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하파 컨트리 클럽.니카라구아
보통 트와일라이트 게임이라 하면 늦은 오후에 티업을 시작하여 일몰 전까지 게임을 즐기다가 경기 진행 요원인 마샬이 중지를 요청하면 몇 홀이 더 남았던지 간에 입맛을 다시며 경기를 마쳐야 하는 거다. 해가 긴 여름에는 18홀을 다 마칠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도중에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그린피가 30% 정도 저렴하다. 보통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이 Twilight Game 제도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일몰제는 운영하지 않는 것 같고 니카라과에서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해가 지고 나서 게임을 마감하는 관리요원들이 없었기에 황홀한 적도의 노을 아래서 어둑어둑한 페어웨이를 마음껏 걷는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
이곳 18홀의 전경은 적도 나라의 전형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열대의 완벽한 잔디가 덮인 오르막 페어웨이를 중심으로 야자수들의 실루엣이 아름답고, 역시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엮은 클럽 하우스가 제대로 어울리는 그림 같은 홀이었다.
열대 스콜은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왔는데 이 강력한 열대 소나기는 언제나 짧고 장쾌하게 쏟아진 후 물러난다.
스콜이 지나는 동안 기온은 뚝 떨어져 매우 선선하게 되는데, 낙뢰가 심해 조심해야 한다. 골프를 하다 낙뢰를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는 무용담은 서글픈 것이기에 꼭꼭 숨어있어야 되는데 골프장에선 숨을 곳이 마땅찮다. 그저 카트를 몰아 종려나무 아래로 기어들어가는 것 외에는.
스콜이 지나가면 필드에선 금세 대단한 열기가 올라오게 되고 잔디들이 무섭게 자라 나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잠시의 싱그러움은 경험해 봐야만 느낌이 온다. 이곳의 페어웨이와 그린 그리고 야자수들은 정말 이뻤다. 베트남이나 푸껫 등의 열대 지방에서도 운동을 해 봤지만 이곳처럼 잘 정리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니카라과에서의 프로젝트를 위해 몇 달 동안 머무는 동안, 난 아르헨티나 출신 오 과장과 김 법인장, 그리고 서울에서 출장 나온 주재 직원들과 거의 매주 이곳을 찾았었다. 다들 현지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고맙게도 날 배려하는 차원에서 계속 자리를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지배인 루이지와 여러 재미있는 곳들을 다니느라 굳이 우리 주재원들이 날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터였다.
니카라과에는 골프장이 거의 없었고 컨트리클럽은 현지 고위층 들이나 이곳 공단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외국 기업인들의 차지였다. 우리 주재원들은 만불 정도 하는 회원권을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었지만 이곳 현지인들에게 그 정도의 돈은 꿈꾸기 힘든 거였다.
니카라과는 거대한 호수와 화산 그리고 처녀림으로 이루어진 열대우림을 가진 너무나 아름다운 나라인데 지도자들을 잘 못 만나 나라는 거덜이 난다. 지진에 무너지고, 산디니스타 좌익전선이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을 치르면서 망가지고,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산디니스타 정권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 반군과 전쟁을 벌이면서 또 부서지다 보니 지금은 정치적 성숙도는 어느 정도 이루어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메리카에서 두 번째로 못 사는 나라로 전락해 버렸다. 어떡해서든 제 국민 잘살게 하는 게 정치일 텐데 제 국민 피와 살을 빨아먹고 뜯어먹은 놈들이나, 그 잘난 이데올로기 추구한답시고 혁명의 깃발만 흔들 줄 알았던 놈들이나, 그 아래 국민들이 헐벗고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클럽 하우스는 스페인 풍의 건축 양식과 색상이 참 마음에 들었었다. 야자수 줄기 말린 것인 듯한 전통 형식의 높은 지붕과 모던한 내부, 그리고 진입 진출로의 색상등.
누군가가 홀인원을 했는지 멋진 벤치를 기증해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
드디어 날이 어둑어둑해 오는데 우리 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플레이를 한다. 이제 끝내고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 속으로 생각을 했지만 흰 공이 멀리 서는 잘 보이지 않는 데도 계속 쳤다.
뜨거웠던 하루를 뒤로하고 태양은 저 건너편으로 넘어가며 또 다른 장관을 연출하는데 그 석양을 향해 드라이버를 날리는 김 법인장의 스윙은 호쾌하기만 했다.
클럽 하우스로 돌아오니 완전히 캄캄한 밤이 되어 있었다. 참 오래전 얘긴데 다시 떠올리니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