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난지 십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검었던 머리 이미 반백을 넘긴지 오래지만 그 시절 그 공간에서의 감흥이 더욱 또렷해져 가는것은 세월이 주는 위로라고나 할까.
내게 절은 공양을 드리는 곳도, 예배당도, 사원도 아니었지만 특별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굉장한 친생태 공간이자 힐링의 공간이었다.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이 한국인들이나 외국인들에게 종교를 떠나 각광을 받고 있는것을 보면 다른 많은 이들에게도 사찰이라는 공간은 아주 특별한 것임에 분명하다.
소승불교의 기치에 따라 인적이 드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자리한 한국의 절들은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 닿기 힘든 그 깊고 고요한 공간에 자리한 절은 어렸을적이나 젊었을적이나, 나이가 한참 들었을적이나 그저 좋았다. 초라해져 있을때나 힘이 넘쳐 주체하기 힘들때나 이곳에 들어서면 중용의 기운이 흐르며 균형감을 찾곤했다. 구도자들의 서릿발이 서린듯한 기둥 하나 하나, 신자들의 염원이 켜켜이 쌓여 그 무게가 장중할 수 밖에 없을것 같은 수많은 기와의 지붕,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나무 마루의 정성스런 반들거림, 그리고 그 하얀 고무신들도 좋았다. 어떤 미물도 다치게 할 수 없을것 같은 그곳에서 오래도록 자라나고 있는 나무와 수풀도 너무 좋았고, 작은 짐승들의 부시럭거림도 즐거웠다.
한껏 멋을 살리고 구조적 안정미까지 더한 그 유명한 배흘림 기둥보다 통나무가 제 모습 그대로 자리한 이곳 암자의 기둥은 why not!! 이란 감탄사가 절로 나게 한다. 처마를 장식한 현란한 세공조각 장식은 이곳에서도 한때 많은 신도들과 그에 따르는 풍성한 캐쉬 플로우가 형성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는데, 지금은 이렇게 단청은 고사하고 부식 방지를 위한 래커칠조차 없지만 난 그 민나무들의 무늬를 들여다 볼수 있음이 더 좋았다.
조릿대인지 키가 작은 종류의 대나무인지, 암자에 오르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이 대나무 터널에서는 바람이 대나무 닢들을 통해 내려주는 소리 샤워로 마음을 정갈히 씻고 가야할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열 발자국도 채 돼지 않는 짧은 거리가 아쉬워 사그락 거라는 대나무 잎들의 소리를 눈으로 한잎 한잎 확인하며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 아름답고 장중한 목재 건축물은 어느 방향에서 보나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대웅전을 둘러보며 그 부드러운 기둥을 쓰다듬을라치면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곳에서 벌어졌을 전설적 야사들의 속삭임이 들리는듯도 하고.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특별함이나 고고함이담보되진 않을진데 이 은둔지엔 소박한 아름다움과 당당함, 주변 자연과 완벽한 조화로움에 따르는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구도자들만이 출입할수 있는 공간을 잠시 엿보는 것은 내밀한 곳을 향한 짖궂은 호기심을 채운다기 보다는 경계를 나눔에 있어서의 조화로운 미니멀리즘을 읽게도 했다.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진 이 작은 담장과 최소한의 통과적 의식을 부여하는 작은 출입문은 이 공간의 권위를 오히려 극대화 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