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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Nov 05. 2017

우리는 아직도 개인주의를 모른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 개인주의자로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고민하게 된다.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인간에게 있어 타인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최고의 유용한 자원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기적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힘으로 민주화를 성취하여 평화적 정권교체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진 나라에도 불구하고. 여기가 싫어서 이민 가고 싶다고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열몇 곳을 빼고는 살기 좋다 할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유감스러운 인류의 현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인들이 힘들어하며 미래를 불안해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걸 두려워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나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가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이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근대적인 의미의 합리적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글로벌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악의 근원이라며 앞에 ‘포스트’내지 ‘후기'가 붙은 길고 복잡한 대안을 얘기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신자유주의 이전에 구자유주의라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 사회일까? 자본주의 후의 대안을 모색하기 전에 제대로 된 자본주의라도 해본 적이 있나? 근대적 의미의 개인을 존중해본 경험 없이 탈근대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가 아닐까?


내가 앞에서 고백한 것들은 결국 우리 사회가 개인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과 억압이다.



개인주의야 말로 르네상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끈 엔진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경우 이 단어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겨우 한 세대(이다.) 왜 개인주의 인가? 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다층적 갈등구조의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집단이 당신을 영원히 보호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전략적으로 연대하고, 타협해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개인이 먼저 주체로 서야 타인과의 경계를 인식하여 이를 존중할 수 있고, 책임질 한계가 명확해지며, 집단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에게 최선인 전략을 사고할 수 있다. 우리가 서구에서 수입한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개인들을 전제로 성립되어 있다. (이는) 지루할 정도로 상식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슬플 만큼 이 사회에 내면화되어 있지 못한 이야기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주의란 유아적인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 계몽주의, 합리주의와 함께 발전하며 서구사회의 근간을 형성했다. 합리적 개인주의자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이루어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에 필수적임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사회에는 공정한 규칙이 필요하고, 자신의 자유가 일정 부분 제약될 수 있음을 수긍하고, 더 나아가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한다.


현대의 합리적 개인이란 자신의 비합리성까지도 자각해 인간과 사회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합리적 태도’를 가진 존재를 말한다. 이런 합리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개인주의는 각자도생의 이기주의로 전락하여 결국 자기 자신의 이익마저 저해할 뿐이다. 자기 이익을 지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양보하고 타협해야 함을 깨닫는 것은 합리성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누군가 강력한 직권 발동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악인을 엄벌하기를 바란다. 정의롭고 인간적이고 혜안 있는 영웅적 정치인이 홀연히 백마 타고 나타나서 악인들을 때려잡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없다.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 오랜만에, 세련되게 말해내기 어려웠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해놓은 글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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