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간 손님
이 바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하러 온다.
잔이 채워지면 입이 열린다. 그게 이 공간의 문법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낯설었다.
금요일 밤이었다. 카운터에 사람이 꽤 있었고 대화가 흘러가고 있었다. 직장 이야기. 연애 이야기.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한참째 떠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잔이 됐다. 여전히 조용했다.
그런데 불편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 웃기면 같이 웃었고 한숨이 나오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입은 닫혀 있었지만 귀는 활짝 열려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조금 한산해졌을 때 슬쩍 물었다.
"왜 말은 안 하시고 듣기만 하세요?"
그녀가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IT 개발자예요. 하루 종일 코드랑 대화하거든요."
잠깐 멈추더니 다시 말했다.
"근데 사람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 제가 보지 못하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것들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코드의 세계는 논리적이다.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다. 오류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을 찾으면 해결된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유 없이 슬프다는 말. 잘 되는데도 불안하다는 말. 그녀는 그 비논리를 즐기고 있었다.
"코드는 답이 있잖아요. 사람은 답이 없어요. 그게 좋아요."
하루 종일 정답을 찾는 사람이 밤에는 정답 없는 곳을 찾아온다. 모순 같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균형이었다.
"회사에서는 다들 포장하잖아요. 여기서는 안 그래요. 그 날것의 이야기가 저한테는 산소 같은 거예요."
산소라고 했다. 그 단어가 오래 남았다.
"듣기만 해도 괜찮아요?"
"충분해요. 혼자인데 혼자가 아닌 느낌. 그게 여기 매력인 것 같아요."
말하는 것만이 연결은 아니다. 듣는 것도 연결이다. 어쩌면 더 깊은.
말하는 사람은 자기 이야기에 빠져 있다. 듣는 사람은 상대의 이야기 안에 들어가 있다. 누가 더 깊이 연결되어 있는가.
그녀는 잔을 비우고 일어서며 말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오늘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날 오간 말들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회사 푸념과 연애 고민. 그런데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진짜여서.
문이 닫혔다. 빈 잔을 치우며 생각했다.
이 바에는 이야기를 꺼내러 오는 사람이 있고 이야기를 주우러 오는 사람이 있다. 꺼내는 사람이 없으면 주울 것이 없고. 줍는 사람이 없으면 꺼낸 것들이 바닥에 흩어진 채 남는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바닥의 말들을 하나씩 집어 올린 사람이었다.
경청은 침묵이 아니다. 열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