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떠나기

good to see you all@aug.2019

by Peter Shin Toronto

서울을 떠나기 이틀 전 아침 산책에서 커다란 해오라기 한 마리가 양재천 활주로를 천천히 날아올라 창공으로 사라졌다. 잔영을 남기며 서서히 사라지거나 혹은 느닷없이 사라지거나, 살아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는 결국 종국의 이별이 찾아온다. 그 종말을 맞기까지 우리 인간들은 수많은 종류의 떠남을 통해 성숙해진다. 성숙이 단지 고통과 회한, 무모한 희망, 인내 등에 대한 집합적 수사, 혹은 자위에 불과하더라도 우린 성숙해질 수밖에 없고, 보다 고도화 되어 갈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난 이번의 떠남을 통해 어쩔수없이 또 성숙해진다.

큰 날개를 가진 해오라기의 우아한 비행은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듯했지만, 그저 해맑게 나르는 해오라기가 무슨 미련 따위가 있겠는가.

나팔꽃 모양의 작은 꽃은 언제나 소박하고 깨끗할 것이고

징검다리는 어떤 큰 물이 내려와도 든든히 그곳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고

아름다운 양재천은 그 풍부한 주변 생태계를 살찌우며 언제나 그렇게 흘러가야겠다.

뜨거운 태양과 푸르름으로 가득했던 팔월의 서울을 이제 떠나련다.

열흘간 오갔던 생소했던 로비도 이젠 푸근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홀웨이를 장식하는 누군가의 작품들에도 정이 들고 있었는데.

인사동의 통인가게에 들러 캐나다 친구들에게 줄 소품들을 골랐다. 이젠 home이 되어버린 캐나다로 돌아가면서 한국 방문 기념 선물을 고른다는 느낌에 기분이 묘했다. 당연히 오랜 세월 난 그 반대였다. 집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며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물건들을 집어 들곤 하지 않았던가.

냉정하고 chic하고, 절제된 회색 건축 구조물로 가득한 곳에도 푸르름이 자라나게 한 architect의 배려(?)에 감사한 심정을 가지게 된다.

나의 시. 얼굴을 치장하는 화장품의 브랜드 내임 치고는 낯 가지러움의 고소를 금치 못했지만 그 단 두 단어의 라임과 글자 그대로의 뜻이 맘에 와 닿았다. 정말 예뻤다.

아직 정오가 지나지 않은 시간, 인사동 카페엔 노신사 한분이 그에게 잘 어울리는 베레모를 쓰고선 붉은 와인 한잔을 앞에 놓고 있었다. 이른 시간 맥주를 마시고 있던 내게 위로가 된다. 나도 이제 시니어로 접어든다. 젊잖게 나이 들어가는게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나도 이제 깨달아 가고 있다.

관훈갤러리 강관장과의 맛있는 farewell 점심식사 후 조박사와 함께한 시내 산책에서 드디어 청계천 물에 발을 담갔다.

여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물고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내가 떠나고 나면 큰집에 덩그러니 혼자 계실 아버님 생각에, 즐거운 만찬이었지만 마음은 내내 무거웠다. 내가 본가에 묶는동안 차려 드렸던 서양식 아침식사를 아버님은 과식을 하실 정도로 좋아 하셨다. 이젠 누가 해드리나. 캐나다의 비지니스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고 싶지만, 내 비지니스를 처분한다는 건 오랜 시일이 걸릴뿐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될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까르페 디엠이라 했던가. 다가올 앞날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난 오늘을 열심히 살 뿐이다. 오늘 가족들과 열심히 웃고 맛있게 먹고 서로의 그 환한 얼굴을 가슴에 꾹꾹 담으면 되는거다. 그러며 감사한다.

가족들과 갖은 음식을 나눈 마지막 만찬도 끝났다.

한국을 떠나는 날 아침, 난 유난히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양재천 주변, 새벽 어스름에서 반짝이는 모든 것들을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다.

소리도 함께.

산책길에선 한 사람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텅 빈 산책길 어디선가 나타난 까치가 나와 놀자 했다.

매일 아침 새로 태어나는 양재천은 단 열흘 동안이었지만 내 삶의 은유였고, 추억과 치유, 그리고 희망의 공간 이었다.

홀로 떠 있는 새벽달은 참 호젓하고 의젓했다.


Goodbye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