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엄마의 다정함이 버거울까

by 류이음

일이 끝났다.


나는 텅 빈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서울의 밤공기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많은 불빛이 있었지만 내 것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는 길은 언제나 조금 길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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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불을 켰다. 익숙한 나의 작은 세계가 나타났다.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아이폰이 울렸다. ‘엄마’라는 두 글자가 화면에 떠 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따뜻했다. 밥은 먹었니. 회사는 힘들지 않고. 몸이 아픈 곳은 없는지. 이어지는 질문들은 모두 사랑의 다른 형태였다. 나는 안다. 하지만 나의 대답은 짧고 건조했다. 응. 괜찮아. 아니 안 추워. 모든 음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는 기분.


전화를 끊고 소파에 앉았다.


거대한 침묵이 나를 눌렀다. 나는 왜 그랬을까.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사랑 앞에서 자주 짜증을 내는 걸까.


어쩌면 나는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의 헌신적인 사랑은 거대하고 무조건적이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만큼 좋은 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 그 사실들이 엄마의 목소리 너머에서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것이 예상된 죄책감일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할수록 나의 죄책감도 함께 커진다. 이 불편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나는 선제적으로 방어벽을 친다. 짜증이라는 이름의 방패를 꺼내 드는 것이다. 사랑이 다가오는 것을 밀어내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까. 역설적인 일이다.


나는 냉장고에서 기네스 흑맥주 한 캔을 꺼냈다.


컵도 없이 그냥 캔을 땄다. 치익. 경쾌한 소리가 났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넘어가는 동안 생각했다. 엄마의 사랑은 맑은 버섯전골 같다. 따뜻하고 속이 편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 온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우리는 너무나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다. 엄마의 행성에서 사랑은 주는 것이다. 나의 행성에서 사랑은 때로 감당해야 할 무게가 된다. 이 중력의 차이를 엄마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그냥 이 미스터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답을 모르는 채로도 괜찮은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간다.


한 캔을 다 비웠다.


약간의 알코올 기운이 몸에 돌았다. 내일 아침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어제는 피곤해서 그랬어. 그렇게 말해야겠다. 아마 엄마는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다정함 앞에서 또다시 작은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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