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찍 오신 손님과의 단 둘만의 대화.
영업 시작 한 시간 전.
아직 아무도 없어야 할 시간에 문이 열렸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너무 일찍 왔죠?" 하고 물었다. 나는 아직 닦지 않은 글라스를 손에 든 채 그냥 앉으라고 했다.
그는 앉았다. 조용히.
술을 내기 전에 먼저 물었다. 뭐 드릴까요. 그는 뭐든 괜찮다고 했다. 결정하기 싫은 날의 대답이었다. 선택지가 많아도 고를 마음이 없을 때 사람은 그렇게 말한다.
위스키를 따르면서 어쩌다 이렇게 일찍 오셨냐고 물었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잔을 두 번쯤 기울이고 나서야 그가 말했다.
"딱히 갈 데가 없어서요."
집이 있는데도. 친구도 있고. 연락하면 나올 것 같은 사람도 몇 명 있고.
근데 갈 데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한동안 그냥 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글라스를 닦는 척하면서 그 말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봤다. 설명을 요구하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스스로 말을 꺼낸다. 기다리는 것도 일종의 기술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외롭지는 않아요. 근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외롭지 않지만 외로운 기분.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이해한 게 아니라 알아들었다. 뇌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들어왔다.
사람이 너무 많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 연락은 끊이지 않고 약속도 있고 관계도 있다. 근데 그 관계들이 전부 역할 안에서만 자기를 부른다. 누구의 선배로 누구의 친구로 누구의 후배로. 아무도 그냥 이 사람 자체를 부르지 않는다. 이름이 아니라 역할이 불린다. 오래 그렇게 살다 보면 자기 이름이 낯설어진다.
그게 쌓이면 외롭지 않지만 외롭다.
연료는 있는데 엔진이 돌지 않는 기분.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오래된 바텐더 한 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술집에 오는 사람 중에 진짜 술이 필요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대부분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라고. 당시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그날은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그는 두 번째 잔을 받으면서 조금 더 말했다. 회사에서도 잘 지내고 있고 가족이랑도 큰 문제 없고 딱히 힘든 일도 없다고. 근데 퇴근하고 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집에 가면 또 내일을 준비해야 할 것 같고 누구한테 전화하기엔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어딘가에 앉아 있고 싶었다는 거였다.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 다른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잔을 다 비우고 나서 처음으로 등을 펴며 엉뚱하게 물었다. "여기 자주 이렇게 일찍 오는 손님 있어요?"
나는 가끔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작게 웃었다.
혼자 왔는데 혼자가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그 웃음은 위로받은 얼굴이 아니었다. 확인받은 얼굴이었다. 이상한 게 나만이 아니라는 확인.
그와 나는 그 두 시간 동안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침묵했다. 무언가 해결해줬다거나 위로했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냥 같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이 공간이 할 수 있는 전부인지도 모른다.
해결이 아니라 동반. 처방이 아니라 동석.
어떤 외로움은 채울 수 없다. 그냥 옆에 있어줘야 하는 종류의 것이 있다. 말 없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잔이 비면 채워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하루가 조금 달라진다는 걸 나는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배웠다.
그는 나가면서 "다음엔 제 시간에 올게요"라고 했다.
나는 언제든 괜찮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