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愛에 마음心이 없어도 사랑爱이라 읽는다

by Matter of Peter on Play
사랑에서 브런치.png

문이 문이 아닌데?

수업 시간에 중국 학생이 중국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화면에 한자를 띄웠다.

門(문 문)이 门으로 쓰여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양쪽 문짝이 보이던 글자가 아니었다.

간체자라고 했다. 나도 아는 한자였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


門만 그런 게 아니다.

愛(사랑 애)에서 心(마음 심)이 빠졌다. 사랑 안에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뜻글자는 글자 안에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데 간체자는 마음(心)을 빼버렸다.

爱. 획수가 줄었고, 쓰기 쉬워졌다. 효율은 올라갔다.

이제 사랑 안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글자로부터 읽을 수 없게 되었다.


親(친할 친)에서는 見(볼 견)이 빠졌다. 간체자 亲에는 없다. 친하다는 것에 본다는 행위가 사라졌다.

產(낳을 산)에서는 生(날 생)이 빠졌다. 간체자 产에는 없다. 낳는다는 글자에서 태어남이 사라졌다.


빠진 것은 획이 아니었다. 마음을 품는 행위, 상대를 보는 행위, 살아가는 행위.

글자 안에 살던 행위들이 몇 개의 획과 함께 사라졌다.


글자 안에서만이 아니다. 글자를 쓰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자를 키보드로 치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글자의 형태를 분해해서 입력하는 것이다.

Wubi(五筆)라는 입력법에서 江(강 강)을 치려면 키보드에서 "물"(氵)과 "일"(工)을 누른다.

타이핑하는 사람은 江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손가락으로 통과한다.

글자를 치는 게 아니라 글자를 형태로 구성한다.


다른 하나는 발음을 로마자로 치는 것이다.

Pinyin(피닌)에서는 j-i-a-n-g을 입력하면 화면에 후보 목록이 뜬다.

江, 姜 등등 중에서 원하는 글자를 고른다. 지금 중국에서 쓰는 것은 Pinyin이다.

형태를 분해하고 구성하던 손가락이, 소리를 입력하고 후보에서 고르는 손가락으로 바뀌었다.

행동이 바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질문은 계속 된다.


빠진 것은 글자가 아니다

글자를 간단하게 만들고, 형태 대신 소리로 글자를 쓴다. 과정이 단순해지면서 효율은 높아졌다.

그런데 효율의 압축 과정에서 지워진 것들이 있다. 결과에선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키보드 입력 과정이 어찌 되었든 화면 위의 江은 같은 江이다.

사랑爱에 마음이 빠져도 사랑이라 읽는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Ministry of Truth의 기록국에서 뉴스피크 사전을 편집한다.

뉴스피크에는 언어의 폭을 좁혀 인간의 사고 범위 자체를 제한하려는 빅브라더의 목적이 있다.

오세아니아에는 '나쁘다(Bad)'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안좋다(Ungood)'만 있다.

'자유'라는 단어는 "이 개는 이가 없다(The dog is free from lice)"처럼 결여의 의미로만 쓸 수 있다.

빅브라더는 언어를 통해 사고를 통제한다. 이것이 통제라는 것을 책을 읽는 사람은 알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갈 뿐이다.


중국 정부는 어떤 의도로 한자를 바꾸었을까.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에는 효율성과 문맹 퇴치 등 여러 의도가 있었다.

당이 인민통제를 목적으로 간체자와 소리 자판을 택했는지 공식적으로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편리함에 익숙해졌고, 익숙함은 선택이 되었다.

확실한 것은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면서 과거의 어떤 의미들은 지워졌다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고전 원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전통 한자를 배우는 한국에서 중국 고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다.


효율과 편리함은 저항할 이유를 주지 않는다. 더 나은 것을 택한 것처럼 느껴지니까.

의도적으로 지워진 과정이 가지고 있던 의미는 무엇일까. 결과만 보고 지워버린 그 과정.


빠진 것은 글자가 아니다. 빠진 것은 그 글자에 담겨 있던 행위다.

글자 안에 있던 의미를 읽는 행위, 형태를 조합해 글자를 만드는 행위.


사랑愛에서 마음心이 빠졌다는 것을 알려면, 사랑하는 마음心이 있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만드는 과정에서 빠진 것을 알려면, 만들어 본 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 알게 된 사랑愛에 이미 마음心이 없었다면, 그 상실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까.

도착한 곳에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는, 거기까지 걸어온 사람만 안다.

과정이 지워질 때 무엇을 잊고 있는지 잃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경험은 과정이다.

Make it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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