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서역에서 출발하는 SRT라고 명명된 한국의 총알 열차(bullet train)은 역시 빨랐다. 겨우 두시간 반만에 우리가족 모두를 서울에서 부산을 warping 시켰다.예전에 타오던 서울역 발 부산행 KTX보다 빠른듯 했다.
아쉬웠던 점은 기차의 속도가 너무 빨라 열차여행에서 빠질수 없었던 주점부리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는 것. 식당칸도 없었고 찐계란과 사이다, 김밥을 담은 간식거리 카트도 사라졌다.
아버님께서 신문을 다 보실 즈음에 우린 벌써 부산에 도착했던거다.
아버님을 모시고 하는 여행은 도데체 얼마만인가. 거의 40년만이다.
터널구간에서 차창에 비친 내 모습엔 세월이 있었다. 지난번 방문에선 내 머리칼이 이렇게 반백은 아니었다. 다음번 방문에서는 난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내가 한국을 방문할 또 다른 기회가 있기나 할까. 십년의 세월이 몇번 흐르다 보면 우리의 인생은 그저 다하게 된다.
그래서 서글픈가 피터? 아니, 전혀! that's long enough. 난 이미 살만큼 살아오고 있고, 보고 싶은 만큼 봐오고 있고, 느끼고 싶은 만큼 느껴오고 있는걸. whatever to come is extra, or just a blessing for me.
다리를 쭉 펴고 앉아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내겐 10여년 만의 한국 풍경들이니 어떻게 지루할수 있겠는가.
구름사이로 비쳐 내리는 silver lining 조차도 한국만의 운치와 정서가 스며 있는듯 했다.
한국의 산하는 내가 떠나 있을동안 더욱 울창하고, 맑아지고, 푸르러졌다.
내 시절엔 함ㅈㅇ라는 가수가 있었다. 내 젊은시절 난 그의 노래를 알지 못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내 나이 환갑의 다 되어서야 그의 노래가 내 귀에 들어온다. 멋지게 나이든 그의 모습과 예전의 아름다웠던 미소년의 모습이 중첩되면서, 그 사이의 오랜 세월을 그는 그 척박하다는 연예 분야에서 참 최선을 다해 살아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은 관록이 붙었을뿐 여전히 미성인 목소리와 함께 전혀 주눅 들지 않는듯 했다. 멋졌다, 비록 그의 무대가 가요무대로 제한되고 있다 해도.
우주선 캡슐같은 거대한 화장실도 신기했다. 운동기구만 좀 있으면 거의 gym 수준이군. ㅎ
부산의 공기는 달랐다. 기분탓인가? ㅎ
우리 한국 사람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 모든것에 얼마나 정성을 다하는지.
현대식으로 단장된 자갈치 시장의 거대한 빌딩을 보니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신 왕년의 자갈치 시장 골목같은 느낌의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분들의 각종 물고기들과 해산물들을 즐겁게 감상했다. 부산에서의 첫 가족 식사로는 당연히 회와 소주, 그리고 매운탕이 선정되었다.
수족관의 바다 물고기들을 보는건 또 얼마만인가.
해운대의 호텔로 가는 길에 7km가 넘은 길이로 바다위에 놓여진 광안대교를 건널수 있었다.
가히 세계 제일의 토목 건축 대국 답게 이층구조의 다리는 믿음직스럽게 지어져 있었다. 철골 구조의 모양새는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트랜스포머로 변할듯 했다.
캐나다에서 집사람이 예약한 한국의 호텔은 터무니 없이 비쌌다. 하지만 아버님과의 거의 반세기 만의 여행인데 그 정도는 기꺼이 감수할수 있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즐거워 하셔서 너무 좋았다.
여장을 풀고나서 나선 잠시의 해변 산책에선 얼굴과 목이 너무 뜨거워져서 잠시 아라비아인들의 지혜를 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