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서울 -1

그 모든 재회 2019

by Peter Shin Toronto

내가 사는 Saskatchewan 작은 타운에서 리자이나(Regina) 국제공항까지는 3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토요일 아침 6시 밴쿠버(Vancouver)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난 금요일 밤 10시 40분에 출발해 새벽 2시경에 공항에 도착했다. 멍한 상태였지만 한국 방문에 대한 흥분된 마음이 새벽같이 조용히 차오르면서 정신이 맑아오고 있었다.

텅 빈 공항에서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RCMP) 복장을 한 무스(Moose) 인형과 셀카 놀이도 하고, 서울서 만날 보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카톡 전화도 하고.

공항 한편엔 경비행기 서비스 비지니스를 선전하는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모형 만들기에 관심이 많았던 난 아직도 모형 비행기들을 보면 즐겁다.

내차는 공항의 longterm parking lot에서 열흘간 푹 쉴 것이다. 잘 자고 있거라 녀석아. 겨울이 아니라 다행이다. 이곳의 겨울은 영하 40도는 쉽게 내려가고 북극에서 블리져드가 몰아치면 체감기온 영하 50도까지 내려가는 곳이다. 꽁꽁 언 차를 녹이려면 한 시간 정도는 족히 걸려야 할 것이다.

소박하지만 깨끗한 Regina 공항은 이제 내 집처럼 친근하고 익숙하다.

대평원의 태양이 어김없이 떠오르려 하는 가운데 난 장도에 올랐다. 여름의 한국은 10년 만이다. 2009년 칠월에 서울을 방문했었고, 3년 뒤인 2012년 겨울에 잠시 방문했을 뿐이었다. 그리곤 캐나다에서의 정들었던 내 고향 도시였던 토론토를 떠나 새로운 주에서 새롭게 시작한 비즈니스는 지금껏 날 캐나다 내에서만 머물게 했다. 캐나다에서 다른 주로 이주한다는 것은 거의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무방하다. 도전적이었던 새로운 비즈니스는 내게 경쟁의 즐거움과 사업 확장의 짜릿함을 선사했지만 사업장을 떠날 정도의 여유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던 거다.

얼마나 변했을까. 아버님은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고 계실까.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은 역시 잘 해내고 있을 거야. 격변하는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 속에서 내 동료들과 친구들은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을까. 온갖 우려와 기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밴쿠버까지의 두 시간이 넘는 비행은 꿈결처럼 이어졌다.

내가 캐나다 대륙의 정 중앙에 살고 있음을 다시 실감한다. 내가 사는 곳에는 한국 출신은 나 밖에 없다. ㅎ

이제 내 나라가 되어버린 캐나다의 산하를 바라보는 것은 원래의 조국인 한국의 금수강산을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이 있었다. 나를 환영해 준 제2의 조국, 전혀 새로운 내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정착하게 해 준 새로운 조국의 아름다운 강토를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저 여행의 대상으로 대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벅찬 감흥이 함께 했다.

캐나디안 록키는 언제나 환상적이다. 저곳들 중 그래도 난 아들과 함께 한두 봉우리는 등반했었다.

캐나디안 록키를 지나며 섬들이 보이면서 기장의 하강 멘트가 나왔다.


그리곤 오랜 시간 태평양을 건넸다..

한국 finally.

인천공항에 도착한 나는 완전한 외국인이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한국 사람 외모의 수염을 기른 외국인에 다름 아니었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란 프로그램을 유심히 봐온 난 그 출연진 외국인들이 했던 절차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난 캐나다 자택에서, 인천 공항에서 서울 본가까지의 공항버스 번호를 알아봤고 날 픽업하러 나오겠다는 절친 조박사의 친절을 정중히 사양했었다. 여행자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입국장을 빠져나오며 내 모바일폰의 심카드를 교체하며 10일 동안 wifi data service가 무제한으로 가능하게 했으며, 공항 밖으로 나와 좌충우돌 헤맨 끝에 공항버스 티켓을 자동판매기에서 뽑아내기도 했다. 공항 밖이 너무 무더워 내가 베트남의 호찌민시티(사이공) 공항에 잘못 내렸나 했다. 폰 충전을 위해 공항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전원 플러그가 220V라 어댑터를 구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6009번 공항버스의 젊은 기사는 너무 친절하고 유쾌해 감사했다.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끝까지 기억해 날 제대로 내리게 했다.

얼나만인가. 서울의 강변도로를 바라보는 것이..

강변도로 주변의 풍경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연신 고개를 돌려가며 눈에 담아 넣었다. 너무 좋았다.

아내와 내 회사가 있어 오랫동안 살았던 여의도를 지나며 내 추억의 파노라마는 극에 달하고 있었다.

참 많이 변했구나 라는 감탄이 절로 일었다.

이곳이 강변도로의 어디쯤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 정도로 주변의 풍광은 새로워져 있었다.

드디어 부친께서 홀로 살고 계시는 본가에 도착했다.

본가가 위치한 21층에서 보이는 단지 건물들의 모습이 몹시 이국적이었다. 마치 홍콩에 있는 듯.


아버님과의 35년 만에 재회가 이루어졌고 단지 내의 레스토랑에서 부친과 동생 가족, 그리고 마침 한국 회사에서 근무 중이라 서울에 있는 딸아이가 함께한 가족 식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본가에서의 열흘간의 stay가 시작되었다.

이튿날의 아침 산책@5 am

아버님께서 입으라 주신 반바지 차림에 새벽 5시에 난 양재천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캐다로로 오기 전 이곳의 바로 옆 동네인 대치동에서 살았던 난 실로 15년 만에 양재천 산책에 나선 것이었다.

아침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 아무도 없는 새벽길을 난 감사히 걸었다.

한때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었지만 익숙함 만큼의 생소함 역시 함께 했다.

가로수들이 이렇게 멋지게 자라났구나.

양재천 제방길은 훌륭한 숲길로 화해 있었다. 나무들이 얼마나 울창해졌는지.

산책길로 들어서자 아침 일찍 깨어난 부지런한 매미 몇 마리들의 정겨운 울음소리가 날 반갑게 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캐나다에선 매미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마침 펼쳐진 환상적인 아침노을 속의 양재천은 너무나 아름다운 도심하천이었다.

찬란한 아침은 날 벅차오르게 했다.

정해진 시간대에 작동되어 콸콸 쏟아지는 깨끗한 지하수가 양재천을 더욱 생명력 넘치는 개천으로 만들고 있었다.

산책 중 떠올랐던 수많은 생각들은 결국엔 감사한 행복감으로 수렴되어 갔다.

이제 이 아름다운 아침 산책길은 열흘 내내 내가 서울에서의 아침을 여는 방식이 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랬듯이.

곳곳의 울창한 푸르름은 마음을 여유롭게 했다.

한국의 남쪽 지방에서 주로 보곤 했건 배롱나무를 어떻게 이렇게 잘 키우고 있는지 신기했다.

이곳의 단지는 캐나다의 콘도미니엄 단지처럼 꾸며져 편의 시설 및 보안관리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색연필 세트 같은 파스텔 톤의 자전거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깨끗한 로비도 좋았고.

동생을 만나러 드디어 지하철을 타러 나왔다. 도곡 지하철역의 긴 에스컬레이터 역시 너무 오랜만이었다. 토론토나 몬트리올 정도의 도시에나 있는 캐나다 지하철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만큼 복잡하거나 다양하지 않다. 그래서 편리함과 재미가 덜하다.

그사이 지하철 철도망은 더욱 촘촘해졌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서울의 인근 도시들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이렇게 멋진 반찬들이 펼쳐지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 사발은 감동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한국의 맛이었다. 이런 슬로우 푸드의 깊은 맛은 한국인의 정서에 다름 아니다. 텁텁한 진짜 옛날 막걸리도 함께 했다. 아침부터 느긋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단 한 끼의 식사로도 난 많은 것들을 맛볼 수 있었다.

수십 년간 질주를 거듭했던 한국의 경제도 이제 숨을 고르는 형국이다. 현 정세에 대한 분분한 해석에도 한국인들의 명민함은 어떻게든 또 다른 세상을 계속해서 열어 가리라 바라본다. 좀 더 잘 사는 한국 보다는 좀 더 성숙한 한국으로, 좀 더 서로를 배려하는 공동체로 점진해 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하이엔드 럭셔리 차들로 가득한 도로에서 난 그들의 운전 방식과 속도에 질려 버렸다. 난 도저히 서울에서는 운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판 fast & furious는 대로에서는 물론이고 주택가 뒷골목에서조차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Slow down guys please.

동생과 함께한 모닝커피의 맛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흐뭇한 맛이었다. 커피 역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맛이 갈리기도 한다.

잘 정비된 개울에선 피라미들이 줄지어 헤엄치고 있었다. 초고집적 사회가 이루어 내고 있는 매직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Only in Korea!!

그 수많은 빌딩들 속에서 아직도 빌딩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마침 Hyatt에서 운동 중이신 JK 형님과의 약속이 이루어져 난 하야트에서 동생과 헤어져 잠시 경리단길 투어에 나섰다.

서울에선 보기 드문 조릿대가 따가운 여름 햇살 아래 그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이렇게 푸르른 대나무를 서울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라피티 형식의 정돈된 그림들은 내가 역시 한국에 있음을 실감케 했다.

남산을 바라보며 저곳엔 이번 방문동안 당연히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번 여행에선 결국 시간이 나지 않아 이렇게 멀리서 바라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느 이름 모를 바의 패티오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서울의 푸른 하늘과 그 아래 살아가는 모습을 잠시 즐겼다.

참 서울다운 모습이다.

이 깨끗한 바의 뒷마당엔 완벽한 포도 한 송이가 열려 있었다. 서울의 곳곳이 매직 월드다.

토이스토리는 얼마나 재미있고 신났었던가.

하이야트는 여전했지만 JJ Mahoney's는 저녁 6시 오픈이라 아쉽게도 들를 수 없었다. 제이제이 마호니엔 과거 얼마나 자주 들락거렸던지.

hp시절 내 오프로드 머신들을 함께 타며 즐거워했던 형님은 이제 랜드로버를 탄다. 물론 한 번도 오프로드를 나간 적은 없다 하시지만.. ㅎ

JK 형님과, 잠시뒤 합류한 HL, 우리 셋은 오랜만에 서너 병의 맛있는 와인을 비웠다. 원래 우리의 만남은 다음날 저녁이었는데 오늘 오후로 앞당겨지게 된 거였다. 형님은 hp 시절 내 보스셨다. 그리고 한국 hp를 자그마치 15년을 이끈 진기록을 남기신 분이다. 나와는 오래전 상하이에서 반가운 술자리를 가진 이후 거의 15년 만의 만남이었다.

하지만 우린 페북등을 통해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있었기에 마치 옆집에 살고 있었듯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며 재회를 즐겼다. 형님은 특별히 자택의 와인 컬렉션 중 한 병을 가져와 감사히 즐겼다. 보르도 산 와이트 와인은 처음이었는데 아주 좋았다. 와인 애호가인 형님은 자택 지하 저장고에 좋은 와인을 다량 수집하고 계시다고 하시니 다음번 방문에선 필히 습격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HL은 hp에서의 내 hiring manager였고 이후 지금껏 변함없는 우정으로 함께 해오고 있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예배 중 내 전화를 받고 예정하지 않은 상태에게 갑자기 조인하게 되었는데 진중한 강원도 사나이이자 workaholic 인 그는 hp에서의 오랜 활약 후, 오라클을 이끌다 최근에 퇴사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었다.

포르셰들이 뒷골목에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을 만큼 한국은 부자 나라가 되었지만, 정치 사회적 반목과 분열, 그로 인한 사회적 스트레스는 극으로 치닫고 있다 하니 묘했다.


난 부친과의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어 부득이 일어서야 했고 우린 다음을 기약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음식을 감사하고 즐겁게 나누는 과정은 가족 구성원들이 누리는 특권일 것이다. 특히 우리 가족 같은 경우 아이들이 성인으로 자라날 때까지 채 몇 번도 누려본 적이 없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삼대가 함께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다 자란 딸아이가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할아버지 옆에 앉아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함께 하는 모습을 아비로써 바라본다는 건 너무 기쁘고 감사한 것이었다. 난 꽤나 유명하다는 이곳 음식의 맛은 느끼는 둥 마는 둥 가족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꿈같은 현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여느 가족들에게는 언제나 가질 수 있는 일상적 정경이었을 텐데 우리에겐 왜 이리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 하지만 never too l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