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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Sep 26. 2016

아들과 함께한 여름 2016

아들아 안녕.. 다음에 함께 할때까지..

''기쿠지로의 여름' 이라는 제목의 기타니 다케시 감독의 동화같은 영화가 있다. 기타니 다케시는 잘 알려진 냉혈적이고 다소 엽기적 캐릭터의 일본 배우 인데 그가 한물간 건달 역할로 나오는 이 영화에선 어른의 눈으로 보는 기쿠지로란 아이가 그려지고 그 얼간이 같은 건달 어른은 어떻게든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추려 자신을 낮추며 비워 나간다. 엊그제 감상한 또 다른 일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 은 요즘 일본을 대표하는 신세대 감독 고레이다 히로가츠 가 그려가는 아이들의 생각과 모습들이 너무나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눈높이는 어른들 생각처럼 그렇게 낮거나 미성숙적이지 않다. 아이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어른들이 오히려 아이들보다 철없고 무책임 하며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내 마음 속에서만 상영된 '아들과 함께한 여름 2016' 이라는 나만의 도큐멘타리를 통해 난 내 아들과 나 스스로에게 뭘 남기고 싶었을까.. 벌써 스물한살이나 되어버린 아들이지만, 난 녀석의 어린 시절로 눈 높이를 낮추려고 했을 것이고, 아빠 보다 힘이 더 세지고 있는 아들 녀석은 벌써 아빠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여유 있는 성인의 입장이었던것 같다.

삼박 사일, 아비와 아들의 둘만의 시간에서 우린 별로 말이 없었다. 서로에게 요구되는 만큼의 일들을 서로가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고 필요한 만큼의 대화만 오갔다. 서로간의 믿음과 애정이 두텁게 자리하고 있었기에 우린 가벼운 일상적 대화만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아들, 맥주 마실래 와인 할래?

옥수수 구워 먹을까? 배 고프면 스테이크?

아빠 먼저 텐트 들어가서 잔다..

아들, 장작 좀 더 패주라.

아들 일어나 아침이야!!

카누타러 나가자..

아빠, 카누 더 타고 낚시 좀 더하고 들어가.

오, 아빠 저기 무지개! 쌍 무지개 떴어!

아들과 함께 했던 자연은 주로 혼자만 즐겨 왔던 그것과는 너무도 많이 달랐다. 훨씬 더 다양하고 깊었으며 아름다웠다. 천지에 가득찬 검은 구름과 천둥 소리, 그리고 가득한 폭우와 우박, 그리고 한밤중 텐트가 날아가라 불어댔던 검은 탬페스트는 장중하고 근엄한 서사곡이었고 세상의 모든 디테일들을 일깨우며 우리 부자를 흥분하게 했던 한낮의 태양와 소나기, 그리고 고요히 내려 앉던 노을은 천상의 서사시 였다. 찬란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기도 했던 어머니 자연은 우리 부자를 더욱 결속시키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아들 아이의 손가락 사이에 쥐어졌던 거대한 잠자리를 바라보며 신기해 하기도 하고, 빨간 머리의 튼튼한 부리와 다리를 가진 딱다구리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 바로 앞 나무에서 머리를 끄덕이는 나무를 쪼는 모습을 바라 보기도 하며 우리 부자는 굳이 말이 필요 없었다. 그저 서로 바라보며 낄낄 거리거나 모닥불에 화끈거리는 얼굴을 느끼며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찬 맥주를 나눠 마실 뿐이었다.

아들과 아비는 나흘 내내 장작불을 꺼뜨리지 않고 피워냈다. 텐트로 잠자러 들어가기전 아들은 가능한 많이 통나무를 패어 장작을 만들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던 아비는 하얀 재가 내리며 밤새 거의 다 타버린 모닥불을 아들이 지난 밤 솜씨 좋게 패놓은 적당한 크기의 장작으로 다시 불을 활활 살리고 나서 아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우박에 껍질이 깨져버린 달걀들을 삶기도 하고, 기름이 쪽 빠지도록 베이컨을 굽기도 하고, 키다리 자작 나무 숲 사이로 난 산책 길을 다녀 오기도 하며 아비는 아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느긋한 행복감과 함께..

아이들과 어렸을적부터 많은 시간을 보내며 바람직한 아빠의 역활에 충실했던 이들은 모른다. 나 같이 소위 나쁜 아빠였던 이들에게 이 같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애비로써의 자기 보상적, 자위적 만족일지라도 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 never too late.. better late than never.. 아니.. 설사 너무 늦었더라도 내 앞에 지금 아들이 있다. 오롯이 아빠와 함께하며 말없이 즐거워 하는 내 자식이 있는데 어찌 이리 호들갑스럽게 즐겁지 않을수 있을까..

아들이 혼자 배를 타러 나간 지금, 홀로 캠프 사이트의 모닥불을 지피며 녀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역시 감사함이다. 한때 방황했던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도 곧게 자라준 아들 녀석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자식이지만 동시대의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인간애,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아빠를 친구처럼, 동료처럼 대하며 수많은 은하수와 별들 아래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나누는 아들이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 것이다.

토론토로 돌아가기 위한 수속을 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 보는것이 이번엔 크게 아쉽지 않았다. 아마도 아들과의 이번 캠핑에서 말없이 다져진 부자간의 유대감이 더욱 든든했기에..


사랑하는 아들아 안녕, 내년에 다시 볼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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