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의 의회

by 류이음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다. 짧은 연휴에는 꾸역꾸역 다녀왔는데. 이번처럼 긴 연휴에는 오히려 서울에 남았다. 그냥 완벽하게 혼자 있고 싶었다. 모든 종류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엄마와 짧게 통화했다.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엷게 묻어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다음 주말에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그 편이 서로에게 편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거대한 침묵 속에 홀로 남았다. 내가 원했던 바로 그 침묵이었다.


연휴 첫날 늦게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도시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그 텅 빈 공간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그대로 누웠다. 천장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방의 모든 사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오늘 단 하루 의회를 연다면. 나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면. 과연 어떤 녀석이 가장 신랄할까.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는 것은 노트북일 것이다. 그는 차가운 금속성의 목소리로 나를 비웃을 것이다. 잠재력이라는 단어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수십 개의 인터넷 창을 띄워놓고 정작 중요한 보고서는 한 줄도 쓰지 않는다고. 너의 재능은 너의 게으름을 이기지 못한다고. 아마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반박할 말이 없다.


다음은 냉장고가 웅 소리를 내며 입을 열 것이다. 그의 비판은 좀 더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 언제 사 왔는지 모를 시든 채소.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우유. 텅 빈칸들의 공허함. 그는 나에게 제대로 먹고는 있는 거냐고 물을 것이다. 너 자신을 돌보는 가장 기본적인 일조차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하려는 거냐고. 그의 비판은 묵직한 저음이라 더 아프게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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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침대는 한숨부터 쉴 것이다. 매일 밤 너의 지친 몸을 받아주는 건 나라고. 하지만 너는 나에게 너무 오래 머문다고.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사용한다고. 잠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침대의 비판은 다정해서 오히려 더 날카롭게 느껴질 것이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알고 있으니까.


소파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누워있는 바로 이 소파. 그는 내가 이 위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는지 증언할 것이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세상을 비관하고 남들을 부러워했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만 모른다고. 그는 삐걱거리는 소리로 나의 무기력을 질타할 것이다.


책상. 혹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칫솔까지. 그들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나를 비판할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주하는 나를. 더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를.


나는 그 모든 비판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누구의 말이 가장 아픈가 순위를 매겨보았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누구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직장 동료도. 가끔 만나는 연인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나는 애써 이런 생각들을 외면하며 살았다.


이 사물들의 의회. 이것이 어쩌면 내가 이번 연휴에 진정으로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에서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나의 게으름과 무기력과 도피 성향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간.


사물들은 다시 침묵 속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비판했지만 동시에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나의 모든 모습을 말없이 받아주었다.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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