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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Dec 24. 2016

루이지와 피터 이야기 - I

@hotel robles.managua.nicaragua

당시 환갑이 넘었던 루이지는 이제 칠순이 넘었을테고, 관광청 청장이었던 마리아는 정권이 다시 좌익으로 교체된 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게 스패니쉬 라이프 스타일을 진하게 알려준 니카라구아에서의 삼개월간의 생활이 있었다. 당시 수행하고 있었전 프로젝트의 내용과 현지 공장을 운영하던 한국인 주재원들에 대한 기억은 이제 까마득하게 옅어져 가지만, 알고 싶었고 그래서 알아야만 했던 현지 니카라구아 친구들의 면면은 더욱 또렷해진다. 내가 묶었던 작지만 깔끔하고 아름다웠던 부티크 호텔인 호텔 로블로스를 그만 두고 글로벌 브랜드 호텔의 지배인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내겐 거의 조르바 같은 존재였던 루이지가 아직도 니카라구아 어디에선가 멋지고 쿨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으리라 바래본다.

루이지와 나는 니카라구아 수도인 마나구아에서 가장 유명한 니카라구아 전통 음식 레스토랑인 이곳 '아이데 아줌마네 부엌' (Cocina de Dona Haydee) 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식당으로 오게 되는데, 이름도 어여쁜 '꼬시나 데 도냐 아이데'.

그날 저녁은 마침 열대성 폭풍이 불어 오히려 시원하고 쾌적한 밤이었는데 저 뻣뻣하고 거친 야자수의 거대한 잎이 태풍에 흔들리는 모습이 하두 이뻐서 삼각대까지 놓고선 그 움직임을 담아 봤다.
루이지의 영어가 남달랐던 것은 뉴욕에서 학교를 나왔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이태리 이민자였던 부모와 함께 아이티에서도 살다가 이곳 니카라구아에서 그의 전공인 호텔경영학을 살려 지배인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 옆에 붙에 있었던 도자기 타일엔 스패니쉬로 '튀기고 먹고' 란 뜻의 '프리엔도 이 꼬미엔도' 라 써있었다. 저 때는 스패니쉬 발음이 뭐든 너무 재미 있어서 무슨 글자든 재미 있게 생각되었었다.

맛이 아주 좋았던 니카라구아 산 맥주, 토냐 와 부팔로다. 버팔로의 스패니쉬 발음이 부팔로 였는데 그 발음이 재미있어 난 자꾸 시켜 마셨다. buffalo una mas, por favor! 부팔로 한병 더 부탁해요.

니카라구아의 전통 음식들이 차려져 나오기 시작했고, 난 하나 하나 루이지에게 설명을 부탁하며 먹어보기 시작했는데 한두 가지 심하게 발효시킨 것들 빼고는 고소한 맛들이 좋았다.

'아이데 아줌마의 부엌' 레스토랑 지붕엔 니카라구아의 깃발이 태풍에 나부끼고 있었고 난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알지도 못했고 심지어 나라 이름조차도 들어 보지 못했던 이 중미 나라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었었다. IT 관련 거대한 다국적 기업에서만 일하다 보니 이러한 개발 도상국과는 거리가 멀었던 탓이 컸었다. 캘리포니아, 홍콩, 싱가폴, 프랑크프르트, 런던, 콜로라도, 맬버른, 비엔나 그리고 도쿄와 북경, 서울.. 어딜가나 똑같았던 소위 자본주위 선진국적 분위기의 사무실에서 똑같은 비지니스 언어로 이야기하던 각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의 이어지는 회의와 호텔들에 질렸었던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는 정반대로 도대체 이제껏 생각해 보지도, 느껴 보지도 못했던 전혀 다른 정치 사회적 분위기, 열대 기후 아래의 화산과 호수로 가득한 생태계, 시와 댄스를 사랑하는 색다르고 즐거운 울림의 라틴 언어와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끈끈하게 살아오고 있는 사람들을 이제 막 만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리스크를 동반하더라도 사소한 이 모든 것들이 경이로웠던 것 같다.

좌간 루이지와의 인연은 이렇게 제대로 시작되었다. 워낙 발이 넓었던 그를 통해, 난 니카라구아의 주요 인사들과 예기치 않게 만나기도 했고 카지노, 스탠딩 가라오케, 나이트 클럽, 라틴 댄스 파티 등등..'문화 체험 삶의 현장'과도 같은 해프닝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루이지는 내 호기심과 호기에 마음 졸이며 불안해 하면서도 언제나 곁에서 지켜 주었고 그를 통한 니카라구아의 발견은 회사 주재원들과의 유람성 관광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이었다.

아이데 아주머니가 어찌나 깨끗하게 유지를 하는지 레스토랑 내부는 먼지 한톨 없는 듯 했고 스페인 식 인테리어에 간접 조명을 참 잘해놓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이탤리언 마쵸 루이지는 내가 3개월여를 묵었던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해서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까미노 레알 호텔등에서 묵었었는데, 어느 나라에서나 똑같은 분위기의 대형 호텔을 떠나 오래 묵을 수 있는 가정 집같은 유럽식 호텔을 찾다가 이곳 Hotel Robles 를 찾게 되었다. 장기 투숙에 다른 Discount 도 있었고 무었보다 마음에 쏙드는 스페인식 건물 양식과 역시 스페인 스타일의 아담한 정원, 그리고 지배인인 루이지의 영어가 마음에 들었었다.

항상 허리춤에 아주 오래된 리볼버 권총을 차고 근무하는 우직한 호텔의 경비원 아재도 마음에 들었고,

큼직한 타일이 깨끗하게 깔린 널직한 내 방도 좋았다. 내 방엔 침대와 옷장, 책상, 그리고 내 유일한 놀이 기구인 골프백이 놓여있다.

무엇보다 호텔 내부엔 고속 인터넷 망이 잘 갖춰져 있었는데,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각종 자료 취합 및 분석등을 위한 제반 작업 환경이 안성 맞춤으로 갖춰져 있었다. 프로젝트 용 랩탑 컴퓨터 세대, 카메라 두대 그리고 비디오 카메라 한대 등, 사실 이것들이 내 진짜 놀이도구 였다. 그렇게 로블로스 호텔의 내 방은 수천명이 일을 하고 있었던 이곳 니카라구아와 온두라스에 위치한 여러 곳의 공장을 분석하느라 지친 몸과 머리를 식히기 위한 나만의 공간이 되어 갔다.

주재원들중 한 직원이 호텔로 데려다 주고 떠나면서 난 이 작은 부띠크 호텔의 로비를 지나 내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면 마치 한국의 내 가정, 내 방으로 들어가는 포근함과 안온함을 느끼곤 했던거다. 몇개 되지 않는 호텔 객실에는 미 대사관 직원, 아르헨티나에서 온 작가, 나중에 사귀게 된 마이아미에서 온 Jim, 그리고 내가 일하는 산업 공단 내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미국인 사장등 호텔내에서 마주치더라도 별 불편함이 없는 게스트들이 묶고 있었다.

.. 부에나스 노체스, 세뇰 신!
하며 명랑하게 인사하는 예의바른 리셉션 레이디와도 금방 친해졌고..

동이 트는 아침에 신선한 열대 정원의 정기와 함께 하는 소박한 아침 식사도 좋았다.

이곳의 주식인 팥밥과 두개의 써니 사이드 업 달걀 후라이, 토스트, 과일, 쥬스, 커피, 그리고 초콜릿 케잌의 디저트 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소박하거나 간단하지 않은 부담스런 아침 식사일 수 도 있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아침을 마치고 조금 있으면 우리 주재원 중 한사람이 날 데리러 오곤 했었다. 루이지와는 장기 투숙을 위한 계약 후, 통 성명을 한 다음 언제 한번 한잔 하자 라고는 했으나 주중엔 아침 일찍 직원들이 호텔로 픽업을 왔기 때문에 루이지 출근 전에 난 아침을 후다닥 해 치운 후 출근해야 되었고, 저녁엔 프로젝트 회의다 회식이다 해서 늦게서야 호텔로 돌아오는 바람에 역시 그의 퇴근 후 시간이라 호텔에 묵는 지 한달이 다 되어도 그와의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았었다.

어쨌든 호텔 투숙 바로 다음날 저녁 퇴근 후 방에 들어가니 루이지가 보낸 이쁜 과일 바구니와 그의 명함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는데 여기서 루이지는 내게서 점수를 왕창 따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 날 내 퇴근 후 마침 루이지가 호텔에 남아있었고 우린 이곳 '하이데 아줌마네 부엌'에서 멋진 저녁을 나누게 된거다.


2부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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