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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Toronto Jan 19. 2018

보고싶다 친구야

@태안반도.korea

옛날 옛적 그 보다 먼 태고적, 생명이 존재할 수 없

없었던 지구는 억겁의 세월이 흐르며 이글거리는 지표면에선 거대한 소용돌이 폭풍이 쉴새없이 일며 바위가 날아 다니고,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 화산이 형성되며 용암의 강이 수천 수만년을 흘렀겠다. 형형 색색의 유독 기체로 가득한 대기 에서는 수억, 수천억번의 크고 작은 번개가 번쩍이며 그 거대하고도 순간적인 에너지 다발들이 쉴새 없이 모든 가능한 화학적 조성의 분자들을 만들어 내면서 이윽고 H2O 물이라는 생명의 근원이 되는 화합물이 조성되게 되었겠다. 이 특별한 분자화학적 구성은 서로 합쳐지기를 반복, 습기를 만들고, 물방울을 만들고, 작열하는 태양은 물 분자들을 높은 곳으로 올리면서 높은 곳에서 다시 만난 물 분자들은 뭉치고 뭉쳐 구름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면서 끝도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강들이 생겨나고,  수많은 강들이 낮은 데로 모이고 모여 거대한 바다가 생겨나기 시작했겠다.

끝없는 바다의 어느 언저리에서는 또 다른 억겁의 세월이 흐름에 따라 부드럽게 부숴지고 갈아진 작은 알갱이들의 모래가 쌓이고 쌓여 그 틈새엔 작고도 더 작은 온갖 유기물과 무기물들이 모여 들게 되고 그러던 어느날 또 다시 번개가 수없이 번쩍이며 강력한 에너지의 섬광 칼들은 수없이 부드럽게 질척이는 이 갯벌위에 꽂이게 되면서 원시 생명체는 그렇게 생물화학적 구성의 확률 통계적 필연성 혹은 지극히 강력한 에너지 다발들에 의한 우연적 조성으로 인해 이 갯벌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탄생되고, 좀 더 고등한 원시 생명체들이 뒤를 이어 스믈 스믈 생겨나기 시작했다.

생명의 인큐베이터인 갯벌, 생명의 寶庫 위를 걸어보는 것, 이 신비한 지질적 조성 속에 존재하는 수 많은 작은 생명들 위로 걸으며 치열한 생명체들이 형성하는 소우주의 역사를 짐작해 보며 그 향기를 맏아 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대단한 영광이자 특권인 셈이다.

지구와 그에 딸린 혹성인 달 그리고 중력이 빚어내는 물결은 마치 물고기의 비늘 같다. 생명은 이러한 규칙적 패턴 속에서 창조되고 진화되고 또 소멸되는 사이클을 거치면서 한때 모래 알갱이를 구성했던 어느 탄소는 이제 작은 바닷게의 앞발을 형성하기도 하고, 다음 번 모습으로 인간 발꿈치의 어느 부분이 되기도 한다. 지구를 이루는 모든 기본 원소들이 블록 체인화 된다면 내 몸을 이루는 모든 원소들의  chronology 역시 주르륵 흘러 나올지도 모른다. 내 팔꿈치 어느 부분의 오백대 선조 할배는 강화도 어느 사찰의 은행 나무 였다는..

혀를 살짝 내민 조개와 무언가 대화 중인 작은 게는 거대한 육식 동물인 내가 와서 자신의 몸통 바로 위에서 쏘아 보고 있는 데도 아랑곳 않는다. 이곳의 주인은 나란 말이지.

갈매기 조나단이 힘찬 날개짓을 하는 눈 내리는 이월의 한국, 친구는 날 이곳 태안 반도로 데려 왔었다.

창조주의 모습을 따라 모든 생물 중 가장 아름답게 창조되었다는 인간들이다. 물론 인간들만의 주장이자 믿음이지만, 언젠가 인간들 보다 훨씬 더 고등한 외계 생명체들과 조우한다 하더라도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서, 또 인류라는 인간 구성 집단의 일원으로서의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그 존재들에게 떠벌릴 것이다. 더군다나 가족, 친구, 동료라는 관계로 맺어진 인간들의 집단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도.

또 다른 조나단들이 쉴새 없이 나르는 하늘 아래 친구와 난 이 생명의 보고를 걷고 또 걸었다.

화산 작용으로 굳어진 암석 지대에서는 불쑥 화성 탐사선 큐리오서티가 꿈틀 거리며 굴러 나올것 같았다.

내가 한국의 어느 곳을 여행하고 있음을 일깨워 준 정겨운 고깃배가 겨울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대학시절 물리학 학도로 만난 이후 형제의 우애를 나누며 살아왔던 승훈이다. 이제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가 될 정도로 세월은 덧없이 흘렀지만 벗을 만날땐 언제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승훈을 떠올리며 썼던 글도 그랬다.

...

오래된 이야기지만 LG의 카오스 세탁기는 나름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강한 세탁력과 빨래의 엉김을 줄여 단숨에 마킷 1위 자리에 등극하기도 했다. 세탁기의 주 회전봉 주변에 랜덤하기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세탁기내 물살의 흐름 조건을 제멋대로 바꿔주는 작은 물체를 설치했던 것이다. 혼돈 이론이 가지는 정의 자체는 명쾌하고 단순하다. 이론이 다루는 무한한 복잡도를 가진 시스템에 비하면.. 시스템의 초기 조건이 아주 미미 하게 바뀌기만 해도 그로 인한 시간이 지남에 따른 변화는 엄청나게 커지는 시스템. 랜덤한 노이즈 처럼 보이는 단기간의 데이타들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는 시스템.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레이져 광학이 응용 물리학으로 태동되던 1980대 초에 카오스 이론으로 직접 제작해 만든 레이져를 이용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는데 지금 한국의 아리랑 위성의 눈인 광학탑재체를 책임지고 있는 이승훈 박사가 되겠다. 그때 했던 말들이,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런 이야기 였던 것 같다.

.. 젠장.. 이거 패턴이 보여야 하는 데 잡아내기가 쉽지 않네.

.. 카이오스가 그 자체로 무질서 한건데, 거기서 질서를 찾아 낸다고? 재밌겠군!

.. 응, 이게 무질서한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이 형성되고 그 위상(phase) 일치하는 파동들이 동시에 맞아 떨어지면서 Laser 란 강력한 빛을 만들어 내게 되는 거지.


내 벗은 자연의 혼돈 현상을 이용해 새로운 레이져를 만들어 냈고, 난 기존의 상업 레이져들을 이용해 비파괴 검사를 위한 연구를 했었었다. 난 그 보잘것 없는 석사논문으로 내 짧은 academic career를 마감했지만 이 박사는 계속 그 혼돈의 세계에서 치고 받고 싸우기를 거듭 기어코 혼돈을 길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 날 위해 금요일 휴가까지 내며 2박 3일 동안 모든 것을 care 해준 이승훈 박사였다. 날 잘 재우고 잘 먹이기 위해 불편을 기꺼히 감수하신 수민 어머님 은기씨, 어느날 갑자기 먼 나라에서 불쑥 나타난 아저씨를 반기며 편하게 대해준 사랑스럽고 의젓한 연지와 수민, 함께 보낸 시간들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고 즐거웠습니다.

내가 이렇게 친구를 오랫만에 보기 전 캐나다에 살던 우리 가족들은 이미 승훈의 연구소를 방문해 신세를 진적도 있었다. 오래전이지만 아래는 당시에 썼던 글.

代를 이어가며 가족 간의 친교를 쌓아가는 것은 참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항공우주연구소 이승훈 박사. 아리랑 위성의 광학체계 책임자인 이 박사는 프로젝트 막바지의 바쁜 일정을 쪼개면서 까지 내 아이들의 항우연 견학을 도왔다. 이 박사가 한사코 아이들을 대전의 자택에 머물게 하면서 한국의 여러 곳을 구경시키라 했지만,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뭐가 그리 바쁜지, 한나절 정도 대전에 다녀 왔다.

 이 박사 아저씨의 연구소 견학을 통해 올 가을 공대에 들어가는 딸 아이가 은근히 우주항공 분야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고, 아빠가 왕년에 몸 담았던 KAIST 연구소를 돌아 보며 아이들이 아빠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느껴 보게 해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의 식구들과 이렇게 서로 마주보며 즐겁게 식사를 하게 하는 일이었다.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이 박사랑 아빠랑 학교 다닐 적 이야기도 좀 나왔을 거고, 미국에서 대학 공부하는 이 박사의 장남 경민이가 토론토 우리집에 다녀 갔던 이야기, 아이들 자라나며 공부하는 이야기, 대전과 토론토에서의 삶 같은 소소하고도 즐거운 이야기들로 넘쳤을거다. 나도 저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 승훈아, 혹 그 이야기 내 아이들에게 해 주지 않았니? 대학원 시절 친구들과 여럿이 지리산 등반을 가서는 내가 무자게 맛있는 요리를 해 주겠다며 한참을 끓여서 내 놓은 것이 고작 푹 잘 삶아진 통 양파와 홍당무 한 접시, 아마 토마토 케쳡도 잔뜩 뿌렸을 것이네. ㅎ 자네가 지난번 이메일을 통해 되살려 준 그때의 기억을 곰곰히 되살여 봤더니, 그건 당시 내 어머님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내가 아버님 진지를 가끔 해 드리기 위해 집에서 햄버거 스테이크를 위한 소고기 패티를 잔뜩 다져서 냉동실에 재여 놓곤 했는데 그때 곁들려 지던 야채들이 삶은 양파와 감자 그리고 홍당무 였었지. 그런데 등산을 가서도 햄버거 없는 삶은 야채만 내 놓은 것이었더라는.. 거의 괴담 수준의 이야기인데 우리 승훈이 혼자만 맛있다고 먹어 주었었지. 다른 친구들은 호랑이가 여물 씹는듯한 표정들 이었구. 자네의 후덕함 정말 고마웠네. ㅋ


지난번 통화한 데로 이번 여름엔  내가 사는 여기서 꼭 보도록 하자꾸나.  보고 싶다 친구야.


By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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