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우려낸 홍차

by 류이음

인생에서 딱 한 번 헤어졌던 남자와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이별이야 여러 번 했지만 재결합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보통 한 번 돌아선 관계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미련이라는 감정은 내게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에게는 예외였다. 물론 우리의 결말은 다시 헤어지는 것이었다. 너무나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그랬을까. 가끔 그 일을 생각한다. 답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오래된 찻잔의 얼룩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기분으로.


그에게서 연락이 온 건 늦가을이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나는 이제 곧 내가 좋아하는 겨울이 온다는 사실에 약간 들떠 있었다. 주말 오후였고 나는 집에서 다이시 댄스의 음악을 틀어놓고 소파에 뒹굴거렸다. 창밖의 나뭇가지들은 앙상했다. 그때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잘 지내?’ 세 글자였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응.’ 짧게 답했다. 그걸로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고 우리는 만났다.


우리가 만난 곳은 늘 가던 동네 카페였다. 그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계절에 상관없이 그는 늘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나는 따뜻한 두유 라떼를 주문했다. 여름에도 따뜻한 라떼를 마시는 나를 그는 신기하게 생각했었다. 우리는 마주 앉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여전히 여름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겨울이 좋다고 말했다. 우리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기억은 훌륭한 편집자다. 혹은 사기꾼이다.


뇌는 이별의 고통이라는 지루하고 불편한 장면은 과감하게 잘라낸다. 싸우고 지쳤던 순간들은 희미한 흑백 사진처럼 남긴다. 대신 좋았던 순간만을 골라내 화려한 색감을 입힌다. 함께 웃던 저녁의 공기. 나란히 걸을 때 스치던 그의 옷 냄새.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 그런 향기로운 것들만 짙게 남는다. 그 향기에 이끌려 우리는 다시 찻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기대하면서. 첫 번째의 그 진한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어쩌면 나는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첫 번째 결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결국 맞지 않는다는 명확한 사실을. 나는 일을 할 때도 그렇다. 다른 회사와 협업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보고서를 쓴다. 이 프로젝트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실패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재회는 일종의 재검토 보고서 작성 과정 같았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것.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INTP의 성향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몇 번 더 만났다. 주말에 그는 등산을 가자고 했다. 나는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었다. 그는 맵고 짠 음식을 좋아했고 나는 맑은 버섯전골 같은 음식을 좋아했다. 그는 내게 왜 그런 밍밍한 음식을 먹냐고 물었다. 나는 그의 음식을 보며 속이 불편해진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그는 T2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티백을 보며 말했다. 이런 걸 마시는구나. 나는 그냥 그렇다고 대답했다. 더 이상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고장 난 선풍기를 잠시 고쳐놓은 것뿐이었다. 다시 더운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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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별은 처음보다 훨씬 간단했다.


누구도 붙잡지 않았고 누구도 울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 통화에서 그는 잘 지내라고 말했다. 처음 문자와 똑같은 말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냉동실에서 식빵 두 조각을 꺼냈다. 토스터기에 넣고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빵이 튀어 올랐다. 차갑고 딱딱했던 빵이 온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건 원래의 빵이 아니다. 수분이 날아간 다른 존재일 뿐이다. 나는 그 빵에 버터를 발라 먹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왜 그를 다시 만났을까. 희미하게 남은 과거의 향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굳이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그냥 또 한 번의 틀린 결정을 한 걸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그 짧은 실험을 통해 확실한 데이터를 얻었다. 두 번째 우려낸 홍차는 결코 첫 번째의 맛과 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저 옅고 싱거운 무언가가 될 뿐이다. 향기마저 사라지고 나면 맹물과 다를 바 없다.


나는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나의 리듬대로 살아간다. 두 번째의 옅은 맛도 나름의 의미는 있겠지만 나는 첫 번째의 진하고 선명한 향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찻잎을 꺼낸다. 언제나 첫 번째의 차를 마시기 위해서. 그게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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