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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Apr 21. 2017

pandora box of memory

@대초원에서

내 호텔 지하실엔 아주 오래된 많은 이야기들이 열개 정도의 방들 곳곳에 스며있다. 퀘퀘히 쌓인 먼지와 켜켜이 달라붙은 녹을 제거하고 나면 그 먼 이야기들이 반짝 반짝 생기를 머금은채 튀어나올 것 같은데.. 오늘 그중 하나인 한 백여년 쯤 되어 보이는 여행 가방을 꺼내 녹을 닦아내고 나름 윤을 내어 레스토랑 한가운데에 놓고는 스팟 라이트를 받게했다. 마침 칠순이 훨씬 넘어보이는 할아버지 손님이 그 가방을 보고는 추억어린 이야기들을 들려 줬다. 가방 옆면에 붙어있던 여행 태그 쪼가리들을 보고는.. 아, 이건 대서양을 건너던 배의 이름이로군.. 1930년대엔 유럽과 캐나다간에 참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오.. 당시를 살아볼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여행 가방은 서부시대 영화에서 역마차 뒤켠에 실곤하던 궤짝 상자로 기억될 뿐이지만 내가 아주 어렸을적 이와 비슷한 트렁크가 집안 어느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방은 튼튼한 나무로 짜여져 있었고 얇은 양철판으로 나무 프레임을 둘렀으며 그 표면을 두터운 종이로 바른 뒤 옻칠 같은걸 해둔 상태였다. 또 모든 모퉁이는 구리 조각으로 마무리를 하고, 튼튼한 잠금 장치로 마감되어 있었다. 또 그 두터운 소가죽으로 만든 트렁크 손잡이는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가방에 붙은 baggage tag 을 보니 이 여행자는 Cunard White Star 라는 영국 해상여객회사의 배로 여행을 한 것이었다. 1934년에서 1949년 까지 운영된 이 회사는 내 호텔이 지어지기 일년전인 1911년에 건조된 여객선을 비롯한 수십척의 대형 여객선을 보유하며 십수년간 비지니스를 한것으로 나와 있었다. 위 사진은 이 여객선 회사가 운용 중이었던 퀸 매리 호의 배기지 태그..

당시 이 항공모함 만큼이나 거대한 여객선을 타고 수많은 이민자들과 여행객들은 한달 혹은 수개월에 걸친 항해를 통해 거친 대서양을 건너 북미 대륙으로 넘어 왔을 것이다. 당시의 이민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당시의 유럽에 비하면 신천지 북미대륙은 새로운 희망외엔 지금과 같이 잘 갖춰진 인프라도, 교육 시스템도, 사회보장제도도 없었을 것인데, 어떤 희망을 부여잡고 짐을 싸고 배에 오르고, 대양을 건넜을까.. 난 이제 이들 초기 이민자들이 일궈놓은 곳에서 그 과실을 향유하고 있는 것인데, 소위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의 이민은 다분히 특권으로 여겨지는 지금의 현실과 당시의 상황은 정반대 였을 것이다.

소위 이민가방이었을지도 모르는 이 트렁크 속엔 얼마나 많은 사연과 희망, 그리고 두려움이 가득했었을까. 이 상자를 여는 순간 그 많은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것 같아 열어보지 않고 그냥 두기로 했다. ㅎ


for the fantasy of the good ol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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