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에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 구겨져 있다. 나갈 때는 펴져 있다.
그 사이에 대단한 건 없었다. 칵테일 한두 잔. 옆 사람과 나눈 이런저런 말.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사람이 하루 종일 쓰는 얼굴이 몇 개일까. 팀장의 얼굴, 막내의 얼굴, 클라이언트 앞의 얼굴. 집에 오면? 또 다른 얼굴. 아버지, 남편, 아들.
'나'의 얼굴은 없다.
아니, 있긴 한데 꺼낼 데가 없다.
레이 올든버그가 '제3의 공간'이라 했다. 집이 첫째, 일터가 둘째. 셋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곳.
읽는 순간 무릎을 쳤다. — 아, 이거였구나. 내 손님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하지만 가만 생각하면, 이름이 붙기 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몸으로.
바 카운터라는 구조가 묘하다.
마주 보지 않는다. 나란히 앉는다.
눈을 피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솔직해진다. — 이건 역설이다. 그런데 매일 본다.
"요즘 너무 지쳐요."
"이직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에요."
처음 본 사람한테 이런 말이 나온다. 회의실에서는 죽어도 안 나올 말이.
명함을 안 꺼내니까 그렇다. 직함 뒤에 숨을 필요가 없으니까.
사람은 이름표를 떼는 순간 비로소 입을 연다.
집에서는 안 되느냐고.
안 된다.
집은 쉬는 곳이지만 동시에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소파에 누우면 알람이 떠오르고, 혼자라는 사실이 또렷해진다. 회사의 가면을 벗었더니 침묵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은 결국 말을 해야 풀린다. 머릿속에서 혼자 굴리면 점점 무거워지기만 하는데, 한 마디 밖으로 꺼내면
가벼워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다.
유능하지 않아도 된다. 밝지 않아도 된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혼자 웅크리고 있기가 어려운 곳. 잔 부딪치는 소리가, 내가 건넨 질문 카드 한 장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대화 안으로 끌어들이니까.
이건 설계다. 그런데 설계라고 부르기엔 너무 따뜻하다.
한 손님이 나가면서 말했다.
"여기 오면 진짜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에요."
돌아온 게 아니다. 도착한 거다. 하루 종일 남의 기대에 맞춰 살다가, 낯선 사람과 나눈 솔직한 한 마디에 비로소 자기 자신한테 도착한 거다.
빌딩 숲 사이에 그런 장소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직함도 연봉도 필요 없이, 그저 '나'이기만 하면 되는 곳.
그걸 만들고 싶었다.
— 아니, 그걸 만들고 있다. 매일 저녁, 카운터를 닦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