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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운 Dec 12. 2017

#6 저급한 욕망에 대하여

호주 워킹홀리데이 그리고 330일간의 세계일주

140605

# 아, 바쁘다.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일어나서 일하고 들어오면 씻고 밥먹고

바빠서 못한 집안일도 하고

같이사는 아해들과 몇마디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간다.

무슨요일인지도 모른채로 산다.

정신차려보면 벌써 1주일이 가 다.

내가 여기 온지도 벌써 2달여가 다되어간. 시간 정말 빠르다 ㅋㅋ

새벽 두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오후 세시에 퇴근하는데
하루 열세시간을 일하고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장보고 밥먹고 설거지하고 씻고 잠깐 놀고

여섯시부터는 자야 새벽두시에 일어난다.

이 짓을 벌써 한달째 했고 그동안 딱 하루를 쉬었다.


#노동자로 두달간 살아보니, 세상이 참 다르게 보인다.

짬나는 시간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하지 않으면

일하면서 하는 생각도 일차원적으로 바뀌더라.

몸이 고되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그리고 잠깐의 제한된 시간동안 한방에 풀어내기 위한 해방구를 찾는 사람들이 이해가 된다.

담배든 술이든 마약이든 성적 유희든,

상대적으로 싼 돈과 일정의 도덕성이나 자신의 건강을 지불하고 얻는 쾌감의 가치가 하루벌어서 하루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좀 의미가 다르다는 걸 직접 내가 일을 해보니까 알게 된다. (물론 그것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고 또 자유다.)

왜 그렇게 줄담배들을 피워대는지,

일만 끝나면 술을 못마셔서 안달인지,

저급하다 여겼던 천연적인 욕망과 그것들이 묻어나는 말들을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여전히 불편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못배워서 혹은 인간이 덜 되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겠다'  공감이 된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신념으로 강한 경각심을 갖지않는 이상

이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공감'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어울리되 같아지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며 외로워져야 하는 것인지 몸소 느끼고 있다.

혼자 깨끗한 척, 씹선비처럼 산다는 건

그네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렵고

나의 그러한 '특이점'을 '이해'해달라고 '부탁'해야하는 입장이 전제되어야 한다.

6개월이란 기한을 정해놓고 일해서 그렇지,

누가 알겠는가,
나 역시 여기 정착할 생각으로 왔다면

내가 욕하는 그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

일하면서 목표는 딱 두가지다

초심지키기(돈 벌면 딱 그만두고 여행가기)

이후에 두고두고 후회할 짓 하기 않기.


학생일 때는 몰랐던, 그리고 역사책에서만 간접적으로 접하던 삶을 살아보고있다는 것,
그게 지금이라는게 감사하고 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어떤 직업적 선택을 하게될지 모르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시류, 다수의 목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내 가치관을 지키면서 살수있는 예행 연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을 떠나오기전에 이 시간을 '낭비'라고 표현는데,

이런 경험에서 내가 얻어가는 것이 얄팍한 인맥과 돈뿐이라면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겠지만,

이러한 예행연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간다면

낭비라는 표현을 지워도 떳떳할 것 같다.


#지난 한달동안 정신없이 일하면서

내게 하루에 주어진 여유시간은 하루에 고작 짧으면 4시간, 길어야 6시간이었다.

그 여유시간이란, 자는시간을 제외하고 먹고 씻는 것을 포함해서

미뤄놨던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내가 먹을 것을 사러가고 요리하는 시간,

그리고 책을 읽거나 옆방놈들과 어떻게 사는지 안부를 묻고 웃는 시간까지 포함한다.

내일을 위해 체력을 유지/회복하면서도,

하루하루에 의미까지 부여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사치인가 동시에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느낀다.

마치 군대에서 근무시간을 제외한 자유시간이 그렇게 소중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기관리라는 것에 얼마나 무지했고 소홀했는지 다시한번 느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항상 자취를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 생활이 얼마나 외롭고 어려운지 군생활을 혼자 하면서부터 알았다.

그리고 지금에야 다시 독립이라는 단어의 갈래와 무거움을 알아간다.

자기 나와바리를 떠나서 자취를 한다는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무작정 나와살고 싶다고 징징대던 1학년 새내기 시절의 내가

얼마나 무모했는지도 ㅎㅎ


# 일을 하면서 유학생 3명이랑 살다보니 학교가 그립다.

역교론/역교연지 수업도 그립고,

교수회관에서 모이던 BSG도 그립고

초방에서 D랑 K 기다리면서 이채 치던 것도 그립고

공강시간에 도서관가서 여행책이랑 지도 펴놓고 계획짜던 것도 그립고

학교앞 까페에 앉아서 수다떨던 것도 그립고,

시험기간에 호도에 옹기종기 모여서 공부하던 것과

거기서 머리 휘휘젓는 D의 모습도 그립고,

시험 1시간 앞두고 원곡정원에서 책보다가 문득 맑은 하늘 보던 것도

시험공부하다가 10시 즈음에 음료수 하나 뽑아먹으면서

경영관이랑 호암관 사이 돌테이블에서 놀던것도 그립다.

아.. 다노신도 그립다.


들어가서 졸업할 때 진짜 펑펑 울거같다 ㅋㅋ

학교 10년다닌다는 말도 자의반타의반 지킬수있을듯..


# 바쁜와중에도 여행계획은 꼬박꼬박 세우고 있다.

잠깐 한국에 들어갔다가 아시아부터 시작할지

바로 여기서 남미로 갈지를 고민하다가,

겨울이되는 북반구로 또 돌아가기는 싫어서

아마 바로 남미로 가게될 것 같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브라질로 넘어가는 항공권이 90이었는데,

월급나오는 대로 예약해야겠다.

글을 쓰다보니까

여기서 미국으로 바로 넘어가서 저가항공타고 멕시코로 들어가는 루트가

더 값이 쌀거 같기도 하다. 내일 찾아봐야지.

11월 초까지는 호주에 있으면서 꼭 해보고 싶은거 3가지를 정했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산호초가 있다는 GBR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 하기

뉴질랜드에 있다는 나무 판자 다리 한가운데서 번지점프 하기

남태평양 군도에 가서 스카이 다이빙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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