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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shin May 24. 2016

흐르는 강물처럼

다운스트림 카누잉@grand river.ontario

우리 세 사람이 탄 오렌지색 카누는 강물의 흐름에 제대로 몸을 맡긴 채 부드러운 속도로 흘러 내려가고 있었고 앞에는 딸아이, 가운데엔 아내 그리고 뒤에 앉은 난 가끔씩 그저 카누의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 반쯤 강물에 담근 패들의 각도를 손목으로 살짝살짝 조정할 뿐이었다. 한여름 대낮의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져 내리는 강물을 향해 초점 없는 눈길을 한없이 주며 떠내려 오는데, 어느 순간부터 부드럽고 살랑거리는 연두색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미터의 강물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이곳에서 넘실대는 수초지대를 지나고 있었던 거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의 노랑 카누에 찰싹 붙어 있는 초록색 게코 스티커. central america의 한 호텔 방 천장 구석에 붙어 새소리를 내며 울던 그 게코(gecko) 도마뱀이 떠올랐다. 오늘의 카누 트레일이 즐겁지만 뭔가 짓궂은 방향으로도 흘러가겠군 하는 전조적 느낌에  괜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람 없는 호수에서의 카누잉과 달리 강을 따라 내려가는 downstream 카누잉은 패들링에 좀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데 좌우 롤링이 심한 구간을 빠르게 지날 때 전복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just in case, 모든 소지품들은 방수 팩을 준비하여 트래일 중 물에 흠뻑 젖는 낭패를 피해야 한다.

Grand River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남서부 쪽에 위치한 강으로 280km 정도를 흐르다 오대호 중 하나인 Lake Erie로 흘러 들어간다. 오늘의 카누 트레일은 십여 km 정도의 한나절 코스였다.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많은 팀들이 그룹 트레일에 나서고 있었다.

크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강폭은 적당한 유량과 유속을 유지하며 평온하게 흐르고 있었고 좌우에 펼쳐진 숲 속에선 사슴가족이 내려와 목을 축이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었는데, 급류 카약킹이 아닌 이상 가족들과의 카누 트레일 로서는 안성맞춤이었다.

허벅지에서 가슴까지 물에 잠기면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이곳에서 잠시 카누를 강가에 정박시킨 채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해결했다.

풍부한 산소를 유지시키는 적당한 유속과 맑은 물, 그리고 바닥에 가득히 물결치는 수초들은 강속엔 크고 작은 물고기들로 가득한 것 같았다. 방금 낚아 올린 물고기는 강의 색깔을 똑같이 닮았다.

플라이 피싱을 하는 이들이 캐스팅을 하며 휘날리는 낚싯줄들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며, 자연스러워 마치 한국의 승무를 보는 듯했다. 물고기를 낚는 기술이라기보다는 강 한가운데서 벌이는 전위 예술 같기도 했다.

넉넉한 모습의 부부인듯한 커플이 강 흐름 정도의 속도로 카누를 저어 가는 모습은 캐나다가 미래를 향해 자연스럽게 움직여 나가는 모습과 닮았다. 비즈니스적으로 영악한 미국이나 유구한 역사와 문화로 무장한 우아한 유럽에 비해 캐나다는 전혀 재빠르거나 세련되지 못한 나라지만, 우직하고 정직하게 제 생각데로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다.


bye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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