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회사도 아닌,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에 대하여
바를 운영하다 보면 손님들의 표정을 읽게 된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얼굴이 다른 사람들이 있다. 들어올 때는 어딘가 구겨져 있다.
넥타이를 풀다 만 것 같은, 한숨을 삼키다 만 것 같은 표정. 그런 사람들이 칵테일 한두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이면, 이상하게도 얼굴이 펴져 있다.
대단한 일이 있었던 게 아니다. 바 카운터에 앉아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나는 그게 늘 궁금했다. 술 때문일까. 아니다. 한두 잔으로 취할 리가 없다. 그러다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공간'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집이 제1, 일터가 제2라면, 제3의 공간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지대. 거기서는 사회적 위계가 느슨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직함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읽는 순간 알았다. 내 손님들에게 필요했던 게 바로 이거였구나.
카운터에 앉은 손님들을 떠올려 본다. 낮에는 팀장이었을 사람, 누군가의 막내였을 사람, 클라이언트 앞에서 웃어야 했을 사람. 회사에서는 성과로 존재하고, 집에서는 역할로 존재한다. '나'로 존재하는 시간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바 카운터에 나란히 앉는 순간, 그 역할이 전부 벗겨진다. 명함을 꺼낼 일이 없으니 직함 뒤에 숨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회의실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말들이 여기서는 툭, 하고 떨어진다. 내가 건넨 질문 카드 한 장에 웃음이 터지고, 옆자리 사람이 내민 안주 한 점에 대화가 시작된다.
"요즘 너무 지쳐요." "이직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에요." 처음 본 사람한테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지만, 바 카운터라는 구조가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옆을 보면 사람이 있고, 건너편에는 내가 있고, 그 사이에 술잔이 있다. 마주 앉는 게 아니라 나란히 앉으니까, 눈을 똑바로 마주치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솔직해진다.
집에서는 안 되냐고 물을 수 있다. 안 된다. 집은 쉬는 곳이지만,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소파에 누우면 내일 아침 알람이 떠오르고, 혼자라는 사실이 더 선명해진다. 무엇보다 집에는 대화 상대가 없다.
회사의 가면을 벗었더니 침묵이 기다리는 셈이다. 사람은 결국 말을 해야 풀린다. 머릿속에서 혼자 굴리는 생각은 점점 무거워지기만 하는데, 그걸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가벼워진다. 그 말을 받아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 그게 소셜링바가 집과 다른 결정적인 한 가지다.
소셜링바는 그 틈새에 있다. 여기 온 사람은 누구든 이야기를 한다. 바텐더인 나한테든, 옆자리 손님한테든. 그게 이 공간의 구조다. 유능하지 않아도 되고, 밝지 않아도 되고,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가만히 혼자 웅크리고 있진 않게 된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잔을 부딪치는 작은 소리가,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대화 안으로 끌어들인다.
한 손님이 나가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 오면 진짜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에요."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돌아온 게 아니라, 드디어 도착한 거라고. 하루 종일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가, 낯선 사람과 나눈 솔직한 대화 한 마디에 비로소 자기 자신한테 도착한 거라고.
빌딩 숲 사이에 그런 장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직함도 연봉도 필요 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곳. 나는 그걸 만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