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간의 오래된 나무 향기가 주는 느낌이 좋다.공간이 가지는 향기에 대한 추억은 아주 어렸을 적에 시작되었다.외할아버지의 기와 저택에 부속되어 있던 광, 즉 농기구 및 각종 도구들을 모아 두는 헛간이 있었고그곳을 열고 들어설 때면 언제나 두터우면서도 부드러운 독특한 향기가 있었다.텃밭을 가꾸는 도구들인 곡괭이, 호미, 삽, 소쿠리, 멍석 등등소위 organic 한 자연 소재들로 이루어진 정겨운 물건들이 가득하던 곳이었다.플라스틱이라는 개념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당시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나이였지만뜨거운 여름날 그 곳의 향기가 왜 그리 포근했는지 모른다. 이후 수십년간 간혹 떠오르는 지난 어린 날의 기억 중, 그 향기에 대한 기억은 항상 또렷이 남아 있었다. 그 후, 다시 그 향기를 찾게 되면서 그 근원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게 되는데..휴렛팩커드 시절 런던의 윈저 성 부근에서 회의가 있었고, 전 세계에서 날아든 우리 팀 멤버들은 일주일 내내 히쓰로(Heathrow) 공항 근처에 위치한 한 호텔의 부속된 세미나 하우스를 통채로 빌려 워크샵를 했었다.하루종일 연속으로 진행되는 회의는 2층에서, 식사는 아래 층에서 하게 되었었다.그 건물은 수백년이 넘은 문화재 급 저택이었는데대궐 문 만한 커다란 입구 문엔 엄청난 크기의 쇠고리도 달려 있었고이층을 오르는 나무 계단을 한 걸음씩 옮길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었다. 루마니아 트랜실바니아의 드랴큘라 성이 떠 오를 정도로 오래되었지만고품격의 빈티지 분위기를 마구 풍기던 그 곳.바로 그 저택의 2층 거실에 들어섰을때 그 향기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어찌나 신기하던지..어떻게 외할아버지댁 광에서 맡던 향기를 런던의 고택에서 다시 맡을 수 있었을까,신기한 느낌과 호기심이 잔뜩 일었지만 바쁜 나머지 또 몇년이 흐르게 되고..그리고 한참 후서울에 있을때 간혹 나가던 궁궐 나들이 에서 어느 殿 이었는지 마루에 걸터 앉았고마침 창호지가 뚫어져 있어서 그 안 쪽을 들여다 보는데,아.. 그 향기..결국 그 향기는 오래된 소나무 나 전나무 등에서 나는 향기였다.향기의 근원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젠 자주 그 향기를 대한다.아주 오래된 목조 건물 내부에서는 언제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오백년 굴곡진 이씨 조선의 역사에서나,고작 두어세대 걸친 내 개인의 역사에서나,심지어 동서양의 시공간의 차이에서나그 향기는 똑 같았다.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어느 시대에서 살아왔건우리가 짐작하기 힘든 거대한 스케일의 자연의 향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