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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r 02. 2017

뜻밖의 정찬

@로타리 대피소.지리산

온갖 종류의 먹방이 횡행하면서 천지에 가득한 혼밥족들을 대상으로 무협지보다 더한 음식 판타지를 부추기는 강호의 요리 검객들이 그들의 현란하고도 과도한(over engineered) 비법을 뽐내고 있을 때, 내게 오롯이 떠오르는 한줄기 추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동방불패의 임청하, 혹은 천녀유혼의 귀신 왕조연을 대형 스크린에서 처음 봤을 때의 짜릿한 설렘과도 같은, 신선하고 깨끗한 음식 한 접시에 관한 것이다. 사실 그 접시 아닌 접시에 담겼던 것은 음식이라기보다는 사나이들 간의 말없는 우정, 아름다운 우리 산에 대한 지극한 애정, 높고 깊은 산과 산 사나이들 간의 교감, 그저 지나는 나그네였을 뿐인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친절함과 개방성 등 평소 내가 살았던 세상에서는 맛보기 힘들었던 진기한 가치들이 지닌 깨끗한 맛으로 가득했다.

1500m 고지의 노루목을 지나 능선 산행을 지속하다 살짝 내려선 곳에 그 유서 깊은 대피소 산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날 밤 산장에서는 속세에서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던 왕년의 산장지기들이  다시 산사나이로서  함께 하는 OB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난 어찌어찌하다가 이들과 함께하게 된다. 그 산장의 이름이 장터목 산장인지, 연하천 대피소 인지, 아님 피아골인지 로터리 산장인지는 산을 잘 모르는 내가 알 길이 없어 안타깝다.(이글의 전편에서 피아골 산장이라 했으나 확신할 수 없음. 2020년 드디어 알았음. 로타리 대피소!)  지금 이곳 머나먼 캐나다에서 구글링을 통해 이곳 산맥의 대피소들을 샅샅이 살펴봤으나 아마도 다시 지어졌거나 지명들이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곳이 어디였는지 특정할 수는 없다. 어쨌든 등산은 일 년에 한 번이나 할까 말까 했던 내가, 더군다나 이번 여행은 캐나다로 영구히 들어가기 전 한국에서의 마지막 여행으로 그저 유명 사찰이나 둘러보는 정도의 관광이나 하자던 내가 산신령의 배려로 이들 산 사나이 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게 된 거다. 그리고 그들만의 성찬에 초대받게 된 거다.

이들 전직 산장지기들 중 한 사나이에 이끌려 산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산장을 운영하고 있던 막내급 청년이 끓여내 온 막강한 맛과 전통적 비주얼의 라면 한 그릇 그리고 김치 한 접시면 내겐 충분했다.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한 노고단 산장에서의 하룻밤, 다음날 아침부터 노루목을 거쳐 이곳 산장까지 이어진 겨울 능선 산행은 라면의 맛을 꿀맛으로 만들었고, 난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맛있었던 이 라면 한 그릇을 이제 막 감사히 끝냈던 것이다.

전날 밤 노고단에서의 일몰은 이제 곧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내게 우리의 강산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의 다짐 어린 외침이었다. 가슴속 뜨거움이 울컥 올라왔다. 이젠 안녕.. 조국이여.

노고단 산장에서의 하룻밤으로 난 또 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었고 아침 일찍 우린 이곳 산장으로의 능선 산행을 시작했는데 어머니 산은 그 아름다운 겨울 운해까지 선사하며 우릴 반겼다.

더 이상 신선할 수 없는 대기의 습기는 밤새 수많은 나뭇가지와 마른 입사귀들에 크리스털 옷을 입혔고 산행 내내 함께했던 대낮의 태양은 그 옷들을 모두 벗겨내며 반짝이는 영롱함으로 화하게 했다.

코끝이 쨍하게 아린 겨울 아침, 안개를 제외하고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고 밝고 따스한 태양은 산행 내내 우리의 뺨을 데워주었던 것이다.

망원 렌즈로 당겨본 먼산. 우리의 산은 겨울엔 희끗희끗 흰머리 칼을 보이며 그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나눠주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건 어머니 지리산의 장난기였을 뿐 그 숲속의 젊음은 해가 가고 또 가고 수천 수만년을 거듭해도 젊어지기만 할 뿐이다.


한편, 황홀한 맛의 라면 섭취가 끝나고 나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듯 포만감과 만족감에 빠져 있던 나와는 달리 날 이곳으로 이끈 전직 산장지기 사나이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그 기다림의 대상은 바로 '형님'으로 일컬어지는 누군가였고 그는 지금 여수에선가 목포에선가 이곳 지리산 꼭대기 부근의 산장으로 향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와는 전혀 일면식이 없던 산 사나이들이기도 했고 다들 과묵하게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이들 중 누구를 붙잡고 뭘 물어볼 상황이 아니었다. 깊고 깊은 산 자락엔 밤이 빨리 찾아왔다. 어슴프레 해가 지나 싶더니 칠흑 같은 밤이 찾아왔고, 산장의 막내는 계속해서 모바일폰으로 그 '형님'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형님 어디쯤 오고 계세요? 그리고 한참 후 산장의 막내가 그 형님을 마중을 나갔고 그가 드디어 산장에 도착했다.

그 형님은 큼지막한 생물 생선을 짊어지고 이 깊은 지리산 꼭대기까지 올라온 것이었데 그건 바로 삼치였다. 더군다나 그 삼치는 횟감이었다. 산속에서 통째로 생긴  바다 생선을 보는 것 자체는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했는데 조리 방법이 구이나 조림이 아닌 회라니. 맙소사..

하지만 놀란 건 불청객인 나밖에 없었다. 손아래뻘 인듯한 다른 멤버들은 매번 그랬다는 듯 그 '형님'을 보조하며 도마와 회칼을 준비하고 마늘을 빻고 양념장을 준비하며 소줏상을 차렸다. 일사불란 했고 횟상 차림이 완성되기까지 거의 말들이 없었다. 난 이러한 상차림 의식을 숨죽이며 바라보며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었다.

듣도 보도 못한 삼치 회는 '형님'의 능란한 칼끝에서 시작해 손끝으로 완성되어 그저 그 도마 위에 차곡차곡 얹혔다. 단순하면서도 최적화된 '형님'의 요리 행위는 비장하면서도 코믹스러웠고, 믿음직하면서 다정스러웠다.

횟집을 운영한다는 그 여수 '형님'은 막 잡아온 삼치를 울러 매고 동생들이 기다리는 이곳 깊은 산중으로 내달려 온 것이었다.

도마 위에 차려진 회는 단순하고도 정직한, 원초적 디쉬였다. 여수 형님의 음식에는 그 흔한 현란함이나 지겨운 고급스러움, 쓸데없이 식재료를 낭비하는 장식적 설정은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음식을 정리해 그럴듯한 접시에 다시 담아내는 프레젠테이션 절차는 생략되었고 깊은 맛을 살린다는 숙성과정 역시 당연히 없었고, 감칠맛이라는 명분하의 어떤 잡다한 첨가물도 없었다. 물론 싱싱함과 잘 썰어냄이 모든 것인 한국식 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 한 접시를 만들어내기 위한 '형님'이라는 사람의 노고 어린 정성, 멤버들과의 우정, 매우 독특한 그만의 인간적 체취, 그리고 깊숙한 겨울의 높은 산 깊은 산장이라는 장소적 계절적 특별함이 더해져 이 음식은 어디서도 재현해낼 수 없는 세상의 단 하나의 메뉴, 단 한 번의 메뉴일 수밖에 없었다.

과묵한 산 사나이 '형님'의 음식은 산과 하나 된 그 뭔가가 있었다.

이글거리는 눈매의 '여수 형님'. 대단한 포스의 소유자였다.

역시 강단 있는 성격들 일 것 같은 산장 멤버들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가져온 오리 고기 등등이 등장하고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소주잔을 나누고.

그렇게 산중에서의 하룻밤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정찬을 중심으로 우직한 사나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끝났다. 그리고 그 여수 형님은 아마도 생업을 이어가야 했었기에 홀연히 사라졌는데, 제대로 감사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의 이 특별한 식사는 내가 가족들이 있던 캐나다로 오기 전에 누렸던 한국에서의 마지막 정찬이었다. 못 잊을 사나이들이여  다들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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