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몰라도 취향은 아는, 도시형 가족의 탄생.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
직업도 모른다.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손님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잘 묻지 않는다.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는 잔을 꺼낸다. 하이볼 잔이다. 얼음을 먼저 채우고 탄산수를 반쯤 따른다. 위스키는 조금 적게. 그 사람은 항상 연하게 마신다.
이름을 모르는 사람의 취향을 아는 것. 그것이 이상한 일인지 자연스러운 일인지 가끔 생각한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서로의 과거를 안다. 어릴 때 무서워했던 것을 기억하고 사춘기 때 했던 말실수를 기억한다. 그 기억이 사랑이 되기도 하고 짐이 되기도 한다.
바의 단골은 다르다. 과거가 없다. 오직 현재만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모른다. 부모와 사이가 좋은지도 모른다. 다만 첫 잔은 가볍게 시작하고 두 번째 잔부터 말이 느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세 번째 잔쯤에는 안경을 벗고 이마를 문지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안다.
또 한 명이 있다.
그 사람은 항상 구석 자리에 앉는다. 카운터 끝자리다. 옆 사람이 말을 걸면 주로 듣는 편을 선택하는 편이다.
대화를 하지 않을 때는 벽에 등을 기대고 바 전체를 바라보는 자세를 좋아한다. 음악이 바뀌면 고개를 살짝 기울인다.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눈을 감는다. 마음에 안 드는 곡이 나오면 핸드폰을 본다.
나는 그 사람이 눈을 감는 곡의 목록을 대충 알고 있다. 그 사람도 내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안다. 서로 말한 적은 없다. 그냥 안다.
앎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정보로서의 앎이 있고 감각으로서의 앎이 있다. 이력서를 읽으면 정보를 얻는다. 같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 감각을 얻는다. 단골과 나 사이에 있는 것은 후자다.
도시에서 가족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한 집에 살아야 가족이었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에서 자야 가족이었다. 성이 같아야 하고 호적에 이름이 올라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공간을 반복적으로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유대가 생긴다. 매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리듬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들 사이에 가족과 비슷한 무언가가 자란다.
비슷하지만 같지는 않다.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는 의무가 있다. 명절에 모여야 하고 경조사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고 안부를 물어야 한다. 단골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오고 싶을 때 오고 안 오고 싶으면 안 온다. 하지만 다시 왔을 때는 단골끼리 반갑게 맞아준다.
의무 없는 유대. 그것이 도시형 가족의 조건이다.
한 달쯤 안 오던 사람이 어느 날 문을 열었다. 나는 평소처럼 잔을 준비했다. 그 사람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여기 오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 안 해도 되니까 좋아요.
그 말이 한참 머물렀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우리는 매일 설명한다. 회사에서 자기를 설명하고 모임에서 자기를 설명하고 새로 만난 사람에게 자기를 설명한다. 이름과 직업과 사는 곳과 취미를 나열한다. 그 나열이 끝나야 관계가 시작된다.
여기서는 그 과정이 생략된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아닌 것들로.
단골이 단골을 알아본다.
서로 이름을 모르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같은 시간대에 자주 마주치는 사람끼리 생기는 인사다. 말을 섞지 않아도 존재를 확인하는 것. 저 사람도 왔구나. 그 정도의 인식.
그 인식이 쌓이면 어느 순간 한마디가 된다. 오랜만이네요. 혹은 오늘 일찍 오셨네요.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상하게도 깊어진다. 잃을 것이 없는 관계에서 사람은 더 솔직해진다. 내일 다시 볼지 알 수 없으니까 오늘 하고 싶은 말을 한다. 그것이 이 관계의 힘이다.
이상한 일이 있다. 다른 바는 모르겠다. 우리 바에서는 이름을 아는 사이가 되어도 이름을 잘 부르지 않는다. 누가 정한 규칙도 아닌데 그렇다. 아마도 속으로 이렇게 저장을 해두는 것 같다. 카운터 세 번째 자리 칵테일. 창가 자리 위스키. 구석 자리 하이볼.
이름보다 그 호칭이 더 정확하다. 스스로 선택한 자리와 술이 그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깝다.
나는 이 사람들의 보호자가 아니다. 부양할 의무도 없다. 다만 잔을 채우고 공간을 유지한다. 그것뿐이다.
그런데 문을 닫고 집에 가는 길에 가끔 생각한다. 오늘 그 사람 표정이 좀 달랐는데. 괜찮은 건가. 술을 평소보다 빨리 마셨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가족이 하는 걱정을 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는다.
걱정이라는 감정은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의 평소와 다른 표정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의 평소를 마음에 담고 있다는 뜻이다.
어떤 단골은 간혹 다른 단골이 한동안 안 오면 내게 슬쩍 묻는다. 그 자리에 앉던 분 요즘 안 오시나요. 나도 모르겠다고 답한다. 번호를 모르니 연락할 방법이 없다. 그 무력함 안에 묘한 정이 있다. 찾을 수 없는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순수한 마음인 것 같다.
이름을 몰라도 걱정은 할 수 있다. 취향을 아는 것이 이름을 아는 것보다 더 깊은 앎일 수 있다.
도시에서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계약서 없이. 서약 없이. 같은 공기를 반복해서 나누는 것만으로.
오늘도 문이 열린다.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나는 잔을 꺼낸다. 하이볼 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