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바텐더가 된다는 것

수만 가지 인생의 사연을 섞어 위로를 내놓는 일

by 류이음

술을 섞는 일은 배웠다. 감정을 섞는 일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바텐더는 잔 앞에 서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사람 앞에 서는 것이었다.


카운터에 낯선 사람들이 나란히 앉는다. 처음에는 조용하다. 잔이 한두 번 채워지면 말이 시작된다. 나는 그 말들을 글라스 너머로 듣는다.


"저 손님 전에 왔을 때 다른 말을 했는데?"


스텝이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 다른 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주에는 옆자리 손님한테 회사 다니는 게 즐겁다고 했다. 이번 주에는 다른 손님한테 퇴사를 고민 중이라고 했다. 둘 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그날 옆에 앉은 사람이 달랐고 하루의 무게가 달랐을 뿐이다.


그걸 거짓이라 부를 수 있을까.


스크린샷 2026-02-28 오전 10.20.15.png


편집이다. 자기 자신의 편집. 우리는 전부 자기 인생의 편집자다. 삭제한 장면이 있고 강조한 장면이 있다. 원본이 너무 날것이면 살이 쓰리니까. 포장이 아니라 보호다.


어느 금요일이었다. 카운터에 네 명이 앉아 있었다. 전부 처음 보는 사이였다. 한 손님이 사업 이야기를 꺼냈다. 투자도 받았고 직원도 늘었고 전부 잘 된다고. 옆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했다. 웃음이 오갔다.


나는 카운터 안쪽에서 그 웃음의 끝을 봤다. 입은 웃는데 눈은 웃지 않았다.


손님들이 빠지고 그 사람만 남았다. 잔을 밀며 한 잔만 더 달라고 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다음 달을 못 넘길 수도 있다고. 아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힘들다는 말이 안 나오더라고.


한숨이 아까 웃음보다 훨씬 솔직했다.


낯선 사람끼리 대화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의 볼륨을 조절한다. 상대가 바뀌면 편집본도 바뀐다. 나도 그런다. 바가 힘든 날에도 잘 된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사장이 지쳐 보이면 손님이 불안하니까.


바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만나면 나도 편집된 나를 꺼내놓는다. 괜찮은 부분만 골라서 보여주고 힘든 부분은 뒤로 뺀다. 그러니까 저 손님을 탓할 수가 없다.


카운터 안쪽에서 듣고만 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과장인 줄 알면서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옆 손님. 그 끄덕임이 진짜 위로가 되는 순간. 편집된 이야기끼리 부딪쳐서 진심이 새어 나오는 순간.


편집된 이야기 안에도 진심은 있다. 과장을 해도 아픔은 진짜다. 나는 그걸 카운터 안쪽에서 읽는다.


잔은 비워지고 다시 채워진다. 이야기도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크리스마스, 나 홀로 집에 대신 솔로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