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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09. 2016

아날로그 시티 & 아날로그적 삶

@pondicherry.india

버건디 포도주 빛으로 잔잔하게 물들어가던 폰디체리에서의 밤. 지난 반 세기도 넘는 오랜 동안을 마치 세월의 흐름이 잊혀진듯 제 자리에 놓여 있었던 시간의 잔여물 들. 하지만 오늘도 제 기능을 오롯이 다 하고 나서는 그렇게 서 있었다. 
.. 오늘이 언제죠?
.. 1945년 인데요.. ??
.. '아..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 이구나..'
시간 여행자인 내가 마침 그곳을 지나는 행인과 이런 대화가 오감직한 곳이었다.

많이 반가웠다.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한 느낌. 영화를 통해서나 가끔씩 볼 수 있었던 식민지 풍의 매우 고풍스런 디자인의 택시들. 침을 잘 발라 우표를 붙이곤 두근 거리는 마음과 함께 편지를 밀어넣던 우체통. 이 모든 느낌들이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런 추억의 따스한 잔해들이 이곳에서는 아직 당연한 듯, 제 있을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원했던 건 초고속 인터넷도, 가족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들여다 보는 스마트폰도, 차고 넘치는 공산품과 농산물도, 하늘 높을 모르고 치솟는 마천루 빌딩들도, 지구상 어느 도시도 반나절 이면 닿을 수 있는 초고속 대형 점보기도 아니었을 지 모른다.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이념도 사상도, 테크놀로지도 과학도 생산성도, 거대 자본도 아니었을 지 모른다. 더군다나 인간의 모든 일들을 먹어 치울수 있는 수퍼인공지능은 더우기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른채 계속 달린다.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 라는 호랑이 등에 난짝 엎드린 채 두려운 눈으로 좌우를 돌아보며 그저 떨어지지 않으려 계속해서 내 달릴 뿐이다.

오렌지 색 가로등을 뒤로하며 기분 좋은 열대야의 따스함에 오히려 고마워 하며 천천히 걷고 있을 즈음, 전혀 다른 느낌의 색의 출현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곳 뽕뒤쉐리에서 스페인 풍의 아름다운 facade 를 가진 성당이었다. 아름다운 사리를 곱게 차려입은 신자들이 막 미사를 끝내고 행복한 표정으로 성당을 나서고 있었다.


have a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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