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기운을 빌려 겨우 뱉어낸 마음속 깊은 응어리들
나는 술을 잘 못 마신다.
바를 운영하는 사람이 술을 못 마신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이상하게 들려도 사실이다. 체질이 그렇다. 두 잔이면 얼굴이 달아오르고 세 잔이면 심장이 빨라진다. 그래서 만취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약간의 취기는 다르다.
한 잔 반쯤 마시면 몸 안에 잠겨 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평소에는 무거워서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다. 알코올이 부력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떠오른 것은 입 밖으로 나가려 한다. 적당한 선 안에서. 만취하면 그 선이 무너진다. 약간의 취기는 선을 지키면서도 문을 열어준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새벽 두 시쯤 되면 바의 공기가 달라진다. 낮에 입고 왔던 갑옷이 한 겹씩 벗겨진 뒤의 시간이다. 조명이 원래 어둡지만 그 시간에는 더 어둡게 느껴진다. 사람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넓어지면 공간이 더 깊어진다.
그 깊어진 공간 안에서 말이 나온다. 낮에는 꺼내지 못했던 종류의 말이다.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이다.
어느 남자가 세 번째 잔을 비우고 나서 말했다. 아버지 장례식에서 울지 못했다고. 직장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눈물이 안 나왔다고. 차를 몰고 장례식장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에도 울지 못했다고. 3일 내내 상주 역할을 하고 조문을 받고 절을 하고 수습을 했는데 한 번도 울지 못했다고. 그게 6개월 전이라고 했다.
그는 잔을 내려놓지 않은 채 말했다. 나 이상한 건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잔을 채웠다.
그가 네 번째 잔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천장을 봤다. 눈이 젖어 있었다. 6개월 만에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 눈물은 술이 만든 게 아니다. 술은 그냥 뚜껑을 열어준 것뿐이다. 안에는 원래 그게 있었다.
새벽의 바에서는 낮의 언어가 작동하지 않는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도. 낮에는 그런 말들이 윤활유처럼 관계를 매끄럽게 해주지만 새벽에는 오히려 거칠게 느껴진다. 그 시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위로의 문법을 잊은 사람들이다.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잔을 부딪친다.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것이 새벽 두 시의 언어다.
한 여자가 있었다. 조용히 마시다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한테 한 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안 열린다고. 전화를 걸면 뭐 먹었어만 묻고 끊는다고. 그게 전부라고.
옆에 앉은 사람이 같이 듣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여자가 말을 멈추자 그 사람이 조용히 말했다. 저도요.
그 세 글자가 카운터 위에 놓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응어리라는 것은 돌과 비슷하다. 안에 넣어두면 점점 단단해진다. 꺼내면 부서진다. 부서지려면 밖으로 나와야 한다. 밖으로 나오려면 틈이 필요하다.
술은 틈을 만든다. 정확히는 약간의 술이.
만취하면 말이 쏟아진다. 쏟아진 말은 다음 날 후회가 된다. 기억나지 않는 문장들이 누군가의 귀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그래서 만취는 위험하다. 약간의 취기는 다르다. 말을 고를 수 있다. 무엇을 꺼내고 무엇을 남겨둘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이 가능한 상태에서 꺼낸 말은 진짜다.
이 바에 앉은 사람들이 꺼내는 이야기는 대부분 오래된 것들이다. 어제 생긴 일이 아니다. 몇 년째 안고 있던 것들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왜 여기서는 말할 수 있을까.
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일 회사에서 마주칠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소문이 되어 돌아올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이니까. 그 일회성이 안전장치가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말하기 어렵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관계가 달라질까봐. 진짜 속 이야기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멀리 있다.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더 깊은 말을 하는 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인간의 구조다.
새벽 두 시의 카운터는 그 거리를 뒤집는다.
가장 먼 사람에게 가장 가까운 말이 나온다. 처음 왔을 때 건네던 가벼운 농담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밤이 깊어지면서 한 겹씩 벗겨진 뒤에 남은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이 좋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이 새벽까지 바에 서 있는 이유가 있다면 이것이다.
바를 운영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듣는 일이다. 특히 새벽에는 그렇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조언도 하지 않는다. 그냥 듣는다. 사람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가벼워진다는 걸 나는 이 자리에서 배웠다.
한 손님이 나가면서 문 앞에서 돌아봤다. 오늘 한 이야기 아무한테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두 시에 이 카운터 위에 놓인 말들은 여기서 끝난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것이 이 공간의 약속이다. 아무도 서명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지키는 약속이다.
응어리는 말이 되어야 비로소 녹는다. 녹으려면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 안전하다는 것은 판단이 없다는 뜻이다. 맞다 틀리다가 없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6개월간의 무감각도 그 여자의 말 못한 사랑도 여기서는 어떤 평가도 받지 않는다. 그냥 놓이고 그냥 들린다.
이 바가 그런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밤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누군가의 오래된 돌덩이가 부서지는 소리를 듣는 새벽이면 좋겠다고.
문을 닫기 위해 바를 정리한다.
남겨진 이야기들은 테이블 위에 없다. 공기 속에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 사라짐이 이 공간의 역할이다. 내일이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말들이 오늘 밤 누군가를 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