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건디 포도주 빛으로 잔잔하게 물들어가던 폰디체리에서의 밤.지난 반 세기도 넘는 오랜 동안을 마치 세월의 흐름이 잊혀진듯 제 자리에 놓여 있었던 시간의 잔여물 들.하지만 오늘도 제 기능을 오롯이 다 하고 나서는 그렇게 서 있었다. .. 오늘이 언제죠? .. 1945년 인데요.. ?? .. '아..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 이구나..' 시간 여행자인 내가 마침 그곳을 지나는 행인과 이런 대화가 오감직한 곳이었다.
많이 반가웠다.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간 듯 한 느낌.영화를 통해서나 가끔씩 볼 수 있었던 식민지 풍의 매우 고풍스런 디자인의 택시들.침을 잘 발라 우표를 붙이곤 두근 거리는 마음과 함께 편지를 밀어넣던 우체통. 이 모든 느낌들이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런 추억의 따스한 잔해들이 이곳에서는 아직 당연한 듯, 제 있을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다.우리가 원했던 건초고속 인터넷도, 가족 모두가 하나씩 가지고 들여다 보는 스마트폰도, 차고 넘치는 공산품과 농산물도, 하늘 높을 모르고 치솟는 마천루 빌딩들도,지구상 어느 도시도 반나절 이면 닿을 수 있는 초고속 대형 점보기도 아니었을 지 모른다. 우리가 진정 원했던 것은 이념도 사상도, 테크놀로지도 과학도 생산성도, 거대 자본도 아니었을 지 모른다.더군다나 인간의 모든 일들을 먹어 치울수 있는 수퍼인공지능은 더우기 아니었을 거다.하지만 우린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른채 계속 달린다.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 라는 호랑이 등에 난짝 엎드린 채두려운 눈으로 좌우를 돌아보며 그저 떨어지지 않으려 계속해서 내 달릴 뿐이다.
오렌지 색 가로등을 뒤로하며 기분 좋은 열대야의 따스함에 오히려 고마워 하며 천천히 걷고 있을 즈음,전혀 다른 느낌의 색의 출현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이곳 뽕뒤쉐리에서 스페인 풍의 아름다운 facade 를 가진 성당이었다.아름다운 사리를 곱게 차려입은 신자들이 막 미사를 끝내고 행복한 표정으로 성당을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