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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Jun 25. 2017

카누 트레일

downstream canoe@assisinoine river

서울서 날라온 친구와의 여행 둘째날을 맞이하면서 우린 극기 훈련 수준의 다운 스트림 카누 트레일에 나섰다. 첫날 호수에서의 카누 트레일로 온몸이 뻐근해진 상태에서 어젯밤 와인과 함께 한 만찬은 우리를 곯아 떨어지게 했고 실컷 늦잠을 잔후 아침 열한시가 다 되어서나 river canoe trail 에 나설수 있었다.

하지만 우린 카누에 오르기전 이미 세마리의 물고기들을 낚아내면서 카누 피싱의 좋은 전조를 보기도 했다. 평생 낚시를 해본적이 거의 없는 친구를 위해 캐스팅 요령 및 미끼 매다는 방법등등을 친구에게 전수하기도 하면서.

호텔 부근 출발점까지 무거운 카누를 차 지붕에 얹어와 출정 준비를 마친 후 아내는 우리에게 인증샷을 남겨주고 떠났다. Good luck guys!!

친구는 리버 카누 트레일 내내 되뇌였다. 내 버킷 리스트 아이템 중 하나의 완성이야!

사실은 이곳에서 벌써 오년째 살고 있는 나역시 그랬다. 차량으로 이곳 교량 부근을 오갈때마다 언젠가 카누를 타고 강을 탐사해 보고야 말테다 라며 마음속 다짐을 했었다. 장장 1,070 km 길이를 가진 유구한 역사의 아시니보이네 강(Assiniboine River)에서의 카누 타기는 캐나다 주민인 내게도 버킷 리스트 아이템 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벗이 멀리서 찾아오고 나서나 비로소 난 카누 트레일에 나설수 있었다. 물론 십여 킬로 미터 정도의 한나절 카누잉 이었지만.

대평원에 숨겨져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강은 내가 상상했던것 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변화 무쌍한 주변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비버들이나 거대한 까마귀, 새끼들을 졸졸 데리고 다니며 훈련 시키기에 여념이 없는 기러기 부모, 독야청청 독수리, 우아한 페레그린 팰컨, 그리고 내가 낚아낸 월아이(walleye) 물고기, 사방엔 인간에 의한 소음은 전혀 없었고 바람은 강 좌우의 나무와 숲들을 강력하게 움직이게 함으로써 그의 존재를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알렸다. 매우 구불 거려 뱀이 이동하는 모습이었던 사행천 구간이었던 이곳에선 강한 바람이 우리의 등을 밀어주어 쾌속질주를 가능하게도 했고 바로 다음 턴부터는 맞바람 때문에 벤허의 노젖는 노예 모드에 돌입하곤 했다. ㅎ

북미의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이곳 강에서는 봄에 비가 오지 않아도 홍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영하 사십도의 강력한 추위와 함께 육개월여의 긴긴 겨울에 내리는 눈은 사월이 넘어서야 녹게 되는데 적설량이 많은 해엔 그 눈이 한꺼번에 녹을 경우 강 하류 지방에선 홍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떠내려 오는 얼음 조각들이 교각에 걸려 쌓이면서 물이 넘치거나 제방이 유실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럴때면 엄청난 수량으로 인해 유속이 매우 빨라지면서 강 주변의 나무들을 휩쓸게 된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유순히 흐르는 오늘의 강의 모습만이 이 강을 말해 주는것이 결코 아닌 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친구와 한께 나선 이날의 멋진 날씨에 안도와 함께 감사의 마음이 컸다.

지금 비몽사몽 멍멍한 한국과의 시차 속에서도 내 뒤에서 낑낑거리며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조승균 박사를 생각하면 빚바랜 오랜 추억 하나가 또렷이 떠오른다. 내가 hp 에 입사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당시 내가 일하던 팀에서 IT 관련 매거진에 솔류션에 대한 연재를 실어 그 원고료로 엔진 장착이 가능한 무겁고 커다란 고무보트를 구입한적이 있었는데 서로 바쁜 hp 팀원들과는 정작 한번도 보트를 함께 타지 못했고 주로 친구들과 타곤 했었다. 그중 한명이 조박사였는데 언젠가 조박사가 가족 여행을 위해 내 보트를 빌려갔고 태안반도에 까지 내려간 승균은 기대 가득히 그 무거운 보트를 주차장에서 해변가까지 한시간 동안이나 혼자 끌어내 드디어 펌프질을 하며 바람을 넣는데 아무리 공기를 주입해도 보트가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는것.. 살펴보니 수년간 내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되어 있었던 보트의 접합 이음새 부분이 헐거워져 계속 바람이 새고 있었던 것.. 맙소사! 결국 보트는 친구가 폐기시켰고 우린 두고 두고 이 이야기를 하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카누 트레일 에서 몹시 즐거워하는 친구를 보며 그 빚을 톡톡히 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찬미하게 되고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인 오늘, 친구를 위해 날씨 빼곤 모든걸 준비한 내게 하늘은 이토톡 아름답고 상쾌한 날씨까지 허락한 것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 중의 한곳인 이곳의 강물은 진흙 퇴적물이 풍부해 탁하게 흐른다. 한때 거대한 바다의 얕은 해저를 이루었던 북미 대륙의 정 중앙인 이곳에 쌓인 퇴적물에는 온갖 종류의 고생물 화석들이 발견되곤 한다. 얼마나 오랜동안 이 강은 생명의 수액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일까. 일류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한곳인 중국의 황하보다도 훨씬 오랜 세월동안 생물의 원천인 바닷물과 민물을 품어오고 있다.

폭풍에 쓰러져 강물속에 자리한 나무지만 봄를 맞이하면서 다시 잎을 피우며 하늘로 자라나고 있었다.

꽤 바람이 불었던 오늘, 바람이 카누를 밀어 주는 구간에선 노를 정렬하고 하늘과 구름 바라기를 하며 또다른 멍 때리기 삼매경에 빠지기도 했다.

조물주의 설치 예술품들은 강의 구비구비 마다 어찌나 다양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던지 노를 저어가는 내내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세명이 탈수 있는 이 커다랗고 무거운 카누는 이러한 트레일엔 최고였다. 얼음을 잔뜩 채운 아이스박스엔 맥주와 캔 음료와 그리고 잡아올린 물고기들이 차있고 아이스박스 만한 크기의 또다른 런치 박스엔 내가 아침에 준비해 만든 도시락과 과일등의 먹을 것들을 채워 넣어 실었다. 캠핑을 해가며 진행해야 하는 장기 카누 트레일의경우 텐트와 침낭 등 더욱 많은 장비들이 필요할텐데 이정도 크기의 카누라면 어느 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비 구비 방향을 완전히 정반대로 바꿔가며 흐르는 강은 직선 거리의 서너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고 곳곳에 산재한 자연이 빚은 비경을 감상하기에 더 좋을수 없었다.

다운 스트림 카누는 다분히 모험적인데 오늘의 전과는 큼지막한 물고기 네마리 낚고 두마리의 가재를 건져 올리고 두개의 낚시대를 부러뜨리고.. 홍수에 쓰러진 나무들과의 충돌에 낚시대들이 차례로 부서져 나갔지만 강을 따라 내려오는 카누 트레일은 정말 황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자연 탐사 여행은 once in a life time 급이 될것이다.

강을 따라내려 가면서 봄에 알을 부화해 어느 정도 자라난 새끼들을 데리고 노닐던 기러기 가족들이 계속해서 우리 눈에 들어 왔는데, 우리의 카누가 이들에게 접근 하면서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기러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모 기러기들은 어쩔줄 모르며 꽥꽥 거렸다. 결국 빠르지 못해 뒤쳐지게 된 이산 가족 새끼들이 자맥질로 겨우 몸을 숨기게 되는데 우린 이렇게  피신하는 새끼 기러기들을 차례로 한마리씩 지나치게 되고 어미들은 어쩔수없이 우리 앞에서 계속 진행할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새끼 기러기들을 우리가 다 지나치고 나서야 어미 기러기들은 뒤쳐진 새끼들을 수습하기 위해 강 상류 쪽으로 날아갈수 있었다. 새끼 기러기들이 이렇게 잠수에 능한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지칠줄 모르고 벅차게 일하던 시절 내겐 많은 친구들이 있는 줄만 알았다. 세월이 흘러 내가 회사를 뛰쳐나오게 되고, 사회적 위상이 달라져 가면서 내가 친구라 여겼던 대부분의 직장 동료들은 그저 한때 알았던 사람들로 기억에서 사라져 갔고 어떤 이들은 좋지 못한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잡게 되기도 했다. 과거 동료들 중 유능하면서도 덕을 많이 쌓은 이들은 사회적 영향력이 날로 커져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아직도 오래전 함께 일했던 그 느낌 그대로의 친구로 지금껏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량한 사회적 성취에 취해 오만한 태도를 취하곤 했는데 가끔씩이라도 그런 이들의 면면이 떠오르면 입맛이 쓰게된다. 이제 그러한 제도권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지난 십년간 새로운 나라에서 독자생존 방식을 구축한 나로서는 누구도 부러울 이유가 없지만 한때 젊음을 함께 했고 여전히 변함이 없는 겸손한 친구들을 자주 볼수 없음이 안타깝다. 변치않는 오랜 벗을 초대해 내가 스스로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내가 직접 고치고 만든 호텔  방에서 재우면서 이곳 캐나다 찬구들과의 우정도 쌓게하는 생태 탐방 프로그램을 내 스스로 가져갈수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친구들이 쉽게 오가기 어려운 곳이다 보니 아쉬운 마음 크다.

일견 잔잔히 흐를것만 같러 보이는 강이지만 바람과 유속은 우리의 카누를 자주 강 기슭의 퇴적물 층에 부딪히게 했다. 하지만 부러져 꺽여 있는 강한 나무 가지들에 충돌하면서 낚시대 두개가 부러져 나간걸 제외하면 다른 심각한 충격은 없었다. 강 기슭과 바닥의 흙은 너무 부드러웠던 것이다.

앞에서 나타나곤 했던 나무 가지들의 장애물들은 짜릿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게 했지만 별탈없이 비켜 빠져나가곤 했는데 카누잉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구간이었다.

잠시 카누의 선수에 발을 올려놓고 멍때리기 중.

또 하나의 설치 예술을 지났다.

서너시간여의 카누잉 후 우린 바위로 이루어진 강 기슭에 잠시 카누를 정박시키고 얼음을 채워온 아이스 박스에서 맥주 두어캔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친구야, 나 역시 너 덕분에 이런 최고의 카누 트레일을 경험해 본다. 고맙다 친구야.

난 저것이 짐승의 사체임을 직감했다. 우린 카누를 재빨리 선회해 강을 거슬러 이 수중 나무 앞에 다다랐는데, 와우.. 엄청난 머리통을 가진 물고기의 시체였다. 뜯어 먹힌 뱃살 부근에 드러난 갈비뼈는 마치 공룡과 같이 둥굴고 끝이 뾰족한 형태였다. 독수리구나. 이곳을 지나기 바로 전 거대한 흰꼬리 독수리가 날아 올랐었다. 녀석만이 이 거대한 생물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이곳 나무에 걸쳐 놓고는 뜯어먹기 시작했으리라. 휴.. 오싹!!

다섯 시간여의 노젓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이자 사부인 글렌이 차를 가지고 우리의 카누를 실어 나르기 위해 기다리던 부근까지 다달았다.

다리 밑에 카누를 정박시키며 끌어 올리는 사이 글렌은 카누를 끌어 올릴 로프를 가져왔다.

우리의 카누는 이제 강을 벗어나 유채꽃 들판을 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유채꽃 벌판 한가운데 놓여진 빨간 카누의 엽기적 모습에 우린 박장대소를 하며 오늘의 트레일을 마감했다.

호텔로 복귀한후 친구가 샤워를 하는동안 난 베이비 pork ribs 을 직접 만든 BBQ 소스를 발라 오븐에 구워내면서 오늘의 만찬이 준비되었다.


Bon appetite and have a good night m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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