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둘 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 산다는 공통점. 우리는 그것 하나로 한두 달에 한 번씩 만났다. 어제는 성수동의 작은 와인바였다. 나는 하우스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그녀는 달콤한 칵테일을 시켰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울지는 않았다. 대신 아주 긴 한숨을 쉬었다. 잔에 맺힌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상이 무너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랬구나’ 같은 추임새도 넣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사실 나는 그녀의 슬픔에 온전히 공감할 수 없었다. 이별은 슬픈 일이다. 그건 안다. 하지만 세상이 무너질 정도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작년 여름에 만났던 남자를 떠올렸다. 고장 난 선풍기 같았던 관계. 연락이 끊겼을 때 나는 담담했다. 그냥 여름이 끝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나에게 무언가 더 바라는 눈치였다.
함께 분노해주거나. 혹은 그의 욕을 해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슬픔에 동참해주기를.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내 감정의 온도를 잘 안다. 억지로 뜨거워지려고 하면 화상을 입는다. 그래서 그냥 나의 온도를 유지했다. 미지근하고 건조한 온도.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기대를 한다. 자신이 슬플 때 상대방도 슬퍼해주기를. 자신이 기쁠 때 상대방도 기뻐해주기를. 그들은 타인을 자신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거울이 다른 풍경을 비추면 당황한다. 혹은 서운해한다.
나는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이 나의 슬픔에 공감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혼자 슬퍼하고 혼자 괜찮아진다. 그게 나의 방식이다. 나의 세계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다. 그녀는 자신의 세계를 기준으로 나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망했을 것이다. 쟤는 내 슬픔을 이해하지 못해.
우리는 너무나 다른 행성에서 왔다.
그 사실을 자주 잊는다. 나의 중력과 그녀의 중력은 다르다. 내 행성에서의 이별은 가볍게 툭 떨어지는 사과 한 알 같은 것이지만. 그녀의 행성에서는 거대한 운석 충돌일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중력을 이해할 수 없고 그녀 역시 나의 무중력에 가까운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가 물었다. 너는 괜찮아? 헤어지고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았어. 라고 말하면 그녀는 더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웃었다. 글쎄. 시간이 약이겠지. 그런 하나마나한 말을 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나올 법한 대사. 그녀는 그 말을 위로로 받아들였을까. 잘 모르겠다.
우리는 각자의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기대는 종종 강요가 된다. 너는 왜 나처럼 생각하지 않아. 너는 왜 나처럼 느끼지 않아. 그 질문은 날카롭다. 상대방의 세계를 존중하지 않는 말이다. 나는 다른 회사와 협업을 할 때 상대방의 업무 방식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그 편이 결과가 좋다.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나쁜 친구일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오래 매달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그녀를 위로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와인 값을 전부 계산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다이시댄스의 음악을 들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밤이 빠르게 지나갔다. 저 수많은 불빛 아래 얼마나 많은 기대와 실망이 엇갈리고 있을까.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나의 세계를 지킬 뿐이다.
나의 감정에 솔직하고 타인의 세계를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를 바꾸지 않는 것. 그것이 서울에서 혼자 살아가는 나의 방식이다. 조금 외로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안하다.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