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일 때문에 구글 포토에서 옛날 사진을 찾고 있었다.
잊고 있던 얼굴들과 풍경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러다 한 사진 앞에서 손가락을 멈췄다. 2022년이라고 적혀 있었다. 리안갤러리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
데미안 허스트. 나는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전부 내 취향이라는 말은 아니다. 어떤 작품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떤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다. 그의 전략이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렀다. 맞는 말이다. 그는 죽음을 판다. 하지만 그냥 팔지 않는다. 아주 비싸게. 아주 세련되게 판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사실 촌스럽다. 해골. 약. 곤충. 포름알데히드에 담근 상어. 자칫하면 싸구려 호러 영화 소품처럼 보일 수 있다. 키치(Kitsch)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손을 거치면 그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현대미술 작품이 된다. 플래티넘으로 해골을 만들고 다이아몬드를 8601개 박아 넣는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것은 연금술이다. 촌스러움을 가장 고급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힘.
나는 이 연금술에 감탄한다.
평범한 아이디어를 비범한 가치로 만드는 기획의 힘. 나는 다른 회사와 협업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늘 기획을 하고 전략을 짠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기획을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기획은 평범하게 끝난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는 다르다. 그는 아이디어 하나로 시장의 판도를 바꾼다. 모두가 혐오하거나 외면하는 것들. 죽음이나 질병 같은 것들을 가장 빛나는 곳으로 가져온다. 그는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기획자다. 마케터다. 그의 작품은 그 자체로 완벽한 브랜딩의 결과물이다. 나는 그 지점이 좋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은 기획이 가진 힘은 안다.
어쩌면 나의 INTP 성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뜨거운 감정보다 차가운 논리를 더 신뢰하는 편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은 뜨겁지 않다. 오히려 차갑고 계산적이다. 죽음이라는 가장 감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는 거리를 둔다. 마치 의사가 수술을 하듯이. 혹은 과학자가 실험을 하듯이. 그 냉정함이 좋다. 직장에서 사람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는 나의 방식과 닮았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현상을 분석하는 태도.
데미안 허스트는 나에게 보여준다.
평범한 것. 심지어 혐오스러운 것도 기획의 힘을 만나면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쩐지 위로가 된다. 나의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도 어떤 아이디어를 만나면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