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 전시에서 감각했던, 몰랐던, 달라졌던 것들
<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은 문화예술계의 배리어 프리(Barrier free)에 대한 인지와 확산을 목표로 두는 작은 실험의 공간입니다. 한 장의 그림을 경험하는데 있어 눈으로 보는 방법 외에 무엇이 가능할까요? 전시 <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에서는 손으로 만지거나 귀로 듣는 방식을 통해 그림을 보며, 이후 대화를 통해 내가 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 전시’에서 감각했던, 몰랐던, 달라졌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2022년 11월 4일 금요일에 경험하고 11월 22일 화요일 기록함
배리어프리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나 동물권리, 환경 문제들 처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 보다는 낯설고 무지함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전시장입구의 고요함고 두꺼운 철문은 왠지 수술실 문처럼 느껴졌다. 다행히 문 옆의 전시 관련 화면과 전시를 소개하는 QR 코드가 안심시켜 주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선 하얀 전시 공간은 그 벽의 중앙을 따라 안정감 있는 긴 검은색 선이 이어지면 시선을 끌어 주었다. 벽 틈으로 전시를 설명하고 있는 작가님의 모습과 목소리가 보였다.
잠시의 기다림 후 예약된 전시 관람이 시작되었다. 배리어프리 전시의 경험은 그렇게 예약된 시간에 안내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필요한 그런 순서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익숙한 듯 낯선 시작이었다.
작가님의 안내를 받은 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켜서 QR코드를 찍어 작품해설 오디오 링크를 열었다. 그리고 나는 촉각 안내선에 의식적으로 손을 얹고 천천히 벽을 따라 조심 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촉각 안내선을 확인하기 위해 벽면을 같이 더듬게 된다. 하얗고 부드럽게 보이는 벽은 매트한 재질의 가벼운 거칠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요철 같은 울퉁 불퉁한 촉감이었다. 그 벽면에서 허리 춤 정도의 높이에 2-3센치 폭의 부드러운 안내선이 거친 촉감의 벽면과 1밀리 정도의 얕은 높이차로 느껴졌다. 벽면 촉각 안내선의 점자 안내가 다음 가이드를 들을 때와 그 QR 코드 링크의 위치에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눈을 지긋이 감고 나름 손 끝의 촉각을 곤두세워 본다. 숨을 고르고, 잠시 눈은 감고 촉각 안내선을 따라 촉각 안내선 위로 점자가 느껴지는 곳까지 손을 뻗어 보았다. 왠지 안심과 같은 작은 평온이 느껴졌다.
눈으로 보이는 전시장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로 하얀 벽면을 둘러 전시물들을 이어주는 촉각안내선은 정돈된 공간의 시각적 안정감을 주었다. 눈에는 벽면을 따라 작품이 전시된 익숙한 전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 입구에서 부터 전시장 가장 자리를 따라 이어진 짙은 노란색의 점자블럭이 만드는 여러 사각형의 조화는 한결 더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한없이 안정적인 공간감으로 가득찬 전시장이었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곧 사라져버렸다. 배리어프리와 시각장애인을 의식하며 입구에서 2-3 미터의 그 거리를 눈을 살짝 살짝 찡그리며 벽에 손을 대고 이동했지만, 눈을 꽉 감는 것은 왠지 불안하고 불편했다. 정말 짧은 순간인데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잠자리 가면을 선택해야 했다. 잠자리 가면의 눈은 다양한 왜곡된 렌즈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중에는 전혀 보이지 않게 검정으로 칠해진 렌즈도 있었다. 눈에 이상이 가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정 렌즈의 잠자리 가면은 감히 선택하지 못했다. 나는 묘한 스크래치가 가득하지만, 앞을 볼 수 있는 가면을 선택했다. 가면을 끼고 잠시후 마스크의 호흡으로 렌즈에 김까지 서리며 나는 앞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순간 정사각형의 안정적이던 전시공간은 이제 거리감도 공간감도 안정감도 사라진 공간으로 바뀌었다. 다행히 잠자리 가면의 렌즈로 흐릇하지만, 가까운 것은 어느 정도 인지를 할 수 있었다. 벽을 더듬 거리고, 바닥의 노란 점자블럭을 힐끔 힐끔 내려다 보고 걸음을 확인을 하며 조심 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전시장 입구의 두개 벽가장 자리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는데 왜 그렇게 조심 조심 하게 되었을까.
작품을 마음대로 편하게 만져도 된다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촉각 가이드선 사이 사이에 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이것은 벽에 걸린 회화라 할 수 있지만, 촉각으로 직접 만지면서 감상을 하도록 디자인된 작품이었다. 손이 닿을 가까운 거리에서는 잠자리 가면으로도 어느 정도 작품의 큰 형태는 느낄 수 있었다. 잠시 눈을 질끈 감고 다시 촉각에만 의지해 보기로 했다. 소품의 캔버스 위에 자잘한 돌기가 손 끝에 느껴졌다.
진한 아크릴로 만들어진 작품위에서 만져지는 부드러움 덩어리들이 손 전체를 타고 그 느낌이 몸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크릴에는 손바닥이 모두 들어 갈만한 구멍들 사이로 벽면의 거칠함이 느껴졌다. 손을 뻗어 작품의 크기를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손을 뻗는 행동에 뭔가 가벼운 두려움이 느껴졌다. 팔꿈치를 꾸부정 하게 하고 가까운 면을 더듬기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고 촉각으로 물리적으로 느껴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이 막연한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한 눈에 볼 수 없으니 공간도 작품도 머리 속에 전체가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 전체라기 보다 각각의 경계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모호함이 구체적인 두려움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이 뭉개진것 같은 공간, 경계를 알 수 없는 아주 좁고 아주 넓은 공간에 서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나에게는 일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찰나의 두려움과 공포를 뒤로 하고 손에 닿는 것의, 손에 잡을 수 있는 느껴지는 촉감을 즐기고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 만지다 부서지면 어쩌지 라는 걱정도 나의 움직임과 경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의 행동을 막고 있었다. 그 때, ‘마음껏 만져도 부서지는 것들 없어요. 편하게 만져보세요' 라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마음껏 만지는 것의 허락은 미묘한 자박의 감정에서 나를 풀어주었다. 풍성한 푹신함, 딱딱한 또렷함, 차가움, 미지근함, 건조함… 촉각에 집중해 보며, 그 동안 얼마나 시각에 의존하고 시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조금씩 시각이 아닌 것에 익숙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익숙해 진다는 착각은 잠시 후 깨져버렸다. 오디오 가이드는 이제 전시장 중앙의 무한계단 착시 전시물의 관람을 안내했고, 나느 조심스럽게 벽면을 뒤로 하고 전시장 중앙을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눈을 감고 있을 수 없었다. 벽면이 안전하게 나를 가이드 해 주고 있었는데, 이제 벽이 없는 공간의 중앙으로 이동하라니, 순간 발을 내딪으면 뭔가에 부딪칠것 같은 무서움이 느껴졌다. 눈 앞에 펼쳐진 뿌연 잔상을 눈으로 더듬으며 가까이 다가 섰다. 조심 조심 흐린 눈앞에 어느정도 사물이 인지되니 마음이 놓여 주변을 돌아 볼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순간이지만, 마음이 철렁하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잠자리 가면을 벗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오디오 안내가 나온 위치에서 부터 작품까지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었다. 나를 지켜주던 벽면이 사라졌다는 두려움에서 조금만 벗어 났다면 발밑의 점자블록을 느끼고 또 흐릿하지만 눈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럴 겨를이 없었을까. 시각이 일상인 사람들이 만든 세상에서는 수많은 정보들을 의식하지 않아도 시각이 인지하고 나를 안내하고 지켜주었던 것 같다. 시각이 끊어진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순간들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전시는 다시 안전한 벽면에 위치한 두개의 돌탑으로 나를 인도했다. 무너지지 않는 돌탑이라는 것을 알고는 마음껏 손안에 쥐어지는 돌탑의 모습을 쓰다듬고 만지며 즐길 수 있었다. 손안에 들어오는 사물에서 강한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꼈다. 경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이라고 할까? 아니면,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손안의 영역에 있다는 것 때문일까? 시각은 경계 없이 넓은 공간을 뻗어나가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는 것에 반해 촉각은 직접적인 내 몸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설 수 없었다. 아니, 몸 전체도 아닌 작은 손아귀의 크기 정도 였던 것 같다. 손으로 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만으로 인지되는 세상. 사물의 사이 사이에는 빈 공간이 존재하고, 손으로 인지해야 하는 세상은 무엇인가 끊어진 순간 순간으로 만들어진 세상 같았다.
보이는 것, 내가 볼 수 있는 것에 인식과 판단을 의지하는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나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인가. 배리어프리는 우리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 타인의 세상으로 들어가야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든다. 말뿐이 아닌 진정한 우리의 영역이 만들어져야 그것이 배리어프리가 되겠지 싶다. 전시장에 펼쳐져 있던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포스터에서 시작되었다. 전시 마지막에 그 포스터가 전시되어있었다. 궁금했던 그 실체를 마지막에 만났다. 나의 시각이 허락해 주어 만난 실체. 그러나 작가의 전시 공간에 펼쳐진 작품들과 경험은 나에게 너에게 다시 실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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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고 나서 유럽의 European Accessibility Act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2025년 까지 EAA의 배리어프리 조건의 100% 적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이동뿐 아니라, Image Justice 같은 용어로 출판 같은 문화 영역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시대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은 요즘이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우리가 천천히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을 수 있게 해준다. 작가의 배리어프리 전시는 내게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준 그런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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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은 2022년 11월 2일 부터 11월 5일까지 이음갤러리에서 4일간 예약으로 진행되었던 디자이너 조예진의 전시입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전시 <만지는 선, 들리는 모양>을 위해 다양한 국적, 연령, 직업을 가진 10명의 참여자들이 직접 작성하고 낭독한 그림 음성 해설이 담긴 '들리는 포스터'는 SoundCloud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각자의 말로 닮은 듯 다르게 묘사하는 10명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작품을 상상하는 것 또한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https://soundcloud.com/hearingshape/sets/p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