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서울

도시는 비에 젖어@seoul.2019

by Peter Shin Toronto

이제껏 어디를 여행하건 꼭 두어 대의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와 고성능 망원 렌즈 두어 개, 그리고 더 무거운 삼각대가 항상 내 백팩에 준비되어 있었었다. 사실 아직도 그 무거운 녀석들과 함께 하고 싶긴 하지만 세월 앞에 엄살을 부리는 편이 순리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제 스마트폰은 거의 모든 내 비즈니스 트랜잭션을 가능하게 하고, 어느 나라에 있건 모든 이들과의 통화를 가능하게 하고, 그 대단한 광학장비들 조차 대신하게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찍은 모든 사진들은 그저 이 tiny little gadget으로 가능했다. 모델은갤 S10e fyi.

서울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오늘은 비가 오리라는 예보가 있었고 아침 산책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그저 조금 맞고 다닐 뿐 우산 펼쳐 든 이들을 보기 힘든 캐나다에서의 습관처럼 난 아침 산책갈에 만난 비가 그저 반가웠다.

새벽 산책은 우리를 찬찬히 돌아보게 한다. 어둠이 밝음으로 화해가는 새벽은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하루를 열게 해 준다. 주로 고뇌와 절망쪽에 더 매력을 느꼈던 많은 철학자들은 희망찬 아침의 산책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던듯 싶다. ㅎ

잠시 산책의 발걸음을 멈추고 생명수에 젖어가는 잎새들의 고요한 환희를 바라본다.

정물이 가지는 다이내믹스는 이러한 부드러운 빗줄기 속에서 잘 들여다 보이기도 한다.

이 수많은 엽록체들은 그들을 제외한 모든 다양한 생명체들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고 있는 것인지.

나무는 도시의 장식물이 아닌 인간들의 동반자다. 솟아오른 빌딩 숲 사이에서 의연히 자라나는 건강한 나무들을 보는건 큰 기쁨이었다.

오늘은 근처 코엑스몰을 둘러보기로 해서 택시에 올랐는데 아직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마 스타벅스 정도만 open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도 비즈니스를 계속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이른 아침에 주로 찾곤 하던 'xx집'이라는 곳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같은 모습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도 거의 없었고 해장국 스타일의 콩나물 국밥이 맹탕이라 너무 놀랐다. 예전의 그 많던 사람들과 깊은 맛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식사를 마치고 다시 코엑스로 돌아왔다. 시차때문에 너무 졸음이 몰려와 코엑스몰의 스타벅스에서 에스프레소 더블 한잔과 카페라테를 마셨더니 졸음이 가셨다.

이곳은 과거에 살던 집 부근이기도 했고, 각종 IT 전시회, 세미나 혹은 심포지엄 주최나 참석을 위해 많이도 들락거렸던 곳이다. 마케팅 이벤트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또한 오래전 hp의 compaq 합병 당시 두 조직의 합병을 드라이브하기 위한 post-merger integration manager 로서도 수없이 드나들던 곳이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 젊은 시절의 열정 어린 기억들이 많이도 스며있는 곳이었다.

비는 도시와 너무 잘 어울리지 않는가..

중력과 어우러진 비는 어떻게 이렇게 거대 도시의 모든 곳곳에 스며들어 전혀 새로운 texture의 esthetic landscapes를 우리에게 선사하는지.. 너무 감사했다.

보행자 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 건너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즐거웠다.

마침 available 했던 조박사와 코엑스에서 만나기로 하고 코엑스 몰 투어에 들어갔는데 이곳 별마당 도서관이 너무 멋져서 줄곳 이곳만 탐사했다. ㅎ

OMG..! 어느 멋진 인간의 기획과 디자인에서 탄생된 공간일까.. 감탄의 연발이었다.

많은 나라의 많은 공간에 들어서며 그 공간만의 색과 숨소리, 그리고 soul을 엿보려 노력해 왔지만, 이토록 재미있고 친근하면서도 장중한 space와 layout은 흔치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구석을 채우고 있는 content는 다름 아닌 종이로 정성스레 만들어져 단단히 제본된 책, 그리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저자의 혼이었다. 아직도 살아남아 아날로그계를 늠름하게 대표하고 있는 그 영생의 간달프.. '책'이지 않는가.

감동이었다.

더구나 책의 판매로만 발생되는 작은 이익만으로만 운영되기에는 이곳은 터무니없이 비싼 공간이었기에 그 감동은 더 컸고 이 공간을 만들어내고 운영해 가는 그 거룩한 주체들에게 큰절이라도 드리고 싶은 감상에 빠져들었다. 공익 혹은 공공 단체일까? 공익단체라면 자금력이 부족할테고 공공단체라면 이런 황홀한 creativity에 근거한 architectural completeness를 구현해 내기 힘들었을텐데..

흥분된 마음을 추스르며 이 사랑스러운 공간의 이곳저곳을 조용히 행복하게 천천히 걸어 다녔다.

진중하기만 한 내 친구 조승균 박사가 날 발견하고선 내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깜찍한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이 공간의 기운이 얼마나 creative 한 것인가를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고마워 조박!! ㅋ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잠깐 읽었는데 번역이 마음에 들었었다. 그럼에도 책이 너무 두껍고 무거워 단지 휴대하기가 부담스러워 구입을 하지 않았다. 다음번 방문때는 백팩을 매고 가서 꼭 사야겠다.

우린 이 멋진 spiderweb subway map에서 탈역과 내릴 역을 선택한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짜잔.. 인사동! 하지만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toward more profit rather than more artistic flavours..

갤러리의 강관장과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동그란 눈을 뜨며 놀라워하는 거의 어머니뻘의 강관장에게 난 그저 surprise! surprise!! 하며 허그를 나눴다. 조박사를 소개하고 내 한국 방문 목적에 대해 잠시 환담을 나누고선 우린 오랜만에 전통미 가득한 푸짐한 점심을 나눴다.

강관장 누님은 60년 가까이 이 고색창연한 관훈 미술관을 비롯, 미술 관련 비즈니스를 이끌며 인사동의 산 증인으로 자리매김 해오고 있다. 요즘은 포르투갈에 푹 빠져 산다는.. 언젠가 석양속에서 포르토 와인을 기울이며 fado를 듣고 있으리란 그림이 그려졌다.

건축가이자 혁신가인 아키 김우성 아우의 오피스를 찾았다.

어느 유명 디자이너의 건물을 통채로 빌려쓰고 있었는데 작은 공간이었지만 발랄한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곳이었달까.

언제나 새로운 추구를 시도해 왔던 아키는 드디어 인생 프로젝트를 찾았다.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서로의 근횡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키와도 마치 엇그제 만나고 다시 보는듯 했다. 아키와는 서로의 다양한 관심사에 관련한 끊없는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이번 방문에서도 역시 아키와 수시로 만나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아키를 만나면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곤 한다. 이번의 화두는 21세기형 비즈니스 모델.

잠깐의 홍대 주변 거닐기가 있었지만 무더위와 시차는 날 거의 녹초로 만들었다.

아버님과의 간단한 저녁식사후 잠시 휴식을 취하고선 아키와 그의 팀원들과의 만남을 위해 다시 집을 나섰다.

청담동의 갓포아키 란곳에서의 회식.

음식이 어찌나 어여쁘게 나오던지. 회 한점 한점의 두께, 온도, 크기, 그리고 색상 조합을 포함한 프리젠테이션이 완벽했다. 이어 나온 은빛 갈치회 역시 멋졌다. 이정도의 일식 맛집이라면 꽤나 성공해야 할텐데 경쟁 횟집들의 실력들 역시 만만치 않아 무한경쟁 중이라는.. 한국의 자영업 제반 분야들이 과포화상태라 다른 나라와 비교해 그 품질과, 서비스, 그리고 깨끗하고 격조 높은 매장 등등 모든 요소들이 월등한데도 불구하고 한국내에서의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 간다 하니, 우리 젊은이들의 피로도는 계속 쌓여만 갈것이란 생각에 우울해졌다.


'아키와 인생 프로젝트 멤버들' 많이 반가웠다. 좋은 사람들, 열심인 사람들, 순수하게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유쾌하고 신난다. 그리고 웃음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