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장 여행하고 싶은 나라
2012년 겨울, 난 시즌 2 서울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지만 사실 내가 찾은 것은 제2의 모습으로서의 나 자신을 찾게 된 거다.
동생이 마중 나온 공항에서 여의도를 거쳐 들어오는 길에서는 일말의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했다.
오랜 세월 마음을 닫고 살아왔던 부모님과의 화해 과정에 대한 어색한 기대와 함께 내 고장 난 치아들이 다섯 주라는 시간 동안 제대로 처치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또한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면 언제나 푸근한 심정, 느긋한 심정으로 귀국길에 오르곤 했던 많은 기억들은 이제 해외교포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새로운 감흥과 새로운 호기심, 새로운 기대감으로 바뀌어가기도 한 것이기도 했다.
동생네 집에서 바라본 중앙박물관의 소나무 정원에 눈이 내린 모습은 내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동생과 함께 한 한국에서의 첫 식사로 하남의 마방집을 택한 것은 아주 즐거운 선택이었다. 건강함과 깊은 맛이 가득한 이러한 전통적 한식단을 대하는 기쁨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말들을 부려 짐을 나르는 일을 했다는 뜻의 馬房이라는 명칭이 가지는 질박한 예스러움 또한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驛. 그 물리적 다이내믹스가 좋고 많은 것이 교차되는 사람들의 氣運 들이 좋았다.
터미널로 진입하거나 빠져나가는 전동차들의 모습은 왠지 정형화된 감상에 빠지게 한다. 정거장이 가지는 아련함을 우리 젊은 세대는 전혀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더 애틋해지기도 했다.
봄 방학을 맞은 아이들은 씩씩한 걸음으로 새로운 박물관을 활보한다. 훌륭하고 의미 깊게 지어진 공공시설과 공익 시설은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키워줄 것이다.
당시의 신분 계급상 주로 업신여김을 당해 왔던 우리 예인들의 솜씨는 정말 대단하다. 그들의 위트 넘치는 작품을 보자면 그 넉넉함과 해학적임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남산의 프로파일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의 점령군들이 주둔해 있었고 이제 대한민국의 중앙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터의 기운이 심히 역사적이다.
미군 기지였던 용산에 새로 들어선 국립중앙박물관은 웅장함과 개방성, 관리 요원들의 친절함과 세련됨 그리고 전시공간의 넉넉함등이 마음에 들었는데 정작 전시물들의 양이 질에 비해 너무 빈약한 것에 매우 놀랐다. 서울에 있었던 다섯 주 동안 세 번을 방문했으나 달라진 전시 내용은 없었는데,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을 그 수많은 보물들을 보다 자주 관람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부모님들과는 비로소 여느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원래의 모습과 情을 찾아가는 듯했다.
인사동 관훈 갤러리 카페에서 바라본 바깥. 이곳 캐나다에도 글자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아트 장르를 열어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서울의 곳곳에서 좋은 글자체들, 뛰어나 미적 감각의 폰트 셑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관훈 갤러리. 이제 미술시장은 옥션의 부흥 때문에 Offline 갤러리들은 매우 고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왕년의 전시장이었던 곳이 어쩔 수 없이 아담한 카페로 변했다.
세계 최강의 광-디지털 인프라 상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자본 집단과 기술집단들은 그에 부응하거나 편승하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시키며 모든 새로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의 글로벌한 각축장이 되어오고 있는 한국은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소비 진작을 위한 모든 채널을 가동하는 비즈니스 모델들이 기존의 형식을 갈아치우거나 황폐화시키며 새로운 비즈니스의 세계를 열어가는 것, 그리고 그곳들이 거대한 자본 논리로 가득 차가고 있다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통해 교훈을 살피고 되새김 해 봄 없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Volume과 Profit을 쫓아 사방으로 마구 달리는 형국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오랫동안 누려온 아날로그 사업자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아우성인 측면도 많지만 아날로그 형태의 기존의 공간과 사업 방식이 빠른 속도로 그 설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은 우울한 생각에 빠지게 했다.
오랜만에 관훈갤러리 관장과 따뜻한 차를 나눴다.
북촌 한옥마을이라는 곳을 처음 올라가 봤다. 이곳에 모여 있는 얼마 안 되는 거의 모든 한옥에 차가운 푸른색의 일련번호가 붙어있었는데, 운치 있는 아름다운 대문마다 붙어있는 유료 관람료 안내 판은 정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날 오전 치과에서 매우 난공사 끝에 발치를 한 날이었고, 서울이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것이었지만 따사로운 햇살만 믿고 마구 돌아다녔다. 사실 절대 기온으로 보면 캐나다에 비해 결코 추운 것이 아닌데도 바깥에서 돌아다녀야 하는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체감 온도가 크게 낮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인사동의 단골 전시장들에선 여전히 새로운 영감의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가나 아트 센터에서 기획하는 산뜻한 도시풍 작품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대하기가 좋았다.
동생과 조카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인데 목동에 있는 나폴레옹 제과다. 아주 오래전 나폴레옹 제과는 길음동에 있었고 당시로서는 빵집의 인테리어나 케이크의 모양 등이 너무 고급스러웠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맛있고 아름다운 빵들을 만들어 낸다.
한강 다리 위에 지어진 조망용 카페. 스타 트렉에 등장할 만한 우주선 데크 모양이다. ㅎ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좋아하는 국민 간식 떡볶이, 어묵, 그리고 튀김. 놀랍게도 이제는 기업화되기도 하고 브랜드화하기도 하여 과거와는 달리 매우 정돈된 모습으로 우리 주변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자잘한 간식거리 비즈니스 조차 소위 대기업화 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기도 했다.
베르트랑은 어디를 가도 헬기가 준비되어 있는 행운아였지만 지금은 더욱 고성능이고 저비용인 드론으로 인해 그 독보적 위치를 내줄 판이다,
이번 방문에서 놀라웠던 것은 서울의 대기가 너무 맑아졌다는 거다. 몇몇 친구들한테 이런 말을 했는데, 계속 살아오던 탓인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다 했다. 원인을 알아본 결과 서울 시내의 모든 버스가 무공해 천연가스로 교체되고 나서 이뤄진 것이었다. 시내 중심지를 계속 돌아다녀도 목이 칼칼한 증상도 없고 코안에 매연 검댕이 끼는 현상도 없었고 무엇보다 먼 곳의 불빛들이 가까운 데나 마찬가지로 아주 밝게 반짝인다는 것이었다. 불과 3년도 안 되는 사이에 지난번 2009년 방문 때 하고는 확연히 달라진 서울의 모습에 난 정말 놀랍고 기뻤다.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고, 인구 천만의 초거대 도시 서울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해 보지 뭐.. 하는 시민들,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기만 한다면 바로 해낼 수 있는 화끈한 국민성인 거다. ㅎ
남산과 같은 다정스럽고 소박하지만, 완벽한 산이 도심에 자리한 가진 수도가 얼마나 또 있을까.
우리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인, 산너머 산이 이어지는 모습이 남산 뒤로 펼쳐지고 있기까지 하다.
내가 느낀 시즌 2 서울의 확연히 달라진 점은 제대로 된 디자인적 요소들이 많이 일상화되어간다는 것이다. 보는 것 위주의 서울, 시민들을 위한 도시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도시, 전시행정의 결과 등의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서울 곳곳의 미적 감각이 살아나고 있음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기온이 많이 떨어진 겨울밤. 동생과 나온 저녁 산책길의 한강 주변 역시 대단했다.
고수부지 산책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에서도 디자인이 살아나고 있었는데 기본적 기능과 성능으로 승부를 걸던 시대는 이미 다 지나간 거다. 가로등이 주변을 밝히는 기능만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시절은 이제 다 지나간 것 같다. 예술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다목적 가로등과 벤치는 이제 서울 곳곳에 만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문화적 일상을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대학 동창 친구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대단한 도시다.
내게 서울의 야경을 선사하겠다면서 우리의 고마운 대학 동창들은 남산에서 모임을 가지고 이렇게 남산 전망대 위에 섰다.
아름다움과 편의성으로 가득했던 우리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은 편의성과 효율성을 훌쩍 뛰어넘어 바람직한 도시문화를 열어가고 있었다.
치과 치료전 두어시간이 남아 마침 도중에 위치한 리움 미술관에 왔다.
미니멀리즘이 느껴질 정도로 쿨한 품격이 느껴지게 지어진 건물과 함께 교과서에 봐오던 한국의 보물들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전시물들, 그리고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 조형물.. Maman.. 몇해전 캐나다 오타와에 위치한 현대 미술관에 접했던 그 강한 인상보다는 작품의 이름처럼 '엄마', '모성'이 떠오르도록 새끼 거미와 함께 하고 있음도 좋았는데.
마스크를 쓰고 겨울 점퍼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장갑낀 손엔 무전기를 든 우스꽝스럽고 어설프다 싶은 보안 인력들과 곳곳에 보이는 과시형 보안 장치들, 무안할 정도로 친절과는 거리가 먼 사무적이고 무덤덤한 미술관 직원들, 사회공헌이라는 기치보다는 나름 운영비라도 뽑아 내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듯한 입장료, 과거 독재권력시대가 생각나게 하는 요소들이 이 미술관의 품격을 마구 깍아내렸다. 설마 이 미술관을 삼성의 어느 조직 단위처럼 Profit Center 로 운영하려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음이 아주 씁쓸했다. 국보급 보물들을 보유한 한국 최고 귀족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다기 보다는 내가 가진 이 값비싼 것들을 대중에게 최소한으로 노출은 시키되 보여 주는 것만도 고마운 줄 알라 라는 내방객에 대한 노골적 경시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어째서 삼성의 사회 환원적 프로그램이 이 정도로 운영되고 있을까.
그리 유쾌하지 않은 심정으로 미술관을 빠져 나올때 한 아름다운 '엄마'는 아가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인류의 희망은 여전히 우리 소박한 개인 개인에 스며있는 모정(母情).. 모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 작은 울타리를 최선을 다해 지키려는 아버지들의 부성일 것이다. 이익 추구를 지고지선의 목표로 하는 초거대 기술자본집단들의 score sheet 상에 희망이란 단어는 없다.
지하철의 새로운 역사마다 참신함과 유쾌함이 넘쳤다.
무인으로 운행되는 신분당선의 터널은 빛과 속도가 벌이는 향연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열차의 속도에 따라 펼쳐지는 광(光)-기하학적 광경들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마치 캘리포니아의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어느 테마 구간을 지나듯 우리의 열차는 환상적인 속도로 빛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세계의 여느 도시들에 비해 우리의 열차 시스템은 광궤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넓은 우리의 객차는 실내가 더욱 쾌적하게 느껴졌다.
유소라 作. 혼자가 된 날.
동창들과의 모임전에 시내를 돌아보다 깨끗한 작품이 마음에 들어 지금 그 앞에 앉아 있다. 아직 남은 한시간여는 내가 이곳 신세계가 제공하는 free-of-charge wifi의 잔여 시간과 맞아 떨어진다.
서울은 편리하고 이쁜 구석들이 곳곳에 너무 많아.. thanks a lot.. :p
남산에서 내려오며 이 작은 소나무가 바라 보이는 편의점 앞 파라솔 간이 의자에 앉아 난 막걸리 한병을 다 비웠다. 취기가 전혀 오르지 않을 만큼 그 맛이 상쾌하고 깨끗했다.
명동거리 이곳 저곳을 아주 천천히 걸으며 너무 즐거워했다. 다시 포근해진 서울의 날씨가 얼마나 고마운지 명동의 밤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 모두 다 싱그러웠다.
놀라운 사실은 어깨를 부딪힐 정도로 빼곡히 이 넓은 명동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서 놀러온 관광객들이라는 사실이다. 앞뒤 옆에서 들리는 말들은 모두가 외국어 들이었는데 놀라웠던 것은 이들 거의 대부분이 낯선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으로서의 행동을 취하기 보다는 마치 자신들의 나라에서 익히 잘아는 거리를 쏘다니는 듯 자신감 있고 편안한 말씨와 발걸음으로 명동의 이곳 저곳을 돌아보고 있었다.
서울은 역시 식도락의 천국이었다. 도데체 얼마나 많은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서울을 찾는 이들에게 제공 되는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이번 여행에선 동생과 서울과 한국의 여러 군데를 동행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다.
이제 언제 또 이렇게 사랑하는 동생과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까.
내가 호들갑을 떨며 동생을 데리고 간 명동의 콩나물 국밥 집. 오..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동생과 함께한 이 깨끗하고 정성 가득한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이 서울의 좋은 이미지를 더욱 좋게 하리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을 여행하면서 어디서든 접하게 되는 길거리 음식들은 정말 반가웠다.
이제 내게 주어지는 즐거움과 행복감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움에 대한 긴장 어린 희망에서 보다는 과거로의 여행을 통한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재발견과 재해석, 그리고 재정의 되는 것들에서 비롯될 것이다. 게임을 이기진 못했지만 왜 졌는지를 따져보면서 복기 그 자체의 오묘한 즐거움에 빠졌달까.. I loved it actually!!
돌만큼 딱딱하게 굳은 북어를 빨래 방망이로 두드려 펴면 그 황금색 속살이 금세 드러나곤 했고 북북 뜯어내서 살짝 구워 고추장에 찍어 먹던 맛은 어떤 간식이나 안주도 따라올 수가 없을 정도의 독보적 식감과 맛이었다.이러한 이미지들을 대할라 치면 카메라를 든 내 팔은 저절로 들어 올려지고 내 눈은 뷰파인더 속을 헤매곤 한다. 얼마나 다정스러운지.. 명태 안주와 한잔 할 때면, 언제나 가곡 '명태'를 불러 제치곤 했던 대학 선배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만든 이들의 솜씨와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각종 반찬들은 그 다양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도 했다. 우린 참 치열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살아왔다.
오랜만에 찾은 강남역 사거리의 다이내믹스 역시 여전했다. 거대하면서도 쿨하게 지어진 대기업의 사옥 군이 인상적이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진정 큰 기업이기를 바라 보지만, 따뜻한 자본주의를 떠올리기엔 저곳엔 금속성의 차가움과 물셀틈 없음만 가득해 보였다.
대전 항공우주연구원에 근무하는 절친 이승훈 박사와 함께 즐거운 2박 3일을 보내고 상경하는 날, 승훈은 굳이 기차표까지 끊어 내게 쥐어 주었고, 연구단지 게스트 하우스로 새벽에 날 데리러 와 대전역까지 바래다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친구와 나누는 이런 아날로그적 감성의 우정은 우리 옛날 세대가 아니면 잘 모를 거다. 얼마나 속 깊은 따뜻함이 함께 하는 건지.. ㅎ
KTX는 싱겁게도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대전에서 서울로 내달렸다. 한강대교를 지날 때 여의도의 모습은 언제나 봐도 아련했다. 서슬 파랬던 젊은 시절 10여 년을 넘게 살아온 여의도에서의 삶이 깊었으니..
거대 도시 한복판에 이런 '옛날"이 버티고 있음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울의 자존심이다.
2012년도의 내 모습은 앞으로는 다시 못 보겠지. 더욱 젊어질 테다!! ㅋ
홍콩의 팀사 쵸이를 떠올리게 하는 남대문 시장 뒤편의 정겨운 모습도 좋았다.
서울 방문 중 동생의 차 안에서 살짝 바라본 경복궁. 광화문 대로에서 우회전을 하자마자 삼청동으로 오르는 경복궁 옆길로 다시 좌회전을 하는 짧은 시간 동안에 바라본 근정전 주변이었지만 아름답고 서사적인 궁궐의 모습은 고스란히 그 존재감과 역사 감을 들어내고 있었다.
학교와 집이 세상의 전부였던 초등학교(aka 국민학교) 시절,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의 수학여행 나들이는 주로 경복궁이었다. 서울의 북쪽 끄트머리 미아리에서 다운타운 중심의 이곳 경복궁까지는 얼마나 멀고 먼 신나는 장정이었던지.. ㅎ
궁궐로 출근했던 고관대작이나 관련 신하들을 제외하고 경복궁이 창궐된 이후의 민초들은 이조 시대의 흥망성쇠를 이렇게 오늘의 나처럼 밖에서만 바라보며 스쳤을 것인데, 신비롭기까지 한 유려한 곡선미의 기와지붕과 보일 듯 말 듯 적당한 높이의 담장 너머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그 모든 정쟁적, 당파적 사건 사고들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것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나 알려지곤 했을 것이다.
궁궐의 건축미학적 완성도에 비해 죽고 죽임을 거듭하며 수백 년을 거쳐 내려온 조선 왕조사는 그리 아름다울 것이 없었을 테니 밖에서 바라보는 궁궐의 모습은 만감이 교차되는 것이었겠다.
이 유려한 건축물은 한국의 건축가 조병수가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 박혀있는 나무를 형상화하여 지었다 한다.건물 모양의 다양함은 가까이 다가가 볼 수록 더 했는데, 거대한 규모임에도 주변을 압도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움과 친근함으로 같이 하는 고목의 느낌이 났다.
통인가게 갤러리에서의 Super Big Green Apple.. :p
엄동설한의 서울 종로의 한 복판. 삭풍이 몰아치는 그 인사동 골목에서 진지함을 넘어 심각하게 연필을 고르는 커플이 있었다. 몸을 굽혀 다양한 연필을 집어보고 다시 내려놓는 동작은 내가 그들을 발견한 10여 미터 전쯤부터 그들 바로 앞을 지나가는 동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이들 외국인 커플의 행동이 그 이쁜 연필들 보다 더 어여뻐 보였다. 이러한 선물 고르기, 즉 그들이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고르고 고르는 집었다 놓았다의 과정 속에서 이 연필을 선물로 받을 이들의 면면과 성격, 그 관계의 유쾌함이 떠 오를 것이고, 선물을 받으며 즐거워할 모습도 떠오를 것이다. 난 도대체 왜 이러한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매번 공항 면세점에서 충동적으로 집어 들거나, 시간이 없을 경우 그저 기내 잡지에서 열거된 선물들을 고르기에 급급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사실 난 선물의 대상, 가족 구성원들이나 회사의 동료나 친구들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 지극히 전형적 의미의 물건들을 좋은 선물이라고 집어 들었을 뿐이었던 거다. 난 내가 생각하기에 저리 사소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엄동설한에 장갑을 벗고, 바람을 맞아가며 한참 동안이나 고르고 골라 전달될 그 작지만 큰 선물에 대한 가치를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왔던 거다. 아마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왔던 것 결과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서울의 내 작업실이었던 살롱-드-팩토리의 새 식구 냥이는 따스한 곳을 좋아한다. 뜨거운 노트북 키보드 위의 고양이.
출국 전 마지막 만남을 기념하며 아키 김우성 사장의 식사 초대가 있었다. 아름답고 건강한 만찬이었으며, 비즈니스 관련 신나는 꿈의 대화도 이어졌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면서 패션디자인 및 리빙 컨설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dining R의 오너인 R양의 탁월함은 그녀가 준비한 식단과 차, 그리고 그윽하면서도 쿨 한 이 공간에서 그 면모가 여실히 나타났다. 그녀의 모토는 the simpler, the better. 내가 살아왔던 모습과는 반대로.. 난 단순한 것을을 복잡하게 만드는데 희열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말이다. ㅎ
출국 하루 전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다시 들어선 홍대 앞. 수많은 젊은이들이 파도처럼 오가는 곳에서 아무도 없는 너른 잔디 정원의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라도 앉아 있는 듯 편안한 자세로 talk에 열중인 청춘이 있었다. 젊음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설렌다. 우리 모두가 역시 이러한 아름다운 인생의 계절을 지나왔기에..
Bye for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