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photo odyssey

5번가를 걷는 기분

@ Manhattan.New york

by Peter Shin Toronto

아주 오래전 걸었던 뉴욕 맨해튼 5번가.. 내부 진열된 보석들을 닦고 광내기 위해 티파니는 5번가로 난 문을 잠시 폐쇄하고 대신 벽화를 그려 놓았었는데 참 마음에 들었었다. 임시로 프린트되어 붙여진 벽화는 티파니의 시크한 포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젊은 뉴요커들을 그려낸 벽화였는데 생동감이 넘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었다.

대학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자주 읽던 New Yorker라는 잡지가 생각났었다. 어린 시절, 세련되고 지적인 도시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읽곤 했던 '뉴요커'였다. 이 그림들이 주는 느낌이 당시의 그 느낌이었던 거다. 독립적 자부심이 강하고, 지적이며, 까칠하면서, 정치적 주관도 뚜렷하고, 남의 눈길 의식하지 않고, 예술적 향취는 물씬 풍기는, 하지만 명품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주로 명품이 아니듯 뉴욕에 산다고 해서 나 뉴요커! 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많지 않겠고, 파리에 살면서 나 사랑스러운 빠리지엥이야 라고 외칠 이들 역시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5번가를 걷다 보면 가끔 거리를 압도하며 지나는 이들이 간혹 있긴 했다. 독하지 않은 부드러운 향기와 비즈니스 캐주얼보다는 정장 차림세의 바쁜 발걸음, 일행들과 멋진 억양의 intellectual 하면서 단호한 목소리를 흘리며 휘리릭 사라져 가는 맨해튼의 프로페셔널들이다, 주로 금융, 언론, 그리고 부동산, 예술 유통 계통에 종사할 것 같은 친구들인데 하지만 이러한 내 생각은 솔직히 좀 웃기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과거 동경했던 도시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일 뿐일 수 있었을 테니. 하지만 금융과 IT, 방송, 그리고 정치 관련 직업군들이 밀집해 있었던 내 직업적 터전이었던 한국 여의도의 프로들하고는 향취가 많이 달랐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온갖 종류의 인간 군상들이 다 모여사는 거대 도시에 어둠이 내리고 밤이 되면 낮의 친절해 보이는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안전한 곳 빼면 다 불안한, 질주하는 폴리스 크루저의 사이렌 소리만이 어울리는 살벌함으로 변신하는 다운타운인 것을 잘 안다. 카를로스 조빔의 경쾌한 보사 노바 Chega De Saudade의 음률이 어울리는 것은 대낮의 뉴욕일 것이다. 맨해튼의 실 구성원들보다 관광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그 벌건 대낮의 들뜬 뉴욕만이 내가 어렸을 적부터 동경해 왔던 환상 속의 뉴욕일지 모른다.

뉴저지의 한 호텔에서 하루종일 회의를 하고 나서 저녁 식사 전 잠시 놀러 나온 맨해튼이었다. 생각해 보면, 5 번가를 걷는 느낌이나 인도의 거대 도시 첸나이의 질척거리는 뒷골목을 걷는 기분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그건 사람이 서로 모여 살아가는 흔적이나 역동감은 부유하고 곤궁하고를 떠나 유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걷고 있는 순간의 신변 안전에 얼마나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정도겠다. 중미의 니카라과 수도에서 몇 걸음씩만 지나도 만나야만 했던 거리의 노숙자들이나, 무례한 줄 알면서도 눈에 힘주며 괜히 빤히 쳐다보며 지나가곤 했던 서울 거리의 사람들이나, 도쿄 혹은 홍콩 등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지나야 했던, 마치 사람이 사람이 아닌 듯 그저 스쳐 지났던 수많았던 사람들이나,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인간들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다양하면서도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뭐 특별할 게 있을까만 Hurt Locker 영화에서의 폭발물 처리반처럼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폭발물이란 현실에서는 길이라는 개념, 길 위를 걸어 다니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이 정말 많이 달라지겠구나 라는 생각도 든다.

명동 길 걷는 걸 참 좋아했었다. 볼 것 많은 인사동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로 길을 걷다 보면 그곳 Bar에서의 연주자들 생각도 났고, 이곳저곳에서 한잔 기울였던 친구들도 생각났었다. 홍콩 침사추이 언덕길을 걸어 내려오다 보면 부둣가가 나오고 내가 다니던 회사가 있던 타임 스퀘어에서 나와 아래로 걷다 보면 어느새 Causeway Bay의 숙소 Parklane 호텔에 당도하곤 했다. 홍콩은 참 자주도 들락거렸는데 거의 회사와 호텔 사이 길 만 오갔었다. 중동에서 온 젊은이들이 마약을 팔려고 서성대는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겨울 오후 길은 쌀쌀하고 음산하기까지 했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었다. 런던의 거리를 한참 걷다가 피카딜리 서커스로 들어설 때의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은 아직도 그 느낌이 살아있다. 런던은 이상하게도 내가 갈 적마다 날씨가 화창했다. 런던 Fog는 내 기억엔 없는 것이다. 직장이 있었던 여의도도 참 많이 걸었었다. 점심 식사 후의 산책, 동료들과의 대화를 위해 여의도 공원도 많이 찾았었고.. 토론토의 다운타운 역시 오래된 도시인만큼 도심의 오래된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즐거웠었다. 남북으로 형성된 Yonge(영) 길을 따라 동서로 나있는 Dundas, Bloor, Queen, King Street, 유서 깊은 길 주변의 오래된 주막집들, Gallery들, 박물관, 그리고 아주 오래된 멋진 고딕식 성당과 교회들, 많은 곳을 익숙하게 다녀 추억이 쌓여갔었다. 어느 집엔 무슨 맥주가 신선하고, 무슨 음식이 맛있고, 날 잘 아는 친절한 바텐더가 있고..

티파니의 저 대문을 보니 당연히 오드리 헵번이 생각났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에서의 오드리 헵번은 그녀의 가장 청순하면서도 도발적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불가리는 내가 제일 즐겨했던 브랜드 중 하나였다. 뭐든 제대로 만드는 것 같았다. 심플하면서도 강한, 그리고 선이 굵은 디자인, 그러면서도 개구쟁이스러운.. 그 정반대의 느낌은 항상 구찌 Gucci에서 받곤 했다.

그리고 그 후, 이젠 내 아이들 역시 이곳에 서 있었다. 아빠가 거닐 던 5번가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의 생물학적 복사판들은 이제 브로드웨이의 중심에 서서 고개를 잔뜩 들고서 높은 곳을 바라봤었는데, 이후 아내와 아이들은 몇 차례 더 뉴욕을 방문하곤 했지만 나는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I miss New York though..



Talk to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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