면, 아니오가 정답이라는 것일까? 지난 12년이라는 시간동안 지켜봐 온 나로써는 ‘아니오’에 좀처럼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네’가 틀리다는 듯한 신호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직 정답이 무엇인지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내가 틀렸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왜 ‘네’는 틀리고 ‘아니오’가 맞는 답인지 해설이 필요했다.


난 싫어.


내 옆의 도전자가 대답했다. 네, 또는 아니오로 시작하는 답을 요구했는데 ‘싫어’라고 대답하는 걸 보니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것에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야, 동의하는지 동의하지 않는지를 말해야지 너의 감정을 드러내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라고 속으로 속삭이며 도전자를 바라보았다. 울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라는 대답은 하지않고 왜 울고 있는거지? 이윽고 문제자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내 조용히 옆에 동상처럼 앉아만 있던 흙빛 얼굴의 사람은 한숨을 가만히 내쉬었다.


끝내 정답을 듣지 못하고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 어이없게도 눈물로 종결되어버린 이 상황은 ‘네’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채 이어졌다. 아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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