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의 청소

by 류이음

토요일 오전. 나는 청소를 시작한다.


어떤 상쾌한 다짐 같은 건 없다. 그냥 때가 되었을 뿐이다. 일주일에 한 번. 달력에 적어두진 않았지만 몸이 기억한다.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듯. 그렇게 청소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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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을 열었다. 도시의 소음과 섞인 바람이 들어왔다.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은 공기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환기는 필요하다. 묵은 공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일. 그것이 청소의 시작이다.


음악을 튼다. 켄이치로 니시하라. 청소를 할 때면 거의 언제나 그의 음악을 선택한다. 그의 음악은 자신을 들어달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배경처럼 조용히 흐를 뿐이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방 안의 흩어진 공기를 정돈하는 것 같다. 일정한 비트는 청소라는 기계적인 노동에 희미한 리듬을 부여한다. 공간을 차지하지만 가득 채우지는 않는 음악. 내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자유를 남겨두는 음악. 그래서 나는 청소할 때 그의 음악을 튼다.


나는 먼지를 닦는다.


선반 위에도 책상 위에도 먼지는 공평하게 내려앉아 있다. 어디서 온 먼지일까. 알 수 없다. 도시의 먼지이거나 내 몸에서 나온 먼지이거나. 나는 젖은 천으로 그것들을 닦아낸다. 아무 생각 없이 팔을 움직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단순한 노동이다.


청소기를 돌리는 일은 소음과의 싸움이다. 기계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먼지를 삼킨다. 그 소리 앞에서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기계를 따라 방 안을 천천히 움직일 뿐이다. 청소기는 일을 하고 나는 청소기를 조종한다. 그 관계는 명확하다.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과 비슷하다. 누구도 그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흩어져 있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둔다. 리모컨과 읽다 만 책. 우편물 몇 개. 모든 물건에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나는 그것들을 옮겨놓는다. 질서를 회복하는 일. 하지만 거창한 의미는 없다. 그저 다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집은 박물관이 아니다. 모든 것은 사용되기 위해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닦는다.


걸레에 물을 묻혀 엎드린다. 손목에 힘을 주어 바닥을 문지른다. 가장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한다. 힘든 일은 미뤄두는 편이 낫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바닥의 얼룩이 지워지고 걸레는 더러워진다. 당연한 교환이다.


청소가 끝났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났다. 집은 처음보다 확실히 깨끗해졌다. 공기의 질감이 달라졌다. 시각적으로도 정돈되었다. 사람들은 이럴 때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한다. 혹은 보람을 느낀다고도 한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쾌하지도 않고 뿌듯하지도 않다. 그냥 일이 끝났다는 생각뿐이다. 금요일 오후 여섯 시의 기분과 비슷하다. 일주일치 업무를 마치고 컴퓨터를 껐을 때. 해방감보다는 의무의 끝이라는 안도감. 청소는 나에게 그런 종류의 일이다.


먼지는 내일이면 다시 쌓이기 시작할 것이다. 집은 서서히 다시 더러워질 것이다. 내가 들인 두 시간의 노력은 영원하지 않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청소의 결과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저 다음 청소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뿐이다.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것들과 싸우는 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신다.


깨끗해진 집. 남은 토요일 오후. 이제 뭘 할까. 청소는 끝났다. 하나의 과제가 끝났을 뿐이다. 주말이라는 텅 빈 시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깨끗해진 집은 그 시간을 조금 더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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