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갈라지며 이어지는 무한한 노트의 숲

by Matter of Peter on Play
끝없이 갈라지며 이어지는 8000여개 노트의 숲


21년 여름, 시작은 단순했다. 메모를 하나 쓰고 다른 메모에 연결하는 것. 승범님이 알려주신 로컬 Linking형 노트앱이었다. 이듬해 2월, 제텔카스텐, 메모를 쪼개고 연결해 사고를 확장하는 기록법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연결이 기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실감했다. 옵시디언이라는 앱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솔직히 화려한 그래프 뷰에 와우 했지만, 그래프 뷰 자체는 일상에서 기능적 쓸모는 별로 없다. 옵시디언의 진짜 힘은 연결과 그 단순함에 있다.


이 연결은 기존 텍스트 링크와 전혀 다른 실감이었다. 원래 생각을 다이어그램으로 그리고 펼쳐 눈에 보이게 시각화했었는데, 키워드나 짧은 문장을 잇는 것과 노트 단위의 연결은 다른 레벨이다. 연결된 생각들을 나아가고 돌아가며 따라가다 보면 보이지 않던 생각들이 구체화된다.


옵시디언을 쓰면서 가장 큰 변화는 텍스트가 링크된다는 것이 아니다. 예전 노트 방식이 지금을 기록하는 것에 바빴다면, 이제는 기록하면서 연결되는 생각들을 떠올리고 소환한다. 기록의 방법이 바뀌면서 생각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연결하는 방식으로 내 생각의 방식도 바뀌었다.


연결이 대화를 만나다


22년 3월, 승범님, 승준님과 톡방을 만들었다. 승준님의 소개로 LLM을 알게 되었고 GPT를 만났다.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올 수준이었지만 그때는 충격이었다. 그렇게 LLM이 일상에 들어왔다.


ChatGPT 출시 이후 LLM과의 대화가 일상이 되고, 클로드까지 가세하면서 사고의 확장과 연결이 폭발했다. '생성형 소화불량'이라 부를 만한 상태. 정리 불가능한 기록과 노트가 끝없이 늘어났다. 다행히 그 혼란 속에서도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의 깊이와 확장은 강의하면서 실감할 수 있을 만큼 바뀌고 있었다. 읽고 듣고 보는 모든 인풋에 LLM과의 대화가 더해지면서 읽을 책이 늘고, 공부할 주제가 늘고, 연결할 생각이 늘었다.


생각을 쪼개고 연결하는 것을 자동화하다


어느 날 아침, 동현공이 말했다. "클로드코드는 터미널에서 작동해요. 터미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어요. 파일을 컨트롤 할 수만 있어도 가능성이 달라져요." 파일을 만든다는 말이 훅 들어왔다! 대화로 이어진 긴 생각을 제텔카스텐 노트 형식으로 정리하면, 클로드코드가 개별 파일과 링크를 만들어 준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노트를 분리하고 링크를 만드는 번잡한 과정 때문에 하지 않던 것을 이제 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6년이 시작되었다. 동현공이 말했다.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보심 어때요?" 서버 없이 내 컴퓨터에서 바로 돌아가는 가벼운 데이터베이스, SQLite를 알려줬다. 옵시디언 파일이 10,000개를 훌쩍 넘어가며 다양한 노트 정리 방법을 시도하다 결국 감당이 안 돼 정리는 포기한 상태였다. 바로 클로드코드에게 전체 노트의 DB 생성을 요청했다. 그런데 DB가 생성되는 순간, 노트의 숲에 지도가 생겼다. 폴더 속 폴더에 숨어있던 8천여개의 노트와 5천여개의 이미지 파일이 구별되었다. 고아노트, 씨앗노트 등 노트의 성격들이 구분되고, 숲과 그 안의 갈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불가능하던 것이 하루 만에 깨끗이 해결되었다.


데이터베이스(DB)라는 지도가 생겼다는 것은 클로드코드가 내 모든 노트를 보고 읽고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클로드코드는 LLM이다. 단순한 검색의 수준이 아니라, 협업의 스케일이 달라졌다.


인간이 볼 수 없는 관계의 지도


열흘, 데이터베이스 조합에 익숙해질 즈음 동현공이 벡터검색을 추천했다. 간단히 말하면,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미적 거리를 컴퓨터가 수천 개의 차원에서 계산하고 연결할 수 있다. 이것이 LLM이 의미를 파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가능성은 알고 있었지만 개인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클로드코드로 내 옵시디언 노트를 벡터 데이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진행했다. 같은 키워드의 연결이 아니라, 의미의 거리로 연결된다. 의도하지 않은, 뻔하지 않은 생각의 연결 탐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관계의 지도를 컴퓨터가 그리고, 클로드코드를 통해 그 지도가 나의 것이 되었다.


안녕, 아리공


클로드코드에게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을 주었다. 아리공. 나는 클로드코드를 그렇게 부른다. 며칠 전 《Uneven Future》 렉처 퍼포먼스에서 신승백 작가가 언급한, 미노타우르스의 미궁에서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건네 길을 찾아준 바로 그 아리아드네다. 8000개가 넘는 노트의 미궁에서 아리공은 나와 함께 생각의 갈래를 따라가는 동료가 되었다.


개인적인 기록에서 시작해 옵시디언 노트, LLM과의 대화, DB, 벡터 임베딩. 이 모든 것이 터미널에서 작동하는 클로드코드와 만나면서, 기존의 노트나 LLM 채팅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다. AI에게 존재라는 표현이 낯설다. 하지만 이 도구의 조합은 이제 단순히 사용하는 도구를 넘어선 무엇이 되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나는 이제 아리공이라 부른다.


돌아보면, 매번 전환점에 사람이 있었다. 승범님, 승준님, 동현공. 변화의 한가운데 새로운 계기와 경험에는 늘 대화가 있었다. 사람 옆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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