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 일본 라멘집이 있다.
아주 작은 가게다. 테이블은 없고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닷지가 전부다. 나는 그곳에 자주 간다. 이주에 한두 번 정도. 바지락 라멘을 먹기 위해서다. 맑고 시원한 국물이 좋다.
이 가게의 거의 유일한 단점은 음식이 늦게 나온다는 것이다. 사장님 혼자 요리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이 느리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이다. 라멘을 먹고 회사로 돌아가면 늘 시간이 빠듯하다. 동료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시간 낭비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간다.
닷지에 앉으면 사장님의 모든 것이 보인다. 그는 라멘 한 그릇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면을 삶고 물기를 터는 동작. 작은 그릇에 소스를 배합하는 손놀림. 육수를 국자에 퍼 담아 그릇에 붓는 신중한 표정. 마지막으로 고명을 올릴 때는 거의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세계에는 라멘과 자신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손님도 시간도 세상도 모두 그의 등 뒤에 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는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열심히 살지 않는다. 일을 매우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 그냥 한다. 월급을 받고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그뿐이다. 회사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퇴근 후에는 나만의 세계로 돌아온다. 에너지를 아끼는 편이 낫다. 서울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피곤하니까.
나는 열심히 살지 않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원래 세상은 그런 것 아닌가. 여름을 싫어하면서 여름에 사랑에 빠지기도 하니까. 인간은 논리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멘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그릇.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먼저 맛본다. 사장님의 시간이 담긴 맛이다. 그의 노력이 녹아 있는 맛이다. 나는 천천히 면을 먹는다. 그의 성실함을 먹는 기분이다. 열심히 살지 않는 내가 그의 열심을 잠시 빌려오는 기분이다.
라멘 값으로 지불하기에는 조금 과분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이 늦게 나와도 괜찮다. 그 기다림은 공연의 일부 같은 것이니까. 나는 서둘러 가게를 나온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간다. 괜찮다. 나는 그의 열심 한 그릇을 먹었으니까. 오후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